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쳇 베이커를 모른다.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그가 트럼펫을 불었는지 트롬본을 불었는지도 늘 헷갈리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인생을 살다 갔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보고 싶었다. 〈본 투 비 블루〉. 배우 이선 호크가 쳇 베이커를 연기하는 전기 영화다.

시작은 흑백이다. 방금 공연을 마친 쳇 베이커가 여자와 함께 호텔 방에 들어온다. 막 사랑을 나누기 직전, 여자가 꺼낸 주사기에 팔을 맡긴다. 약 기운이 퍼지자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쳇 베이커. 그때 벌컥 문이 열리고 방으로 들어서는 또 다른 여자. 아내 일레인이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컷!”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지금까지 흑백이던 화면이 컬러로 바뀐다. 알고 보니 여기는 영화 촬영장. 자신의 전기 영화에 직접 출연한 쳇 베이커가 자신의 아내를 연기한 배우 제인(카먼 이조고)에게 치근대던 1966년의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촬영장을 빠져나와 함께 술을 마신다. 실제로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다는 이 잘생긴 뮤지션에게 제인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하지만 즐겁게 술집을 빠져나온 그들을 기다리는 건 한 무리의 건달. 갚아야 할 빚을 독촉하며 힘껏 날린 주먹에 쳇 베이커는 앞니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입는다. 영화 〈본 투 비 블루〉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때부터다.

파란만장했던 쳇 베이커의 1970년대

트럼펫 연주자가 앞니를 잃은 건 피아노 연주자가 손가락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 의치를 끼우고서라도 다시 연주해보려는 시도는 매번 피범벅이 된 셔츠를 남길 뿐이다. 잇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트럼펫을 물고 늘어지는 뮤지션 쳇 베이커와 쉽사리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여배우 제인의 이야기, 그리하여 ‘포기’하는 대신 ‘재기’하기로 마음먹은 쳇 베이커의 파란만장했던 1970년대가 영화에 담겨 있다. 그가 연주하고 노래한 숱한 재즈곡이 장면마다 참 근사하게 쓰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리저리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영화평론가이자 소문난 음악애호가 이동진씨가 8년 전에 쓴 글 하나를 발견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는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그의 전기 〈쳇 베이커〉의 챕터 제목들만 적어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천사 스스로 날개를 꺾다/ 뉴욕이라는 이름의 유배지/ 나락 속의 금빛 트럼펫/ 방랑자의 여로/ 길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꿈꾸는 법을 잊어버린 사내/ 악마의 그림자….’ 정말 소제목만으로도 처참하죠?”(이동진 블로그 〈언제나 영화처럼〉 2008년 5월13일 포스팅)

전기의 소제목만으로 쳇 베이커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덕분에 그의 인생을 더 알고는 싶어졌다. 〈본 투 비 블루〉의 몇 장면을 보는 것으로 쳇 베이커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이 영화의 단 몇 장면이라도 보고 나면 쳇 베이커를 더 알고 싶어질 것이다. ‘다’ 알려주는 게 아니라 ‘더’ 알고 싶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전기 영화의 미덕이다. 그게 바로, 단순한 ‘팩트’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픽션’을 가미하는 전기 영화의 연출이 용인되는 이유다.

‘마이 퍼니 밸런타인(My Funny Valentine)’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레츠 겟 로스트(Let’s Get Lost)’ 그리고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나는 지금 영화에 나온 쳇 베이커의 음악을 찾아 듣고 있다. 게으른 천재이던 시절의 초기 앨범과 삶의 무게가 더해진 후기 앨범의 음색을 비교하며 듣고 있다. 이렇게 차근차근 쳇 베이커를 ‘더’ 알아가려 한다. 이렇게 차곡차곡 〈본 투 비 블루〉의 장면을 곱씹으려 한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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