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세계 고고학계 초미의 관심사는 시리아 팔미라 유적지이다. 고대의 가장 중요한 문화 중심지 중 하나로, 대도시의 기념비적인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5년이 넘는 내전 동안 시리아 전역의 고고학 유적이 적지 않게 파괴되었는데, 대표 유적지인 팔미라에서도 전투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동쪽으로 200여㎞ 떨어진 중부 사막지대 한가운데 있는 고도(古都) 팔미라는 ‘야자수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오아시스 도시이다. 그래서 고대부터 동서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무역의 중간 기착지 구실을 했다. 시리아 사람들은 팔미라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다.

팔미라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 등 다양한 문화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1980년 유네스코는 팔미라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팔미라 유적 중 보스라 지역의 야외 원형극장은 로마제국 원형극장 중 가장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대한 기둥과 신전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중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적지로 불리며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매년 15만명에 이르는 외국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해 시리아 관광 산업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내전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유적들 사이에 시리아 정부군 탱크가 배치됐고, 고대 로마 유물이 있는 지하 곳곳에는 참호가 생겼다. 고대 유적 건축물의 기둥은 총격전의 엄폐물이 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2000년 가까운 세월을 지탱한 기둥 한가운데에 총알이 박히는 것도 예사였다.

ⓒAP Photo팔미라의 바알샤민 사원이 폭파되는 장면. IS가 지난해 8월25일 한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지난해 5월 이슬람 국가(IS)가 팔미라를 점령하면서부터 문제가 더 커졌다. IS는 우상숭배 금지라는 종교적 명분을 내세워, 여러 유적지를 파괴했다. 지난해 7월 팔미라 박물관 앞 ‘알랏의 사자상’을 폭파한 이후, 8월에는 고대 바빌로니아 신전이자 로마 시대 교회와 모스크 등으로 사용되어온 팔미라의 대표적 유적지로 꼽히는 벨 신전을 파괴했다. 이어서 바알샤민 사원, 타드무르 교도소를 비롯해 고대 묘지와 조각상 등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을 잇달아 파괴했다. 기원후 103년에 세워진 ‘엘라벨의 탑’을 포함해 보존 상태가 가장 좋았던 탑 무덤 3기도 폭파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2세기에 지어진 팔미라의 대표 유적 중 하나인 개선문까지 부비트랩으로 폭파시켰다. 개선문은 종교와 무관한 유적이어서 전 세계의 공분이 더욱 컸다. 심지어 팔미라의 대표 유적인 원형극장에서 인질을 처형하기도 했다.

“IS가 초벌로 부수면 정부군이 2차 파괴”

IS의 의도는 분명하다. 바로 팔미라의 세계 문화유산 지역을 파괴해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홍보 효과를 노린 것이다. 종교적인 명분도 노렸다. 팔미라는 634년 칼리드 이븐 알왈리드가 초대 칼리프 아부바크르(재위 632~634)의 명을 받아 정복한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칼리프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이어 모든 일을 관장하는 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를 말한다. ‘가장 순수한 이슬람 시대로 돌아가자’는 모토를 내건 IS로서는, 초대 칼리프가 정복했던 지역을 자신들 또한 정복함으로써 종교적인 명분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지난 3월 IS가 점령한 팔미라에 대해 시리아 정부군의 재탈환 작전이 시작됐다. 정부군은 러시아군의 공습 지원을 받아 10개월 만에 팔미라를 IS로부터 탈환했다. 러시아 전투기들이 먼저 출격해 팔미라 주요 지역을 공습하면 정부군과 민병대가 지상전을 펼치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4주간 치렀다.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이 언뜻 팔미라를 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전투로 인해 팔미라는 잿더미가 되었다. 러시아 공군기가 하루에도 40여 차례 출격해 유적지 사이사이에 있는 IS의 초소 100여 곳을 타격했다. 파괴 정도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다마스쿠스 대학의 한 고고학 교수는 필자와 통화하면서 “시리아는 물론 팔미라는 아직 발굴되지 못한 유적지가 많다. IS도 정부군도 전투를 하며 팔미라를 보호하려는 정책은 없었다. IS가 초벌로 파괴했다면, 정부군은 러시아 폭격기를 동원해 본격적으로 파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분노했다.

ⓒAP Photo한 IS 전사가 팔미라 고대 문화유물 중 하나인 흉상을 쇠망치로 부수고 있다.

유적지 파괴뿐 아니라 유물 밀매도 심각하다. 팔미라에 거주하는 한 주민도 필자와의 통화에서 “팔미라에는 지금 탱크보다 굴삭기가 더 많다. 유적지를 파헤치기 위한 것이다. IS는 물론 정부군도 러시아군도 모두 전투 후에는 반드시 굴삭기를 동원한다”라고 말했다. 레바논계 프랑스 고고학자 조앤 파차크는 지난해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팔미라 유물들이 이미 런던에서 팔리는 중이다. IS는 팔미라 유물 하나하나가 엄청난 수입원이 될 줄 알면서도 파괴했다. 값나가는 다른 유물들의 도굴 행태를 숨기기 위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팔미라를 비롯한 역사적인 유적지에서 파낸 유물은 시리아 내전의 돈줄이 된다.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터키·이라크·레바논 등지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전문 약탈꾼과 밀매업자들이 성황을 이룬다. 고대 유적지가 많은 홈스에서 문화재관리청 직원으로 근무하는 야시프 씨는 전화 통화에서 “지금 시리아에서는 삽과 굴삭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값비싼 유물을 건질 수 있다.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유적지 곳곳에서 포탄이 오가고 전투 현장 한가운데 굴삭기가 있다면 지금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눈물이 나고 가슴 아픈 일이다”라며 한탄했다.

팔미라 주민들의 고통도 상상을 넘는다. 대부분 관광업과 농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은 지난해 5월 IS가 팔미라를 점령하자 전체 5만 명 중 1000여 명만이 팔미라에 남고 대부분 피란길에 올랐다. 팔미라에서 작은 호텔을 경영했던 아하마드 씨(37)는 지금 터키 남부 킬리스 인근 난민촌에서 배급 식량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는 통화에서 “IS가 날마다 사람들을 처형했다. 시장 한가운데 정육점 앞에서 참수하는 것을 시장 갈 때마다 봐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관광객을 상대로 먹고살던 내가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팔미라의 유적이 폭파된 것이다. 조상들이 2000년 가까이 지켜온 유적이 내 시대에 와서 파괴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슬퍼하실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리스의 난민수용소에 있는 마무드 씨(48)도 한때는 팔미라 박물관 직원이었다. 그는 필자와 통화에서 “30년 넘게 박물관에서 일하며 유럽이나 미국 관광객은 물론 한국 관광객도 맞았다. 이제는 추억뿐이고 지금은 난민 신세로 고통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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