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돌풍이 몰아치던 지난 2월,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미국 유권자에게:유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트럼프가 보여주는 정치 노선이 미국 유권자에게는 낯설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익숙하다는 의미다. 〈폴리티코〉가 지목한 트럼프와 유럽 극우파의 공통점은 셋이다. 사회보장 지지, 외국인 혐오, 반(反)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복지를 줄이고 자유무역을 강화하자는 기존 우파와는 다르다. 파리정치대학 브뤼노 코트레스 교수는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이 복지는 프랑스인에게만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라며 이를 ‘복지 쇼비니즘’이라고 불렀다. 복지 쇼비니즘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의 극우파를 묶어낼 수 있는 키워드다. 세계화와 유럽 통합과 이민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믿는 유권자들은 보호주의와 복지 쇼비니즘에 표를 준다.

극우파 약진은 주변부의 소란 수준을 훌쩍 넘어 유럽의 핵심부를 위협한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은 지난해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집권 사회당과 우파 야당인 공화당을 모두 제치고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결선투표에서는 극우파 견제 심리가 작동해 참패했지만, 국민전선이 여론 지형에서 실질적 제1당으로 점점 더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는 2017년에 대선을 치르는데, 국민전선 후보(마린 르펜 대표가 확실시된다)가 최종 승리는 쉽지 않아도 결선 진출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AFP영국 브리스톨의 한 건물 벽면에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키스를 하는 모습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보리스 존슨은 ‘영국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브렉시트 찬성파다.

독일은 나치즘의 기억 때문에 극우파에 국가적 알레르기가 있다. 그런 독일에서조차 2013년 창당한 신생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있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대놓고 반(反)이슬람, 반(反)난민 노선을 내건 정당으로, 지난 3월 작센안할트 주 지방선거에서 24.2%를 득표해 창당 이후 최고 득표를 기록했다. AfD는 5월1일 채택한 강령에서 “이슬람은 독일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못 박았다.

영국은 ‘브렉시트’, 즉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6월23일 국민투표로 정한다. 기존 좌우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 지도부가 EU 잔류를 지지하는 반면, 극우 정당인 영국독립당과 적지 않은 보수당 인사가 브렉시트를 지지한다. 보수당 유력 정치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브렉시트 찬성파로 ‘영국의 트럼프’라 불린다. 그는 “EU가 히틀러와는 다른 방법으로 유럽 통합이라는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EU 잔류 지지가 다소 우세하다는 여론조사와 찬반 격차가 오차범위 안쪽이라는 여론조사가 나란히 나오면서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21세기 들어 반세계화와 보호주의 블록이 거둔 최대 승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유럽 주변부에서는 이미 정권을 장악한 극우파도 있다.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기독교 유럽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강경 반이슬람주의자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 후보 노르베르트 호퍼가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49.7%를 얻어 당선 직전까지 갔다. 복지 선진국이 몰린 북유럽에서도 ‘복지 쇼비니즘’은 극우 정당에 매력을 더해준다. 스웨덴의 스웨덴민주당은 백인 우월주의에 뿌리를 둔 인종주의 극우 정당으로, 2014년 총선에서 13%를 얻어 349석 중 49석을 차지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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