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골수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북소리가 넓게 퍼졌다. 지난 3월26일, 미수습자 조기 귀환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바라는 예술제가 진도 팽목항에서 열렸다. 팽목항 예술제는 광주·목포·해남·진도 등 전남 지역 예술가들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여는 행사다. 단원고 2학년1반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씨가 인근 지역을 돌며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만 함께 기다려달라’고 호소하면서 시작됐다. 은화양은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다.

팽목항 등대에서 500여m 떨어진 컨테이너 임시 숙소에는 2학년2반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가 누워 있었다. 그녀는 북소리를 들으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팽목항에 있으면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저녁, 박씨는 홀로 저녁을 먹었다. 밥 세 숟가락쯤 삼키는 게 전부다. 은화 엄마 이씨가 식당에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미수습자 가족이 혼자 팽목항에서 밥 먹는 건 너무 비참해.” 2014년 4월16일 이후 줄곧 이곳에 있다.

1년 전만 해도 미수습자는 실종자로 불렸다. 실종은 종적을 잃어 간 곳이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두 어머니는 해양수산부 측에 용어 변경을 요청했다. 이후 모든 공식 문서에서 ‘실종자’가 ‘미수습자’로 바뀌었다. 박씨는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위안이 된다”라고 말했다.

미수습자 가족의 관심은 오직 인양이다. 정부가 “인양도 수색의 한 방법”이라며 수중 수색을 종료한 2014년 11월부터 인양에 대한 확답을 얻기 위해 이들은 각개전투를 해야만 했다. 신경섬유종을 앓아 서서히 한쪽 청력을 잃어가던 박은미씨는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이금희씨는 전국을 다니며 시민을 만나고, 해양수산부와 국회를 드나들었다.

인양이 공식화되기 전이던 지난해 이맘때에 비하면 뼛조각이라도 찾을 희망이 있다는 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2015년 4월22일 정부가 인양을 공식화하면서 선체 인양 계약을 맺은 중국 상하이샐비지 소속의 잠수사와 선원은 해상 작업을 해왔다. 지난 설날에는 미수습자 가족이 이들을 찾아가 과일, 고기 등 음식과 편지를 전달했다.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시길 빕니다. 부디 9명의 미수습자 중 한 명도 빠짐없이 꺼내주세요….’

ⓒ시사IN 이명익
2년째 팽목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 박은미씨(왼쪽)와 이금희씨.

“아이가 못 나오면 맹골수도에 빠질 거야”

세월호 특별법에는 인양에 대한 언급이 없다. 미수습자 가족을 위한 지원 역시 ‘희생자’의 범주로 묶였다. 아이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트라우마 상담을 받거나, 의료 서비스를 지원받는 건 사치로 받아들인다. 세월호 특조위가 낸 성과를 보면 기대하기도 어렵다. 구조하지 않았고 수색마저 중단한 정부가 미워도, 매달릴 데는 정부뿐이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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