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제94회를 맞은 어린이날이었고 장소는 청와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초등학생 30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어린이날 봄나들이’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라남도 완도군에 살고 있는 한 어린이가 대통령에게 질문을 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작은 섬이기 때문에 발명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쉬워요.” 소년은 기회를 살려 우리나라 최고통치자에게 직접 민원을 넣었다. 그것도 ‘작은 섬’이기에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구체적인 불편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작은 섬에 도서관도 지을 수 있고, 전문가에게 상담을 맡길 수도 있는 대통령은 어린이에게 결코 쉬운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통령은 대답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게 각 시·도마다 있어요. 17군데…. 거기를 어린이 여러분들이 커서 찾아가면, 학생 때 가도 돼요.”

전남 완도에서 여수에 위치한 전남 창조경제혁신센터까지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2시간28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간다면, 버스를 타고 4시간30분에서 5시간 정도가 걸린다. 네이버 지도와 구글맵의 길 찾기 서비스를 이용해서 나온 결과다.

소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대통령은 답을 주었다. 커서 찾아가라는 것인지, 학생 때 가도 된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먼 길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꿈을 이뤄서 우리나라의 큰 일꾼이 되고 나라의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옥토버 스카이〉(October Sky, 1999)라는 영화가 있다. 1957년 미국의 탄광촌 콜우드가 배경이고, 공부하기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호머가 주인공이다. 남자아이들이 탄광촌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운동을 아주 잘하거나 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길뿐이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호머는 광부가 될 것이었다. 호머가 다른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소련이 첫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을 때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위성을 바라보며 호머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로켓을 만들기 시작해 과학경진대회에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미국 항공우주국 엔지니어 호머 히컴의 전기 〈로켓 보이(Rocket Boys)〉를 원작으로 만들었다.

발명가를 꿈꾸는 아이에게 어른이 해야 할 일

호머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아니라, 호머의 꿈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도움을 준 선생님이었고 창의력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였다. 발명가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우리나라의 큰 일꾼이 되라는 당부보다, 너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일이 어른이 가장 먼저 해야 할이 아닐까.

어린 시절 나도 꿈이 많았다. 발명가나 과학자도 되고 싶었고, 언젠가는 지도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꿈을 하나씩 포기했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깨닫는 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삶이, 이룰 수 있는 삶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다. 버리고 포기하는 삶이 더 아름다운 삶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러한 삶이 공정한 삶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보고 포기하는 것과 그 전에 포기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대통령에게 질문을 한 소년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노력을 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못할 때가 많다. 소년의 말대로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 또한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소년에게조차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홍보해야만 하는데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이런 비극은 서둘러 끝내야 옳다.

기자명 백상웅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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