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본다는 건 미련이 남았다는 뜻이다. 발끝을 내려다보며 걷다 말고 자꾸 고개 돌려 지나온 발자국에 눈길을 던진다는 건, 그 발자국마다 물처럼 고인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직장인 런전신(쑹윈화)의 마음이 고인 자리는 언제나 1994년. 류더화(유덕화)를 좋아하고 롤러스케이트장을 기웃거리던 여고생의 시간. 영화 〈나의 소녀시대〉는 이제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린 그녀가 제법 씩씩했던 자신의 1994년에 응답하는 이야기다.

늦잠과 지각, 시험과 짝사랑이 삶의 전부였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런전신이 아니었느니. ‘청순가련’한 타오민민(젠팅루이)에게 정신 팔린 남학생들 틈에서 ‘온순 미련’한 그녀의 존재는 차라리 투명인간에 가까웠다. 하지만 우리의 ‘명랑소녀’들에게는 언제나 ‘불량학생’들이 따르게 마련. “3학년 마지막 반, 마지막 번호”를 차지하고 인근 지역을 주먹으로 평정한 동급생 쉬타이위(왕다루)가 런전신의 순진무구함에 자석처럼 이끌린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직장인이 된 런전신은 그때 쉬타이위와 함께 보낸 ‘내 생애 가장 불량했던 1년’의 기억으로 매일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추억하는 타이완의 1994년은 한국의 1994년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영화 〈건축학 개론〉이 되살린 추억이 〈나의 소녀시대〉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과 타이완의 청춘들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성장기를 지나왔다. 행운의 편지는 우리만 주고받은 게 아니었다. MC 해머의 ‘You can’t touch this’에 맞춰 롤러스케이트를 탄 것도 우리만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만 ‘로라장의 추억’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청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여친남친〉으로 이어지는 최근 타이완 청춘영화와 멜로영화의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들의 추억은 언제나 우리의 추억과 겹친다. 서로 다른 언어의 정원에서 서로 같은 꽃이 자라고 있다. 위에 적은 타이완 청춘영화에 모두 마음을 빼앗겨 홀로 설레던 나는 이번에도 별수 없이 〈나의 소녀시대〉에 푹 빠져들었다.

데뷔작으로 2015년 타이완 극장가 석권

“〈나의 소녀시대〉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친구들에게 바치는 영화다. 관객들이 순수하고 행복한 감동을 느끼며 1초 만에 학창 시절로 돌아가게 하고 싶었다.” 이 풋풋한 데뷔작으로 지난해 타이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감독 프랭키 첸의 바람이 적어도 나에게는 통했다. 정말 유치하고 뻔한 이야기를 보면서, 실제로 참 유치하고 뻔했던 예전의 나로 잠시 돌아가 보았다. 앞사람의 발자국만 따라 걷는데도 자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나의 현재가, 삐뚤빼뚤 제멋대로 신나게 찍힌 나의 지난 발자국을 잠시 그리워하게 놔두었다.

“그날 밤 유성을 보며 빌었던 소원은 그 애의 소원 속에 나도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대사를 차마 견디지 못하는 메마른 감성의 어른들에게는 굳이 이 영화를 권하지 않겠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 첫 물풍선을 던진 이유는,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눈에 그 사람만 보이기 때문이라는 걸.” 이런 대사에 괜히 혼자 미소 짓는 감성의 소유자들만 찾아보면 된다.

끝으로 하나 더. 나에게 이 영화의 최고 명대사는 쉬타이위가 스치듯 내뱉은 이 두 번의 충고였다. “교복 입고 땡땡이 안 쳐보면 나이 들어 후회한다.” “교복 입고 맥주 안 마셔보면 나이 들어 후회한다.” 정말 그렇단다, 얘들아.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걸 정말 하나도 하지 않고 나이 들면, 그런 어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어른이 되고 마는 거야.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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