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움직임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면에서는 중국을 사이에 두고 숨가쁜 외교전이 펼쳐진다.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이라는 ‘왕이(王毅) 이니셔티브’를 내걸고 중재에 착수했다.

먼저 3월 한 달은 북·중 사이 조율이 이뤄졌다. 북한이 핵 동결과 비확산, 그리고 핵확산방지조약(NPT) 복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에 동의하는 대신 중국은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 군사대화를 주선하기로 약속했다. 동시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정상회담, 신의주경제특구를 비롯한 북·중 경협도 추진하기로 했다.

중국은 이 같은 합의 내용을 4월 초 군부 채널을 통해 미국 측에 전달했다. 외교 채널이 아니라 군 채널이 가동된 것은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 군부 관할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 국무부가 관할하는 6자회담을 기피해온 점도 감안됐다.

〈시사IN〉은 지난 4월20일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북·미 군사회담 추진과 관련한 정보를 포착했다. 그때 이미 ‘5월 말 제3국에서 군사대화 내지는 북한 총정치국장의 방미’가 흘러 나왔다. 북한 총정치국장 방미는 북·미 대화가 잘 진행될 경우, 2000년 조명록 총정치국장 방미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북한의 예상 움직임 또는 북·중 관계 스케줄은 이랬다. 리용호 신임 북한 외무상이 5월 초 미국을 방문하고, 5월15~20일께 북한이 핵 동결 선언 등 중대 발표를 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그리고 북·중 정상회담, 북측이 전승절로 부르는 7월27일 신의주경제특구 및 신의주-평양 간 고속도로 착공식 따위다.

ⓒAP Photo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냈다. 위는 지난해 1월 싱가포르 방문 때의 모습.

이 스케줄대로라면 5월20일 현재, 핵 동결과 관련한 중대 발표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중대 발표 대신 느닷없이 북측은 미국이 아닌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제안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7차 당 대회의 중앙위원회 사업총화에서 제안한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5월20일 국방위원회 담화, 5월21일 김기남 당 중앙위 부원장 담화와 북한 인민무력부의 실무접촉 제안, 5월22일 원동연 신임 조평통 서기국 국장·김완수 6·15 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위원장 담화 등 파상공세를 펼쳤다.

우리 측은 대북 제재에 균열을 일으키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공세로 판단했다. 북한의 제안에 대한 대답도 한결같았다. 비핵화에 대한 성의 있는 태도와 실천이 먼저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측의 파상공세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복수의 취재원에 따르면, 애초 5월20일은 5월 초 리용호 방미를 통해 5월 말 북·미 군사대화를 사전 조율하고, 그 직전 극적 효과를 위해 중대 발표를 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중국을 통해 북한에 전달된 미국 측 답변이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미국 측은 “접수했다. 우리도 관심이 있다. 검토 중이다”라는 답만 계속했다고 한다.

ⓒXinhua2월23일 워싱턴에서 회담을 한 후 기자회견을 연 존 케리 국무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그래서 북한이 전술을 바꿨다.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채널을 통한 미국의 답변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거꾸로 미국에 답변 ‘데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한다. 즉, 군사대화를 할지 안 할지  6월 초까지 답을 달라고 미국 측에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답이 없으면 제 갈 길을 가겠다는 통보인 셈이다. 이 같은 데드라인을 미국에 전달함과 동시에 남측을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타진하는 진짜 이유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의도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하나는 남측을 두들겨 미국의 반응을 확인할 속셈이다. 물론 남측이 군사대화에 긍정적으로 나오리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다. 남측에 제안하면, 남한은 미국과 상의하므로 북한이 미국의 반응을 간접적으로라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통해 전달되는 미국 반응에 더해 판단에 필요한 추가 자료용 제안인 셈이다.

두 번째는 명분 축적용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북한이 할 만큼 했다는 ‘시그널’을 보여주기 위한 제안이라는 것이다. 즉, 6월 초 이후 제 갈 길을 가야 할 때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북·미 군사대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김정은 방중이나 북·중 정상회담도 다 어려워진다. 이때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5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추가 발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역시 그렇게 예상하고 있다. 정재흥·이성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5월26일 ‘북한 노동당 제7차 대회에 대한 중국의 시각’이라는 정책 브리핑 자료에서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사전 포석 차원에서 조만간 5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채근에도 미국은 왜 시간을 끌고 있을까. 북한의 핵 동결과 비확산, 그리고 NPT 복귀와 IAEA 사찰은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대화의 ‘조건’이다. 지난 2월23일 왕이 외교부장과 존 케리 국무장관 기자회견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 방침을 고수했다. 그런데 리수용 당시 북한 외무상이 방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리 외무상은 케리 장관과 면담이 예정됐지만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측 문제가 아닌, 미국 대북정책 라인의 논쟁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의 NPT 복귀를 두고 미국 국무부 내 비확산파 등 핵 근본주의자들의 반발이 만남의 걸림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NPT는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영국을 제외한 나라의 새로운 핵무기 보유나 그 확산을 금지하는 조약이다. 하지만 북한이 아무런 조치 없이 지금 상태로 NPT에 복귀하면 핵보유국으로 복귀하게 된다. IAEA 사찰도 핵보유국이라는 전제하에 받게 된다. 미국도 전에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가 최근에 논란이 불거졌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 군부는 의견이 좀 다르다고 한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국무부와 국방부는 북한 핵 동결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국무부는 과거 핵까지 포함하는 핵 폐기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국방부는 먼저 동결부터 하고 보자는 쪽이었다. 이번에도 국방부는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동결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중 간 협의는 군부 채널을 통해서 이뤄진다. 미국 측이 계속 ‘관심 있다, 협의 중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군부는 북한 핵 동결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내부 조율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도 북·미 군사회담 성사의 변수다. 북한이 6월 초 5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민주당 후보의 대선 가도에 도움이 될 리 없다. 그래서 미국도 결국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북·중 양측은 보고 있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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