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1908년 포드 자동차가 일반 대중을 겨냥해 출시해서 선풍적 인기를 끈 ‘모델 T’ 이후 최대의 히트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내놓은 보급형 준중형 전기차 ‘테슬라 모델 3’ 이야기다. 지금 계약해도 빨라야 2017년 말에나 차를 인도받을 수 있다는데도, 고객들은 1000달러의 예치금을 손에 쥔 채 3월31일 꼭두새벽부터 대리점 곳곳에서 장사진을 쳤다.

미국에서 잘나간다는 혼다 어코드나 닛산 알티마가 1년에 30만 대가량 팔린다. 그러나 ‘테슬라 모델 3’은 사전 구매가 실시된 지 나흘 만에 30만 대 이상의 예약 주문을 받았다. 이처럼 ‘테슬라 열풍’이 거세게 일면서 휘발유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시대가 오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도 높다. 자동차 분석가인 제임스 매퀴비는 〈워싱턴 포스트〉에 “훗날 ‘테슬라가 전기차 혁명을 시작했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는 2008년에 최초의 전기차 테슬라 로드스터를 선보인 뒤 모델 S(럭셔리 세단), 모델 X(스포츠카)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러나 대다수 일반 소비자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기본 가격이 7만 달러에 옵션을 포함하면 10만 달러를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세단인 모델 S는 ‘일반 대중이 구입할 수 있는 전기차 시장 구축’이라는 테슬라의 장기 목표와도 맞지 않았다.

이에 대한 테슬라 측의 답변이 이번에 선보인 모델 3이다. 옵션이 포함되지 않은 모델 3의 가격은 3만5000달러(약 4040만원)다. 벤츠 C 클래스, BMW 3 시리즈 등과 비슷한 가격대다. 그러나 미국에서 전기차 감세 혜택(7500달러)을 감안하면, 모델 3의 실제 구매가는 2만7500달러로 뚝 떨어진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승용차들의 가격대가 2만5000달러(약 2890만원) 선임을 감안하면, 모델 3은 상당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REUTER 내년 말에나 인도받을 수 있는 이 자동차를 주문하기 위해 미국 소비자들이 매장 앞에 줄을 섰다.

테슬라 모델 3의 매력은 가격에 그치지 않는다. 5인승인 모델 3은 한 번 충전하면 215마일(346㎞)까지 달릴 수 있다. 연비가 좋은 휘발유 자동차라도 최소 3~4회 주유해야 갈 수 있는 거리다. 게다가 정지 상태에서 6초 안에 60마일(96㎞)까지 속력을 낼 수 있어 스포츠카가 부럽지 않다. 과거엔 충전에도 몇 시간씩 걸렸다. 그러나 최근 도입된 ‘초고속 충전기(Superchargers)’를 사용하면 불과 몇 분 내에 충전을 완료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델 3은 일반 대중에겐 환상 그 자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가장 큰 문제는 ‘인도 기일’이다. 테슬라가 지금 약속하는 대로 2017년 하반기부터 사전 예약자들에게 모델 3을 인도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테슬라는 전작인 모델 S, 모델 X의 경우에도 최소 몇 달은 기본이고 최대 1년 넘게 인도 기일을 어겨 불만을 산 적이 있다.

머스크 회장은 공장을 증설해 2020년까지 모델 3을 연간 50만 대까지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르다. 모건스탠리 자동차 담당 분석가인 애덤 요나스는 테슬라의 2020년 생산 가능 대수를 25만 대 미만으로 잡았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공장의 주간 생산 가능 대수는 모델 S와 X가 각각 1000대 정도다. 연간으로 따지면, 8만3000~9만3000대. 게다가 생산이 늘더라도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충전지 공급이 뒤따르지 못하면 허사다.

이에 대비해 테슬라는 배터리 전량을 직접 생산해 조달하기로 하고, 네바다 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기가팩토리’를 내년부터 가동할 방침이다. 하지만 시설 증설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의 조달도 테슬라가 직면한 도전이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산 15만 대 생산 라인을 갖추려면 최소 2억에서 최대 5억 달러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손익분기점이라 할 2020년까지 테슬라가 지속적으로 영업하려면, 10억 달러를 추가 조달해야 한다고 내다본다. 2003년 회사 설립 후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테슬라로선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AP Photo‘테슬라 모델 3’을 소개하는 엘론 머스크 CEO.

또한 모델 3은 향후 실제 주행 과정에서 전작 모델 S처럼 각종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모델 S는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차량 조종과 서스펜션, 브레이크 시스템 등을 포함한 여러 기술적 문제 때문에 미국의 권위 있는 소비자 전문잡지 〈컨슈머 리포트〉로부터 ‘추천’ 등급을 받지 못했다. 이 잡지의 제프 밸릿 기자는 최근 호에서 “지난 3년간 모델 S를 이용한 고객 1300명이 접수한 불만을 조사한 결과, 차문 개폐 장치에서 트랜스미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발견했다”라며 모델 3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비중 아직은 ‘새 발의 피’이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전기자동차 구매에 따른 감세 혜택이 제한적으로 부여된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모델 3의 경우 최대 7500달러의 감세 혜택이 주어지지만, 미국 정부는 테슬라의 전기차에 부여하는 감세 혜택을 최초 20만 대로 제한하고 있다. 테슬라는 2014~2015년 2년 동안 기존 모델인 S, X를 4만2000대가량 팔았다. 이런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팔리는 테슬라 제품이 모두 10만 대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모델 3의 출고 시점은 2017년 하반기다. 모델 S와 X가 내년까지 많이 팔린다면, 모델 3 예약자 가운데 몇 명이나 감세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처럼 감세 효과가 사라지고 지금처럼 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예상만큼 높아지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테슬라 모델 3을 계기로 불붙은 전기차의 동력은 계속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특히 각국의 탄소배출량 감소를 의무화한 파리기후협약 이후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도 비상이다.

미국의 경우 환경보호청이 휘발유 차량의 연비 기준을 2025년까지 갤런당 54.5마일(ℓ당 23.2㎞)로 높이라고 공고한 상태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기존의 메이저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닛산은 2010년 5인승 전기차 리프(Leaf)를 생산하기 시작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0만 대 판매를 돌파했고, 테슬라 모델 3에 맞서 조만간 리프 2를 내놓을 예정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오는 12월 출시를 목표로 1회 충전 시 215마일(346㎞)까지 달릴 수 있는 전기차 셰비볼트(Chevy Bolt)를 3만 달러 가격대로 선보일 예정이다.

전기자동차 전문가인 살림 모시는 〈EFT 데일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부문은 이후 생산비가 대폭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전망이 밝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전기차 생산비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배터리 값이 2010년 이후 65%까지 하락한 사실에 주목한다. 배터리 가격의 급락에 따라 2020년 중반에는 전기차 가격이 일반 휘발유 혹은 디젤차보다 훨씬 저렴해지리라는 예상이다.

미국에서 2008년부터 2015년 말까지 7년간 팔린 전기차는 하이브리드차를 포함해 대략 41만 대다. 이에 비해, 지난해 미국에서 생산된 비(非)전기차는 모두 1750만 대다. 세계적으로는 대략 9000만 대.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대중의 폭발적 관심과 수요를 보인 테슬라 모델 3의 출시를 계기로 머지않아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도래하리라 본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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