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어느 날, 프랑스 학자 마리 뒤복이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있는 아메리칸 대학 사회학과 부교수로 일할 예정이었다. 대학 측과 연구 계약도 순조롭게 완료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집트 측은 뒤복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12시간 동안 공항에서 버티며 입국 거부 사유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뒤복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리행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뒤복의 입국이 거부된 이유는 그가 무바라크 통치 시절 이집트 섬유산업 부문에서 발생한 노동자 파업을 연구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집트 정부는 노조나 노동운동에 대단히 민감하다. 최근 이집트 비밀경찰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탈리아 국적의 대학원생 줄리오 레제니도 이집트 노동운동을 연구하던 박사과정 학생이다.

레제니 피살 사건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학계를 분노로 들끓게 만들었다. 학문의 자유에 대한 잔혹한 압살이란 측면 때문이다. 전 세계 학자 4600명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사건 규명을 요구하는 한편 학문 탄압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AP Photo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위) 정부에서 정치·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최근 이집트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사라졌다. 특히 노동이나 혁명 등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은 가혹할 정도로 배제당한다. 외국인 학자에게는 비자를 내주지 않고, 이집트에 체류 중인 외국인 학자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도 크게 강화되었다. 카이로 대학의 한 교수는 “이집트에서 정치학·사회학·노동문제 등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국적이 이집트든 다른 나라든 마찬가지다. 엘시시 정부는 학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의 사회학자 에이미 오스틴 홈스 교수는 동료 외국인 교수 여러 명이 체포되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많은 학자가 이집트 군부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논문이나 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연구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최근의 역사를 아예 지워버리는 운동이라도 벌이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중동 지역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비중 있는 중동연구학회연합(MESA) 역시 이집트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이집트 정부의) 학문에 대한 폭력과 압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끝내 레제니 살해 같은 비극적인 사태까지 벌어졌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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