티파니의 첫 미니 앨범 〈아이 저스트 워너 댄스(I Just Wanna Dance)〉의 첫 곡을 듣고 그만 홀려버렸다. 처음부터 이 음반에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던 까닭에 플레이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은 확신으로 변하고, 나는 이 앨범 전체를 친애하는 〈시사IN〉 독자 제위께 소개해야겠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이렇듯 몽환적이면서도 풍성하고, 풍성하면서도 세련됨을 잃지 않는 신스 팝이라니, 티파니가 이렇게 나를 ‘깜놀’하게 할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다.

필연적으로 과거의 디바들이 머릿속으로 소환되기 시작했다. 마돈나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좀 더 가까운 사례를 꼽자면 아무래도 카일리 미노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과연 ‘아이 저스트 워너 댄스’는 여러모로 카일리 미노그의 대표곡 ‘캔트 겟 유 아웃 오브 마이 헤드(Can’t Get You out of My Head)’를 떠올리게 한다. 곡의 구성이나 작법은 판이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다는 의미다.

ⓒ연합뉴스5월10일 티파니가 미니 앨범 쇼케이스를 열었다.

1980년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레트로한 일렉트로닉 댄스곡에서, 듣는 이들은 아이돌 음악 특유의 직관적인 설득력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반복 청취해야 더욱 온전하게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곡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예상보다 차트 성적이 저조했다. 하긴 노골적인 선율의 낙차보다는 은은한 배음(倍音)으로 울려 퍼지는 스타일의 리듬 메이킹을 ‘대중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적어도 한국 땅에서는 말이다.

이런 지향은 ‘토크(Talk)’에까지 이어진다. 티파니는 이 곡에서 ‘아이 저스트 워너 댄스’보다 더 리듬적인 특징을 과감히 드러내면서 관능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통해 한층 깊고 진해진 감성을 전달하는데, 소녀시대에서 티파니가 솔(Soul)적인 파트를 맡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나 적확한 판단이지 싶다. 이 두 곡만으로도 우리는 그녀가 솔로로서 한 장의 앨범을 책임지고 주도할 보컬 능력을 이미 지니고 있는 가수임을 알 수 있다.

‘풀(Fool)’은 복고풍 사운드를 연출할 때 가장 선호되는 808베이스(저 유명한 ‘연결고리’가 대표적인 사례)를 끌어들인 곡이다. 기실 내가 놀란 지점이 바로 이 곡부터였다. 여러 장르를 뒤섞은 뒤에 그것을 가수 개인의 페르소나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장르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미세한 층위에서 다채로움을 부여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까닭이다. 뭐랄까, 음반 전체에서 기분 좋은 고집을 느꼈다.

이 앨범이 지닌 단 한 가지 문제

이 앨범의 열쇳말은 그러니까, 복고와 현재의 공존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의 좋았던 시절을 정확하게 겨냥하면서도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포장하는 데 성공한 앨범이다. 미니멀한 알앤비 비트로 티파니의 보컬을 한층 강조한 ‘왓 두 아이 두(What Do I Do)’ 정도가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곡마저도 과거로부터 영감을 수혈해왔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옐로 라이트(Yellow Light)’는 좀 아쉽다. 티파니의 보컬이 조금 더 곡이 지닌 굴곡을 선명하게 드러냈어야 했다. 이보다는 보사노바 리듬을 차용한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Once in a Lifetime)’에서의, 기교를 거의 부리지 않은 직선적이고 순수한 이미지의 가창이 마음에 쏙 든다. 두 손을 턱에 괴고 눈을 초롱초롱 뜨면서 바라봤던, 티파니의 뿌잉뿌잉 표정이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곡이다. 난 이 표정, 참 좋아라 했다.

결국 이 앨범이 지닌 문제는 단 한 가지로 수렴된다. 결과(차트 성적)가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아이 저스트 워너 댄스’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 기준으로 ‘확실한 싱글감’이 없다는 게 약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일단 가수 본연의 색깔과 정체성에 대한 포지셔닝을 잘 가져갔다는 점만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겨우 1집 아닌가.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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