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진은 달랐다. 일반적으로는 강한 지진(강진)이 발생한 뒤 상대적으로 작은 지진(여진)이 뒤따르다 진정되는 패턴이었다. 그러나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에서는 4월14일에 규모 6.5의 강진이 터진 뒤 이틀 지난 16일에 규모 7.3의 더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이런 예측 불가의 연쇄반응이 더 파괴력이 크고 광범위한 지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피해도 갈수록 늘어났다. 4월14일의 첫 지진 때는 사망자가 10명 미만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지진으로 사망자가 59명으로 늘었다. 대피했던 주민들이 첫 지진으로부터 만 하루가 지나면서 전기 등 생활 인프라가 점차 회복되자 귀가해버린 탓도 컸다. 이미 한 차례 지진으로 손상을 입어 위태롭던 가옥들이 더 센 지진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했으며, 산사태까지 잇따라 발생하면서 희생자가 늘었다. 이런 연쇄 지진으로 구마모토 현을 중심으로 한 규슈 내 5개 현에서 현재까지 총 9000동의 가옥이 완전히 또는 절반 이상 파괴되었다.

일본의 지진학자들과 기상청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본 기상청은 4월20일 ‘여진 발생 확률’ 발표를 포기했다. 그동안 기상청은 큰 지진이 생기면 여진의 규모를 확률적으로 예측해왔다. 이런 예측의 근거는 강진이 발생한 뒤 그보다 약한 규모의 여진이 발생하곤 했던 패턴을 연구한, 과거의 지진 데이터였다. 그러나 이번 구마모토 지진은 ‘예측의 근거’ 자체를 뒤엎고 말았다. 당초 기상청은 1차 강진이 구마모토를 강타한 다음 날 “진도 6 이상의 여진이 발생할 확률은 20%”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틀 뒤 더 강력한 지진이 구마모토 현에 이어 오이타 현까지 강타했으니, 예측을 아예 포기한다고 밝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PA지난 4월14일부터 잇따라 일어난 일본 구마모토 현 지진으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후 마시키마치 관공서 마당으로 대피한 주민들.
ⓒEPA실종자 수색 작업이 벌어지는 미나미아소 산사태 현장.

1차 지진 후 피난소에서 집으로 가는 바람에 2차 지진에 따른 부상을 입은 야마모토 후사코 씨(50)는 “더 큰 지진이 올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불편한 대피소 생활보다 집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 귀가했던 이웃들이 사망했다. 살면서 여러 차례 지진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구마모토 현은 일본에서 지진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주요 산업시설이 이 지역에 많이 건설되었고 문화유산도 여럿 남아 있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 도요타는 일본 내 16개 공장 중 15개의 가동을 최소 4월24일까지 중단시켰다. 불가피한 조치였다. 도요타 자동차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공장들이 구마모토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마모토에 있는 부품 공장 중 상당수가 이번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지역까지 지진 피해를 당하면서 글로벌 기업 도요타의 공급 사슬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단층, 커져가는 공포감

더욱이 4월20일에는 후쿠시마 현 근해에서도 규모 5.6의 지진이 발생했다. 후쿠시마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터졌던 곳이다. 일본 도호쿠 대학 재해과학국제연구소는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을 분석한 결과, 대지진이 발생한 지역 인근의 지각판이 천천히 움직이는 ‘느린 단층’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느린 단층은 1년에 6~7㎝ 정도씩 움직이기 때문에 지진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GPS 센서 같은 위치확인 기기를 동원해야 단층의 미세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느린 단층’은 지극히 무서운 현상이다. 단층이 이동하는 가운데 축적된 응력(지진을 유발하는 지각 에너지)이 대지진으로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과 함께 불길한 예측들이 터져 나오면서, 지금 일본 전역에서는 지진에 대한 공포감이 그 어느 때보다 확산되고 있다.

한편 구마모토 2차 지진이 발생한 4월16일, 남미의 에콰도르에서도 규모 7.8의 강진이 터졌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에콰도르 북부 항구 도시 무이스네에서 서쪽으로 25㎞ 떨어진 해저에서 시작됐다. 4월20일에도 규모 6.1의 강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이후 400여 차례 여진까지 발생해 에콰도르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일본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4월16일 첫 강진 이후 4월21일까지 발생한 피해 상황은 사망자 553명, 부상자 4065명, 실종자 100명 등이다. 앞으로 구조와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에콰도르에 이어 남태평양의 통가와 피지 섬도 흔들렸다. 필리핀에서는 규모 5.0,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는 규모 6.4의 지진이 일어났다. 모두 환태평양조산대, 이른바 ‘불의 고리’에서 일어난 지진이다.

‘불의 고리’는 남극 대륙 파머 군도에서 시작해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북아메리카 로키 산맥-알래스카로 이어지고, 다시 알류샨 열도-쿠릴 열도-일본 열도를 거쳐 인도네시아-통가 섬-뉴질랜드로 연결되는, 4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 지진대다. 태평양판·유라시아판·북아메리카판 등 지각판이 맞물리는 경계 지역으로 지진과 화산활동이 잦다. 세계 활화산과 휴화산의 75%가 몰려 있다. 전 세계 지진의 80∼90%가 이 불의 고리에서 발생한다. 과학자들은 올 초부터 감지된 남아시아와 태평양 등의 잦은 지진 발생 횟수로 미루어볼 때 환태평양조산대의 어딘가에서 더 강력한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본은 올해 들어 규모 5.0 이상의 지진을 16차례나 겪었다. 이처럼 일본에 강진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불의 고리가 일본을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유라시아판·필리핀판·태평양판·북아메리카판 등 4개 지각판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열도가 태평양판과 충돌하면서 터졌다. 이번 규슈 대지진은 필리핀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진은 화산까지 움직이고 있다. 4월18일에는 불의 고리에 연결된 멕시코의 대표적 활화산 포포카테페틀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 폭발로 인해 바위 조각과 화산재가 3000m 상공까지 치솟아 인근 주민 20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EPA지난 4월14일부터 잇따라 일어난 일본 구마모토 현 지진으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후 마시키마치 관공서 마당으로 대피한 주민들.

구마모토 현에서 발생한 연쇄 지진 때문에 규슈 중심부의 활화산인 아소 산에서도 대규모 분출이 염려된다. 구마모토 지진이 발생한 4월14일 일본 아소 산 나카다케 제1화구에서 분화가 발생했다. 구마모토 현과 오이타 현에 걸쳐 있는 아소 산의 칼데라(백두산 천지처럼 화산 폭발로 분화구 주변이 함몰된 지형) 안쪽에서도 단층면의 엇갈림 현상이 나타났다. 단층이 어긋날 경우 화산 분출의 위험이 대폭 커진다.

변동지형학자인 나카타 다카시 히로시마 대학 명예교수에 따르면, 4월19일 단층이 어긋난 현상이 확인된 곳은 구마모토 현의 미나미아소 가와요 지구다. 이곳의 단층은 수평 방향으로 1m 이상 엇갈렸다고 한다. 엇갈린 단층은 4월16일 규모 7.3의 강진을 일으킨 후타가와 단층대로 분석됐다. 원래 후타가와 단층대는 칼데라의 서쪽 가장자리까지만 뻗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의 두 차례 강진으로 인해 칼데라 안쪽까지 뻗어나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폭발 징후 아소 산 옆에선 노후 원전 가동 중  

일본 지진조사위원회 위원장 히라타 나오시 도쿄 대학 교수는 “마그마 덩어리 근처에 단층이 있으면 단층운동에 의한 자극으로 화산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다”라며 단층운동 때문에 아소 산의 분화가 격렬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 아소 산의 분화구 크기는 세계 최대 규모다. 둘레 120㎞이고, 면적 380㎢로 백두산 천지의 약 41배에 달한다. 만약 화산이 폭발한다면 일본 전역은 물론 한반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소 산과 도쿄 간 거리는 900㎞이지만 서울까지는 650㎞에 불과하다. 폭발 규모가 클 경우 우리나라까지 화산재가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일본 기상청은 아소 산 분출 경계수위를 ‘화구 주변 진입 규제’를 의미하는 레벨 2에서 입산 규제(레벨 3)로 격상했다. 또 분화구 주변 최대 4.7㎞ 반경까지 출입을 금지했다. 기상청이 아소 산의 경계수위를 ‘3’까지 올린 것은 2007년 12월(분화 경계 기준 도입)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다. 아소 산 반경 150㎞ 내에 센다이, 겐카이 등의 원전이 있다. 아소 산이 위치한 규슈와 옆 섬인 시코쿠 경계엔 이카타 원전이 자리 잡았다. 또다시 강진이 오거나 아소 산이 대규모로 분출할 경우 후쿠시마 사태 때처럼 원전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구마모토는 한반도에 근접한 지역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며 최근 수명 40년인 노후 원전 두 곳에 추가로 합격 판정을 내린 상황이다. 지역 주민들은 불안하다. 구마모토의 한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야마시타 씨(32)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때도 정부는 안전하다고 말했다. 지금 지진을 예측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 뭘 믿고 원전 안전에 이상이 없다고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라며 불만을 표했다.

이번 구마모토 지진은 일본 정치권을 뒤흔들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지금 일본 정계의 주요 의제들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승인안, 소비세 인상 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아베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한 뒤 오는 여름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때 중의원 선거까지 함께 치르려 했다. 개헌 의석수를 단번에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 파동으로 아베의 야심찬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아베 총리가 오히려 힘을 키울 것이라는 정반대 관측도 있다. 그간 아베가 필요성을 강조해온 ‘긴급사태 조항 신설’이 주목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해 시 총리 권한을 강화하고 국민의 일부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자는 구상이다. 불의 고리에서 발생한 지진이 예측 불가능했듯이 일본 정계도 예측 불가 상태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