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노동당 정치인 사디크 칸이 5월5일(현지 시각) 무슬림 최초로 런던 시장이 되었다. 떠들썩한 세상의 반응과 달리, 선거 과정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주요 정당의 후보 선출이 완료된 지난해 10월부터 선거 직전까지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사디크 칸은 보수당의 잭 골드스미스를 10%포인트 안팎으로 넉넉하게 앞서왔다. 더구나 런던은 역사적으로 노동당의 성지였다.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지난해 총선에서마저 전체 73석 가운데 45석이라는 다수 의석을 노동당에 안겨준 도시다.

하지만 칸이 안심할 수만은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먼저 여론조사가 문제였다. 2015년 총선 당시 초박빙 승부를 전망하던 다수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과 달리 보수당이 압도적 과반 의석을 획득해 조사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도 걱정거리였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흑인인 톰 브래들리 후보(민주당)가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 모두 앞서고도 개표에서 진 사례가 있었다. 적지 않은 백인 유권자들이 인종적 편견을 숨기려 브래들리를 지지한다고 말해놓고 정작 투표소에서는 백인 후보에게 표를 던졌는데, 그런 일이 런던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개표 결과가 거의 일치했다. 2000년 런던 시장 직선제가 도입된 후 가장 높은 수준인 45.3%의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했다.

ⓒAFP5월9일 노동당의 사디크 칸 런던 시장 당선자가 시청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비교적 수월해 보였던 칸의 승리 뒤에는 큰 난관을 미리 제거한 참모들의 치밀하고 꼼꼼한 선거 전략이 숨어 있었다. 키워드는 반면교사와 선제공격. 후보를 포함해 선거 스태프 대부분이 에드 밀리밴드(노동당 전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지난 몇 년간 보수당이 어떻게 밀리밴드를 망가뜨리는지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터였다. 보수 진영은 그에게 ‘나약하고 표리부동한 정치인’ 딱지를 붙였고, 노동당은 2015년 총선 참패 당일까지 그 딱지를 떼어내지 못했다. 그들은 그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뼈저린 반성을 통해 실패에서 배우기로 한 것이다.

칸의 참모들이 밀리밴드의 실패에서 발견한 최고의 교훈은 ‘퍼스낼리티(개인적 특성)’가 정책에 우선한다는 사실이었다. 칸의 캠페인은 상대가 그를 규정짓기 전에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칸만의 연관 검색어’를 먼저 만들기로 했다. 그에게는 버스기사의 아들로 공공주택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었다. 그 개인사를 런던 시민 대다수의 숙원인 교통 문제와 주택 문제 해결에 연결시켜 간결한 메시지로 선거 초반부터 끝없이 반복했더니 어느새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 없는 캐릭터가 탄생했다.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가 선거 한 달 전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27%가 “칸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잘 돌봐주고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답한 반면, 잭 골드스미스가 그럴 것이라고 답한 유권자는 10%였다.

ⓒThe Mail on Sunday보수당의 잭 골드스미스가 <메일 온 선데이>에 기고한 문제의 칼럼.

무슬림 앞에 ‘브리티시’라는 수식어 붙인 까닭

예상되는 상대의 공격 포인트에 예방접종을 해둔 것도 주효했다.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약점은 후보가 무슬림이라는 것. 참모들은 그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감추기보다 적극 내세우는 역발상을 택했다. 대신 그 단어 앞에 꼭 ‘브리티시(British)’라는 수식어를 달아 칸이 종교보다 국가를 더 앞세운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무슬림 런던 시장이 영국과 이슬람 세계의 가교 구실을 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같은 조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누가 더 잘 방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유권자의 응답은 칸이 16%, 골드스미스는 13%였다.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의 발언에 대해서도 사전 조치를 취했다. 칸은 보수 성향 신문과의 인터뷰를 자청해, 공식 행사에서 국가 제창을 거부한 코빈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칸과 코빈, 칸과 노동당 핵심 지지층 사이에 굳건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칸이 중도층을 잡으러 거침없이 전진할 수 있었으니, 각자 승리를 위한 역할 분담에 충실했던 것이다.

상대의 헛발질도 크게 한몫 거들었다. 고심 끝에 빼어든 카드가 우리로 치면 북풍 공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었으니, 보수당은 칸을 무슬림 극단주의자로 몰아세웠다. 잭 골드스미스가 〈메일 온 선데이(The Mail on Sunday)〉에 기고한 칼럼이 거센 저항을 불러왔다. “(선거일인) 목요일, 테러리스트를 친구로 여기는 노동당에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를 넘겨줄 겁니까?”라는 제목을 달고 2005년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박살난 버스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유럽에서 인종주의를 자극하는 극우 정당이 가장 기를 펴지 못하는 나라 영국에서 그런 시도는 패착이 되기에 충분했고, ‘최초 무슬림 시장’의 탄생은 탁월한 전략과 상대의 ‘뻘짓’이 결합해 이뤄낸 결과였다.

이쯤에서 뜬금없는 질문 하나. 무슬림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란도 파키스탄도 아닌 인도네시아다. 약 2억6000만 인구 가운데 88%가 알라를 섬긴다. 어림잡아도 2억3000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친 기독교 신자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인종적으로는 자바니즈와 순다니즈로 불리는 원주민 계열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약 1.5%인 중국계가 어울려 산다. 그런 나라에서 기독교를 믿는 중국인 2세, 즉 ‘이중으로 소수(double minority)’인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가 인구 3000만명인 자카르타의 주지사로 선출된 게 2014년이다. 인도네시아 국민 말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로부터 2년 뒤. 인구 850만명 중 약 40%가 유색인종이며 기독교 신자의 비중이 ‘고작’ 48%밖에 되지 않는 런던에서, 100만명을 훌쩍 넘는 무슬림 중 한 명이 시장에 선출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호들갑이다. 아무리 지구촌 시대라지만 역시나 세상은 ‘서쪽’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지극히 새삼스러운 사실과 별개로 이럴 땐 가끔 헷갈린다. 과연 한쪽으로 기운 게 운동장일까, 운동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일까?

각자 섬기는 신들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종교 하나로 세상을 양대 진영으로 갈라놓고 상호 대결이 불가피하다는 식으로 매사를 바라보면, 사디크 칸이란 정치인과 런던 유권자의 선택이 주는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단지 ‘무슬림’이란 세 글자에 집착하게 된다. 칸이 ‘제3의 길’을 주창했던 블레어주의자(Blairite)냐, 아니면 전통 좌파에 가까운 코빈주의자(Cobynite)냐도 호사가들의 관심거리일 뿐 런던 시민에게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런던 시민의 눈으로 보면 이번 선거는 고작 5년 만에 평균 25% 가까이 폭등해 소득의 65% 이상을 월세로 내야 했던 유권자들의 철저한 계급 투표였다. 이들의 고통에 칸이 응답했다는 사실이 그의 종교나 정치 노선보다 훨씬 중요하다. 런던 시민은 그가 선거 기간 내내 외치고 다녔던 ‘Yes we Khan(can)’이란 말을 4년 내내 듣고 싶을 뿐이다.

기자명 김갑수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전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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