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한 지 10년이 되는 날, 이 글을 쓰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1년6월의 형을 받고 서울구치소·충주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2006년 5월4일 출소했다. 출소를 환영한다며 감옥 철문 앞에 모인 친구들이 두부를 사왔기에 한 입 베어 먹었는데, 함께 오신 어머니가 화를 내셨다. 죄도 없는 네가 왜 두부를 먹느냐고.

남들 다 가는 군대를 왜 못 가겠다는 거냐며, 통곡했던 어머니는 구속된 이후 반년이 넘도록 편지 한 통 쓰지 못하셨다. 수감 6개월이 지나가던 2005년 여름, 큰 용기를 내 접견을 오신 어머니는 ‘이제는 나라에서 법이 만들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며 조심스레 마음을 여셨다. 누구를 때리지도, 누구의 것을 뺏은 적도 없는 아들이 감옥에 있어야만 하는 현실. 수많은 젊은이가 ‘총을 들 수 없고, 살인 훈련을 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감옥에 가는 현실을 비로소 인정하셨던 것이다.

출소하고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끔 듣는 질문이 있다. “병역거부자로 살아가며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전과자의 불이익이나 가족의 고통 등을 예상하며 던진 질문이겠지만, 내 답변은 ‘비참함’이다. 병역거부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래서 비참하고, 병역거부자로서 고통스럽다.

‘익숙해져버린 인권침해.’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 문제의 현재 모습이다. 여전히 매년 500명에 가까운 젊은이가 종교 또는 신념을 이유로 감옥에 가고 있지만, 수십 년째 그래왔던 것 아니냐며 세상도, 사람들도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놀라워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종종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 병역거부 문제를 다뤄줄 수 있는지 문의해보지만, 하나같이 돌아오는 답변은 ‘새로운 것이 없어서 실어줄 수 없다’이다. 계속된 인권침해는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언론만의 이야기일까? 2004년 개원한 17대 국회에서는 병역거부 문제가 국방위원회 등에서 치열하게 논의되었지만, 18·19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만 발의되었을 뿐 상임위원회에 안건 상정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국방부와 병무청도 초창기에는 내부에 연구위원회를 설치하고, 외부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고민을 했지만 이제는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아무런 해결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유엔의 ‘강력한’ 권고도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병역거부자들조차 체념하고 있다. 대체복무 제도가 인정된다면 1.5~2배가 더 긴 복무라도 기꺼이 수행하겠다며, 세상과 법정에서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던 병역거부자들은 사라졌다. 이제는 묵묵히 감옥에 간다.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몇몇은 한국을 떠나겠다며 프랑스·캐나다 등에 난민 신청까지 했다. 신청을 받은 국가들은 한국 정도의 규모와 수준을 가진 나라가 병역거부자 수백명을 수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국제인권규약상 허용하는 병역거부를 법으로 처벌하는 한국에서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를 찾은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한국 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국가의 수치이건만, 그 누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대한민국 4차 국가보고서 심의 결과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병역거부자 전원을 즉시 석방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2015년 10월). 유례없는 수준의 표현이다. 그리고 1년 안에 병역거부 관련 이행 상황을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유엔의 요구는 새로울 것 없는 병역거부 관련 이야기이기에 한국 사회에는 거의 알려질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 새로울 것 없는 칼럼을 쓴다. 병역거부자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는 가장 원칙적인 주장이, 남을 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사회에, 그것이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에게 다시금 전해질 수 있도록.

기자명 임재성 (평화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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