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문제로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수익만 좇는 자본의 민낯과 돈 몇 푼에 양심을 판 이른바 전문가라는 이들의 부도덕한 행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은 동시에 우리에게 까다로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접하기 힘든 신기술이 가져올 부작용을, 정부와 국민은 어떻게 대응하고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무공해 친환경 에너지’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풍력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저주파로 인해 두통을 호소하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풍력발전 대국인 독일과 덴마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이상훈 제공풍력발전은 무공해 친환경 에너지의 대표로 꼽히지만 저주파 발생으로 인해 두통을 호소하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환경청에 따르면, 통상 저주파(infrasound)는 인간의 가청 범위인 20~2만Hz보다 낮은, 즉 20Hz 이하의 주파수를 갖는 음파를 말한다. 저주파는 풍력발전기뿐 아니라 디젤엔진, 보일러, 에어컨, 교량, 항공기 등 우리의 일상생활 어디에서도 접할 수 있다. 위의 환경청 자료에 따르면, 아직까지 풍력발전기에서 발생하는 저주파가 인체에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저주파를 현저히 줄이는 기술이 상용화되지도 않았거니와, 까다로운 규제로 유명한 독일의 환경 관련 법체계에도 저주파 문제가 명시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풍력발전의 저주파가 인체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적 규명이 완료될 때까지 풍력발전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풍력발전은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유럽에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에너지 자립 기술이다. 2015년 유럽연합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총 141기가와트(GW)로, 천연가스·석탄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발전 시설이다. 유럽연합에서 소비하는 전기의 11.4%에 해당하는 315테라와트시(TWh)가 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됐다. 유럽연합에 설치된 풍력발전기의 45%는 독일에 설치되어 있는데 그 수는 약 2만5000기에 달한다. 풍력발전 기술 강국인 덴마크는 5.1GW의 풍력발전기를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과학적 한계를 보완할 그 무엇이 필요한데, 독일과 덴마크에서는 투명한 정보공개를 바탕으로 한 협치(거버넌스)를 통해 문제를 풀고 있다. 먼저, 과거 중앙정부가 전적으로 장악했던 풍력발전 입지 허가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겨주었다. 풍력발전기 설치에 대한 민원이 지역 주민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들과 좀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행정단위가 인허가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독일과 덴마크에서는 중앙정부가 풍력발전 설치 가능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 시군에 해당하는 행정단위가 마련하는 토지이용계획에 풍력발전 대상지가 명시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어떤가? 중앙정부가 몇 해 전부터 전국적으로 일괄 적용 가능한 풍력발전단지 입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규제 완화 차원’이라는 그럴듯한 명분까지 덧붙였다. 독일이나 덴마크와는 대비되는 접근법이다.

어린이·청소년에게도 제공되는 정보

협치의 또 다른 핵심은 투명한 정보 제공과 참여다. 즉,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가능한 한 초기부터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지역 주민의 참여를 보장한다. 덴마크의 경우, 국립 환경 포털 사이트(www.miljoeportal.dk)와 개발계획 포털 사이트(https://erhvervsstyrelsen.dk/plansystemdk)를 통해 자연환경 실태 및 신규 개발 계획에 관한 정보를 일반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학자들은 덴마크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단순히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해당 개발 계획에 대해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국가가 나서서 보장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서도 ‘모르쇠’나 ‘답변 불가’로 일관하는 우리나라 행정기관의 고압적 태도와 역시 대비되는 지점이다.

덴마크는 환경·개발계획 포털 사이트들을 통해 정보를 일반 시민에게 제공한다.

독일 건축법 제3조에는 새로운 건설 사업에 관한 정보는 가능하면 일찍부터 해당 지역 주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어린아이와 청소년에게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해놓았다. 또한 환경영향평가법에서는 사업자가 지역 주민에게 환경영향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한 기간에 주민 의견을 수렴해서 사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주민의 참여를 법과 제도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관계 당국, 개발사업 시행자, 지역 주민 사이에 소통 기회를 제공한다. 사적 재산권이 엄격히 보장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표심이 일상적으로 정치를 좌우하는 서유럽 분위기에서, 사업자의 일방적인 풍력발전기 설치 추진이나 관계 당국의 밀실 행정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온다. 프로젝트 실패는 물론이고 해당 지자체장은 다음 선거에 출마할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오랜 소통과 협치의 경험은 상호 신뢰로 이어지고, 규명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과학적 쟁점에 대해서도 ‘두 걸음 전진을 위한 한 발짝 물러섬’을 가능하게 만든다. 실제로 2014년, 정부 기구가 아닌 사업자 이익집단에 불과한 덴마크 풍력협회는 풍력발전에서 발생하는 저주파 논란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획된 모든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의 경우, 해당 지자체가 나서서 지역 주민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풍력발전기와 주택 사이의 이격 거리를 책정하는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해법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과 덴마크에서 이런 협치가 자리 잡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로 1998년 채택되어 2001년 10월 발효된 오르후스 협약(Aarhus Convention)을 꼽는다. ‘환경정보에 대한 접근·이용권, 환경행정 절차 참여권, 환경사법 액세스권에 관한 협약’이라는 공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이 협약에 참여하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환경정보 공개, 시민 및 환경단체의 의사결정 과정 참여 보장을 통해 협치를 가능케 한다고 국내외 많은 법학자들은 분석한다. 정보의 공유와 일반인의 의사결정 참여가 환경 갈등과 사고 발생 가능성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발생과 그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나라에서 환경문제나 공해문제는 협치가 아닌 자본과 결탁된 중앙정부의 관치만 작동하는 듯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국민 ‘개인’ 몫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기자명 베를린·염광희 (싱크탱크 코덱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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