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홧김에 트럼프? 트럼프 선택한 ‘상식 밖의 블록’


믿음 안 가는 트럼프의 경제공약


트럼프의 대안으로 부상하는 공화당 정치인들

 

 

한국에서만 선거 시기에 맞춰 종북(從北) 시비가 벌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부동산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에게 ‘종북 시비’를 걸었다.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트럼프가 미국을 ‘경제 측면에서의 북한(the North Korea of economics)’으로 만들 거라고 주장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5월6일)를 내건 것이다.

북한은 ‘주체 낙원’을 자처하며 ‘한국 경제가 곧 몰락한다’고 수십 년 전부터 거듭 주장해왔다. 트럼프 역시 민주당이 ‘경영’해온 미국 경제가 조만간 유례없는 규모의 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노동부는 지난해 6월 실업률을 5.5%로 발표했다. 트럼프는 “실제 실업률은 20%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걷는 국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서 조세부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다. 통계에 근거한 반론이 쏟아져 나온다. 트럼프는 굴복하지 않는다. 다만 주장의 근거를 밝히지 않을 뿐이다.

이런 현실 인식에서 파격적인 정책 공약이 터져 나온다.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 8년(재선을 가정) 동안 미국 정부의 부채를 모두 청산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미국의 정부 부채는 19조 달러로 이 나라 연간 GDP와 비슷하다. 한국 GDP(1조4000억 달러)의 13~14배다. 정부 부채를 줄이려면 세수를 늘리거나 정부 지출을 깎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수 증가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트럼프가 대규모 감세를 공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출도 크게 줄이지 못한다. 가장 큰 비중을 점유하는 사회보장(social security) 및 노인 의료보험(메디케어) 예산을 삭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재정흑자를 내야 정부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다. 트럼프는 재정적자를 크게 늘릴 공약만 내놓으면서 고작 8년 만에 정부 부채를 청산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만의 계산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AFP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그 비용은 멕시코 정부에 부담토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위는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 펜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대폭 높이면 된다. 미국 기업과 가계의 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에 세율을 낮춰도 세수는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성장률을 어느 정도까지 높여야 할까? 〈워싱턴 포스트〉(4월4일자)가 실제로 계산해봤다. 감세하지 않으면 매년 13%씩 성장하면 된다. 그러나 트럼프의 공약대로 감세할 경우, 미국 경제가 앞으로 8년 동안 연간 24~25%씩 성장해야 정부 부채를 청산할 수 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 규모를 불리고 있는 중국의 최근 성장률이 6.5% 내외다. 더욱이 인류 역사에서 20% 안팎의 성장률을 수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기록한 나라는 없다. 미국은 1942년에 단 한 번 19%의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었다.

트럼프의 경제성장 전략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대규모 감세’다. 세금을 줄여서 경제 주체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고 더 열심히 일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공약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상위층 0.2%에게 부과하던 상속세를 폐지하고, 소득 최고세율(최상위 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을 현행 39.6%에서 25%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법인세율도 35%에서 15%로 내린다. 미국의 조세 관련 연구단체들은 트럼프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향후 10년 동안 미국 정부의 세수가 9조5000억~12조 달러 정도 줄어들리라 추산한다. 현재 GDP의 18% 정도인 미국 정부의 세수가 13% 내외로 감소한다. 또한 전체 ‘감세 혜택(덜 내게 되는 세금)’ 가운데 40% 정도가 최고 부유층 1%의 몫이다. 소득 5분위 중 하위 3개 분위(1~3분위)의 몫은 16.4%에 불과하다. 빈약하게나마 제공되던 복지 급여들이 감세로 끊어지면 가장 큰 피해자는 소득 하위 계층이다.

그런데도 상당수 미국 시민은 트럼프의 감세 정책을 지지한다. 질시의 대상인 부유층과 대기업, 금융업체 등을 세금으로 혼내주는 흉내를 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부유세를 신설하고,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 악당 이미지가 굳어진 헤지펀드에도 과세하기로 했다. 미국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차단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그러나 세금 공약 전체를 살펴보면, ‘트럼프 감세’는 명백히 ‘부자 감세’다.

트럼프의 두 번째 성장 전략은 ‘무역 전쟁’이다. 그는 미국이 그동안 “바보 같은” 무역협상의 결과로 중국·멕시코·일본 등으로부터 막대한 손해를 보았다고 선동해왔다. 그래서 중국산 등의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미국·캐나다·멕시코 간의 무역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각종 무역협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취임 첫 100일 동안 내가 아는 위대한 비즈니스맨들을 투입해서 믿을 수 없으리만큼 근사한 무역협정을 체결하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 기자가 ‘불과 100일 사이에 가능한 일이냐’고 되묻자 “시작하겠다는 의미”라고 눙쳤다.

ⓒAP Photo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위)는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트럼프를 ‘무식한 떠버리’라고 표현했다.

오바마케어·정부 부채 청산 공약 두고 말 바꿔

트럼프의 ‘무역전쟁’ 전략은 나름 일자리 정책이기도 하다. 고율 관세로 미국 산업을 보호해 일자리를 만든다. 또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을 복귀시켜 일자리를 창출한다. 트럼프는 포드가 캐나다·멕시코에서 완성한 뒤 미국으로 들여오는 자동차의 관세율을 35%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렇다 보니 미국 내의 이주노동자들까지 공격하게 되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일관되게 불법 이주노동자 1100만명을 강제 추방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또한 남미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울 것이고, 그 비용은 멕시코 정부에 부담케 하겠다고 말한다. 어떻게? 미국에 거주하는 멕시코 노동자들이 인질이다. 그들이 고국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통로를 차단해서 멕시코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애국법의 해외 송금 규정 일부를 개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이런 공약을 실현하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1100만명의 불법 이민자들을 찾아내 억류·조사하고 추방하는 데만 4000억~6000억 달러가 필요하다. 더욱이 농업 등 일부 산업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편이라 미국 내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는 ‘황당하다’는 지적을 받아도 그냥 밀고 나간다. 그러다 정도가 지나치다고 느끼면 말을 바꾸기도 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전 국민 건강보험인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자 “우리 국민들이 가난하다고 해서 건강보험 없이 살게 할 수는 없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오바마케어 폐지 공약을 철회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정부 부채 청산 공약에 대해서도 말을 바꿨다. 미국 경제를 연간 24%씩 성장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국채 보유자(채권자)들과 협상해서 상환금을 줄인다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더 큰 문제다. 국채란, 만기일에 ‘정해진 원리금’을 상환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다. 글로벌 패권국가인 미국의 국채는 세계 금융질서의 주춧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유력 대통령 후보가 국채 원리금 상환 약속을 뒤집어 글로벌 금융질서를 혼란에 빠뜨리겠다는 이야기를 태연히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트럼프의 공약을 ‘정신분열증적 헛소리의 잡탕(word salad)’이라고 표현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트럼프를 ‘무식한 떠버리(ignorant blow hard)’라고 불렀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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