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빌리시 다음으로 여행할 곳은 와인의 고장 카케티와 카케티 바로 옆으로 조지아의 가장 동쪽인 시그나기 지역이다. 와인과 함께 ‘코카서스의 이태리’로 불리는 조지아 음식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트빌리시에서 카케티로 가기 위해서는 1900미터 내외의 텔레비 구릉을 넘어야 한다. 이 구릉을 넘어서면 카케티 평원과 그 뒤로 코카서스 산맥의 설산이 보이는데 풍광이 일품이다.

ⓒ고재열조지아 카케티 지역의 풍경. 멀리 설산이 보인다.

 

카케티 평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바로 양떼나 소떼 혹은 말들과 도로에서 만나는 것이다. 갈 길 바쁜 여행자들도 수백 마리의 양떼가 도로를 점유하고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게 된다. 양떼와 목동들을 관찰하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양과 사람 모두 서열이 있기 때문이다. 양도 뿔이 가장 큰 숫양부터 차례로 걷고 목동도 연장자가 맨 앞에서 걷는다. 그 카리스마를 보면 왜 목동을 선지자라 불렀는지 이해하게 된다.

ⓒ고재열카케티 평원에서는 도로에서 양떼와 마주치는 경우가 흔하다.

 

카케티 지방은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조지아인들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지아인들이 자신들의 와인사랑을 이야기할 때 드는 우화가 있다. 신이 사람들을 전부 불러 모았는데 조지아인이 늦었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와인을 마시며 신에 대해 이야기했다'라고 변명했다는 것이다. 신도 포기할만큼 와인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제정러시아 시대에 조지아를 지배하면서 조지아인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포도나무를 자르기도 했을 정도다.


조지아 와인의 특징은 일단 포도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조지아에서 기르는 포도의 종류는 565종이나 된다. 조지아인들은 3km마다 기후가 달라져서 포도품종도 다르다고 말한다. 이중 Saperavi 종으로 만든 와인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각종 사연을 담은 와인을 조지아에서 만날 수 있다.


카케티에는 유명한 와이너리가 많은데 그중 트윈 셀라(Twin’s Cellar)라는 와이너리에 들렀다.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곳으로 정통 크베브리 (qvevri) 와인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 크베브리 와인은 으깬 포도를 넣은 점토항아리를 땅에 묻어 발효시키는데, 정통 크베브리 와인은 화이트 와인인데 금빛이 난다. 조지아 지역은 와인이 최초로 발원한 곳으로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크베브리 와인은 대체로 ‘누구나 마실 수 있는 가격에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맛'을 제공하는데 미슐랭 가이드에 나오는 고급레스토랑에서 납품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좋은 와인도 많다.

ⓒ고재열전통 크베브리 와인을 제조하는 와이너리. 포도를 넣은 옹기를 땅에 묻고 자연 숙성 시킨다.

 

트윈 셀라에서 정통 조지아 주도를 배웠다. 조지아인들은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 와인을 마신다. 단 원칙이 있다. 여러 가지 와인을 섞어 마시지 않는다. 새 해가 되면 한 달 동안 이런 파티를 한다. 술자리를 이끄는 ‘타마다’가 ‘가우마조스(cheers)’를 외치며 건배 제의를 한다. 이렇게 식전에만 5번을 외친다. 맨 처음은 신에게 그 다음은 평화를 위해, 그 다음은 성조지를 위해, 대략 이런 순서다. 가우마조스는 계속된다. 조지아인들은 와인 3잔은 곰(bear)이 되게 만들고 그 다음 3잔은 황소(bull)가 되게 만들고 그 다음 3잔은 새(bird)가 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취하는 것 같으면 스스로 멈춰야 한다.

 

조지아의 대표적인 와인 중 하나는 Pirosmani라는 와인이다. 심수봉씨가 번안한 라트비아 민요 〈백만송이 장미〉의 실제 모델인 조지아의 화가의 이름이다. 사모하던 여인에게 백만송이 장미를 바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보통 와인을 만들 포도를 기르는 농장에서는 담장에 장미를 심는다. 장미가 포도나무의 상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고재열카케티 지역의 와이너리를 둘러보고 있는 여행객들.

 

와인만큼 활발하지는 않지만 지역마다 맥주도 있다. ‘알파인 지역’이라고 하는 구릉지대에서는 주로 맥주를 마신다. 독주도 즐긴다. 마트에 가면 주류코너가 거의 절반에 달한다. 짜짜라는 와인을 증류해 만든 독주도 있는데 맛이 일품이다. 향이 풍부해 중국 바이주를 연상시킨다. 술문화가 발달되어 있어서 술친구가 되기는 좋지만 같이 일하기는 불편하다는 말도 있다. 술문화가 관대한 조지아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들은 조지아인에 대해서 “같이 동료로서 일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같이 즐기기에는 최고의 파트너다”라고 말한다. 흡연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조지아인들은 ‘몸에 그렇게 해롭지 않다. 정신 건강에 이롭다’라고 설명한다.

 

트윈셀라와 같은 와이너리는 보통 식당을 겸하는데 여기서는 ‘므쯔바리'라는 돼지고기 꼬치구이를 먹어줘야 한다. 므쯔바리는 포도나무 가지를 태운 숯으로 구워야 제 맛이 나는데 소금간만 하는데도 돼지고기의 풍미를 잘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지아에서는 잔칫상을 차릴 때 ‘식탁 바닥이 보이지 않게' 차려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조지아는 ‘코카서스의 이탈리아'로 불릴 만큼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는 확연히 음식 문화가 다르다. 일단 식당에서 커리를 볼 수 없다. 화덕에 구운 푸리라는 빵을 음식들과 같이 먹는데 피자처럼 생긴, 안에 고명을 넣은 빵 ‘하차푸리’도 같이 나온다. 지역마다 고명이 다른데 감자나 팥앙금같은 것을 넣는다.

ⓒ고재열조지아 전통 음식. 안에 치즈를 넣은 피자와 비슷한 빵이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온다.

 

조지아의 대표적인 음식은 다음의 5가지다. 힝칼리는 만두와 비슷하고 하차푸리는 피자와 비슷하다. 므츠바디는 러시아 샤슬릭과 닮았다. 대체로 이 세 가지를 한국인이 좋아한다. 포도즙을 굳히고 그 안에 호두와 같은 견과류를 넣어 만든 간식도 있다. ‘조지아군의 스니커즈’라고도 부르는 이 음식은 조지아 목동들이 일을 나갔을 때 주로 먹었던 간식이라고 한다.

 

시크메룰리(Shkmeruli) : 튀긴 닭을 전통 토기에 담고, 그 위에 다진 마늘, 물, 우유를 끓여 골고루 부어 오븐에서 살짝 조리한 마늘을 사용한 닭요리.

하쵸(Kharcho) : 쌀, 쇠고기, 살구 열매로 만든 퓌레와 잘게 다진 견과류를 넣어 만든 조지아의 전통 스프.

하차푸리(khachapuri) : 조지아 피자’라고 알려진 대표적인 치즈빵으로, 화덕에 잘 구운 얇은 빵 사이에 치즈를 듬뿍 담아 냄.

므츠바디(Mtsvadi) :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을 작은 덩어리로 잘라 소금, 후추, 와인 등에 재워 샴푸리라는 쇠꼬챙이에 꽂아 굽는 대표적인 바비큐 요리.

힝칼리(khinkali) : 밀가루 반죽을 만두피처럼 밀어 그 속에 다진 고기, 채소와 후추, 소금으로 간을 한 소를 넣어 찐 음식.

 

트빌리시에 전통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구한 요리책이 조지아 전통요리에 대한 것이어서 그에 맞춰서 요리를 하는 곳이다. 우리의 음식디미방과 비슷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에 나와 있는 800여 가지 레시피 중에서 36가지를 재현했다고 한다. 이 식당의 요리사는 한국에서 열리는 요리사 행사에도 미슐랭 스타 셰프들과 함께 초청되었다.

ⓒ고재열시그나기는 낭만의 도시다. 24시간 결혼식이 가능한 교회가 있다.

 

아제르바이잔이 바라다 보이는 평원에 우뚝 솟은 언덕에 자리 잡은 시그나기는 천혜의 요새다. 중국의 산해관처럼 동쪽의 이민족들이 조지아를 침략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어서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알프스의 관문 역할을 했던 벨린초네 지역과 형세가 비슷하다.

 

요새도시였던 시즈나기는 이제 낭만의 도시다. 풍경이 예뻐서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아서 게스트하우스도 많다. 24시간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있기도 하다. 시즈나기는 또한 카페트 장인들의 도시로도 유명하다. 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조합이 있다. 낭만의 도시 시그나기의 명소는 ‘꿩의 눈물(Pheasant’s tears)’이라는 와인바다. 미국인 화가가 운영하는 이 바는 카케티 지역의 와인을 세계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한 병 사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고재열미국인 화가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시그나기의 명소가 되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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