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유명 인사들이 연루된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피난처 자료를 폭로한 ‘파나마 페이퍼스’는 세계 언론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파문의 시작은 “안녕하세요. 존 도(John Doe)입니다. 자료에 관심 있나요?”라는 메시지에서였다. 독일 뮌헨에 있는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SZ)〉의 바스티안 오베르마이어 기자(38)는 그의 동료인 프레데리크 오베르마이어(32)와 함께 존 도로부터 1150만 건의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받았다.

2.6테라바이트에 달하는 이 자료는 책에 담으면 3만8000권 정도 분량이다. 결국 두 기자는 단독 보도를 포기하고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도움을 요청했다. 전 세계 70개 국가, 100개 매체, 370명의 기자가 존 도의 자료를 분석하고 확인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참여해 한국인 195명의 명단을 추려내 추적한 끝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가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파나마 페이퍼스의 근원지인 파나마 모색 폰세카 법률사무소의 창립 파트너 라몬 폰세카는 ICIJ의 보도에 대해 “흥행과 판매만을 노리는 비열한 저널리즘”이라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ICIJ에 의해 폭로된 직후 중국 정부는 곧바로 보도 통제를 시작했다. 포털 검색창이나 웨이보(微博·중국의 SNS)에서도 ‘조세 피난’이나 ‘파나마 페이퍼스’ 같은 용어는 검색이 불가능하다. 중국의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시진핑 주석의 친지들이 해외의 조세피난처로 돈을 빼돌렸다고 보도할 수 없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이번 파문이 ‘서방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러시아 일간지의 한 기자는 “만약 러시아 기자 혼자라면 이런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기자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파나마 페이퍼스를 공동 취재했던 〈뉴스타파〉의 심인보 기자(사진)는 “처음엔 방대한 자료 때문에 힘들었다. 그러나 취재를 하면 할수록 검은돈의 고리를 밝히고자 하는 사명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브라질 기자는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메시의 탈세 혐의와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그의 팬이다. 그러나 메시의 혐의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말했다.

조세피난처에 재산을 은닉할 만한 능력자들은 언론을 탄압할 권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370여 명에 이르는 기자들은 1년에 걸친 협업 취재로 권력자들의 치부를 햇살 아래 까발리고 말았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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