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은 편지와 함께 왔다. “뭐라고 쓰여 있어?” 아내가 묻는다. “그 사람을 찾았다는 것 같아.” 남편이 대답한다. “누굴 찾아?” “카티야를 찾았대.” “…….” 말없이 고개 숙인 아내 앞에서 혼잣말을 이어가는 남편. “누군지 알지? 당신에게 말했던 게 또렷이 기억나. 나의 카티야 얘길 해줬었지.”

나의 카티야, 나의 카티야, 나의 카티야…. 이 한마디가 메아리처럼 아내 머릿속에 울려대고 있을 터였다. 남편이 ‘나의 카티야’라고 부르는 여자가 50년 만에 빙하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 지구온난화 탓인지 만년설이 녹아서 그 아래 갇힌 시신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전언. 스위스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 실족사했다던 남편의 옛사랑이 불쑥 아내의 오늘로 걸어들어 오는 순간. 아내는 차를 더 내오겠다며 부엌으로 갔고, 남편은 독일어로 쓰인 편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전이 필요하다며 창고로 향했다. 평생 같은 길을 나란히 걸어온 부부가 서로 다른 곳으로 제각각 흩어지는 아침이었다.

케이트(샬럿 램플링)와 제프(톰 커트니)의 평온한 노년에 문제의 편지가 당도한 건 월요일. 두 사람의 결혼 45주년 기념 파티가 열리는 날은 토요일. 파티 준비만으로도 정신없는데 두 사람은 앞으로 다른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편지에서 불쑥 튀어나온 ‘나의 카티야’를 어찌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들 생애 가장 당혹스러운 일주일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원작 소설이 있다고 들었다. 데이비드 콘스탄틴의 단편 소설 〈In Another Country〉. ‘사이좋은 80대 부부에게 남편의 첫사랑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편지가 도착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고작 15쪽짜리 소설을 90분짜리 장편영화로 만들면서 감독은 크게 두 가지를 바꾸었다. 등장인물의 나이를 80대 중반에서 60대 후반쯤으로 낮춘 게 첫 번째, 원작과 달리 케이트의 관점에서만 말하기로 한 게 두 번째 선택이다. “지금은 죽고 없는 늙은 세대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만 하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나이 든 남성의 실존적 위기를 다룬 영화나 소설은 많이 있으므로, 이번엔 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어서” 내린 결단이라고 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감독의 선택이 매우 옳았다.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아”

〈45년 후〉는 단지 나이 든 부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어떤 순간을 그리워하고 끝내 미련을 거두지 못하는 한,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나의 카티야’는 고작 ‘나의 첫사랑’만은 아니었으니. 말하자면 그녀는, 나의 짧은 ‘청춘’이고 나의 오랜 ‘상실’이며, 결국엔 내 삶의 모든 ‘처음’들이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과 ‘놓쳐버린 과거’가 빙하의 갈라진 틈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그걸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카티야가 그리운 게 아니라, 지금보다는 그나마 덜 시시한 인간이던 그때의 내 모습이 그리워 애처롭게 매달려보는 것이다.

그 애처로운 안간힘을 케이트가 지켜보는 이야기. 45년 동안 성실하게 쌓아올린 그녀의 시간이 고작 편지 한 통으로 무너지는 이야기. 온 힘을 다해 잡아 올린 청새치의 살을 상어에게 다 빼앗긴 산티아고 영감처럼, 평생을 바쳐 살찌운 한 여자의 일상이 어느새 앙상한 뼈만 남아 비틀대는 일주일.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아.” 케이트의 때늦은 탄식과 함께 어김없이 토요일은 온다. 파티는 열리고야 만다. 그리고….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샬럿 램플링. 순전히 그녀의 연기로 만들어낸 라스트신으로 인해 〈45년 후〉는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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