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홧김에 트럼프? 트럼프 선택한 ‘상식 밖의 블록’


믿음 안 가는 트럼프의 경제공약


트럼프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공화당 정치인들

 

 

‘누구를 제3후보로 발탁하면 우리 당의 공식 후보라는 이상한 녀석을 떨어뜨릴 수 있을까?’ 오는 11월 대선을 6개월여 앞두고 미국 공화당 내 일부 유력 인사들이 맞닥뜨린 고민이다.

최근 인디애나 주 예비 경선을 끝으로 대선 경선 주자 테드 크루즈, 존 케이식 후보가 잇따라 도중하차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다는 이야기다. 공화당은 극심한 자중지란에 빠졌다.

공화당 주류들은 이 당의 전통적 가치 및 정강과 상반된 주장을 일삼아온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내보낼 수 없다는 위기의식 아래 급기야 제3후보 물색에 나섰다. 트럼프가 본선 후보로 확정되면,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상당수가 덩달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주류 측의 판단이다. 그러다 보니 설사 제3후보가 트럼프 표를 잠식해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다 해도, 공화당 가치와 상반되는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AP Photo4월28일 캘리포니아의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유세장에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모여들었다.

현재 공화당은 ‘마지못한 트럼프 지지’ ‘절대 불가’ ‘태도를 정하지 못한 상태’ 등으로 사분오열 상태다.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표명한 정치인으로는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 켈리 아요테 상원의원, 피터 킹 하원의원 등이 있다. 하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아직 지지할 준비가 안 돼 있다”라며 트럼프에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공화당 관련 유력 인사(공화당 상·하원 의원, 주지사, 현직 공무원, 거액 기부자 등) 70여 명에게 ‘트럼프 지지’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50여 명은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고, 나머지는 ‘아직 지지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둘러댔다. CNN 역시 공화당 유력 인사 16명을 접촉했는데, 대다수가 7월 전당대회 불참 의사를 밝혔다. 그 가운데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부자,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낸 존 매케인 상원의원,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같은 거물급도 포함돼 있다.

공화당 주류가 이처럼 극심한 분열상을 보이는 가운데 제3후보 물색에 나선 주류 인사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특히 라이언 하원의장이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표명한 뒤 이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현재 제3후보 옹립 작업에 적극 나선 대표 인사로는, 보수 논객이자 책사로 정평이 자자한 빌 크리스톨(63)과 유명 블로거 에릭 에릭슨(40) 등을 꼽을 수 있다. 유력한 보수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인 크리스톨은 올해 들어 줄기차게 ‘제3후보론’을 주창하며 물밑 작업을 해왔다. 그는 5월5일에도 MSNBC 방송에 나가 “트럼프가 미국 보수주의와 공화당의 얼굴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이 정말 중요하다”라며 제3후보의 필요성을 거듭 제기했다. 특히 그가 당일 밋 롬니와 비공식 회동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롬니가 제3후보로 나서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REUTER공화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폴 라이언 하원의장(위)은 트럼프에 부정적 견해를 비쳤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 오바마 후보에게 맞서 아슬아슬하게 패한 밋 롬니가 제3후보로 나설 경우, 기존 트럼프 반대 진영은 물론 공화당 주류에겐 더할 나위 없는 낭보일 것이다. 하지만 롬니는 자신이 제3후보로 나섰다가 상대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낙승할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제3후보에 관심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크리스톨은 롬니에게 ‘후보로 나서지 않을 경우, 제3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롬니 말고 또 다른 제3후보로는 누가 있을까? 현재로선 적임자가 보이지 않는다. 한때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와 보비 진덜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들은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이들 외에 제3후보 물망에 오르는 인사는 벤 새스 상원의원, 존 켈리 예비역 장군, 게리 존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 저스틴 아매시 하원의원, 톰 코번 전 상원의원,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랜드 폴 상원의원 등이다.

제3후보 내세워 하원에서 대통령 뽑자?

이들 가운데 반트럼프 전선에 동참한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람은 네브래스카 주 출신의 초선 상원의원 벤 새스(44)다. 크리스톨도 MSNBC 방송 인터뷰에서 제3후보로 새스 의원을 지목했다.

새스는 지난 2월, 트럼프에 맞설 제3후보를 찾자고 주창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트럼프 불가론’을 거듭 천명한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다. 이 때문에 현재 크리스톨을 비롯한 많은 주류 인사들이 그를 제3후보로 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가정사를 이유로 부정적이다.

하원의원 3선, 상원의원 재선 경력의 톰 코번도 유력 후보이지만 현재 와병 중이다. 대선 주자 경선에서 중도 하차한 랜드 폴 상원의원은 오는 가을 대선과 함께 실시되는 의회 중간선거 준비에 여념이 없다.

문제는 공화당 주류가 설사 트럼프에게 맞설 제3후보를 찾아낸다 해도, 그가 본선 경쟁력을 지닐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설령 제3후보가 나오더라도,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존 후보만큼 탄탄한 조직과 자금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본선에서 황당한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본다.

실제로 제3후보가 50개 주에서 대선 유세를 펼치려면 최소 2억5000만 달러 이상의 선거자금이 필요하다. 웬만한 거물급 인사가 아니라면 모으기 어려운 돈이다. 더욱이 결정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공화당 성향의 거액 기부가 폴 싱어(헤지펀드 매니저)나 기업가 데이비드 코크는 아직 제3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정하지 못한 상태다. 공화당 내에서는 제3후보가 나올 경우 트럼프 표를 잠식해 대통령 자리를 민주당에 ‘상납’하게 되리라는 자괴감이 강하다. 라이언 하원의장은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면서도 “제3후보는 당에 재앙적”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도 제3후보는 적전 분열을 일으켜 민주당 후보를 도와줄 수 있다며 부정적이다.

ⓒEPA2012년 대선에 나섰던 공화당의 밋 롬니(위)는 제3후보에 관심 없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크리스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진지한 의지를 가진 제3후보를 내기만 한다면, 그가 의외로 선전해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미국 국민의 비호감도는 역대 대선에 비춰볼 때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참신한 제3후보가 나선다면, 후보 중 누구도 당선에 필요한 대통령 선거인단 수(270표)를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통령 선출권은 하원의 손으로 넘어간다. 하원을 장악한 정당은 공화당이다. 결국 제3후보를 경유한 공화당의 정권 장악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타임〉의 이름난 정치 분석가 마크 핼퍼린은 NBC 방송에 나와 “폴 싱어 같은 사람이 (제3후보로 나선) 새스 의원에게 엄청난 선거자금 지원을 약속하면서 플로리다·오하이오·버지니아·콜로라도 4개 주에서 강력한 유세를 펼치라고 부탁할 수 있다. 만약 새스가 이들 4개 주에서만 승리하면 힐러리 클린턴, 트럼프 가운데 누구도 270표를 얻지 못한다. 결국 하원에서 차기 대통령을 뽑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의 4개 주는 민주당이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거푸 승리한 곳이다. 설령 엄청난 자금과 조직력을 갖춘 제3후보라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공화당 주류 일각의 제3후보 옹립 작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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