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번에는 목소리에서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평가다. 뭐랄까. 어떤 평가를 할 때 진정성이란, 비유하자면 전가의 보도쯤 되는 것 같다. 마치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아 발사하듯 수많은 수식과 미사여구를 단 하나의 단어로 압축해서 뙇! 그런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진정성이라는 것은 대체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진정성을 정의할 수 있는 특정한 기준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지난해 원더걸스의 앨범 〈리부트(Reboot)〉가 발표되었을 당시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 음반을 통한 원더걸스의 지향은 기존 아이돌 음악에 없(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탑재하는 것이다. 힌트는 그들이 악기를 ‘직접’ 연주한다는 사실에 있었는데, 동영상들에 주렁주렁 달린 댓글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댓글의 의견은 대체로 이렇게 수렴되었다. “이제 원더걸스는 아이돌의 클래스를 넘어섰다.” 이는 오래된 대립 관계를 연상케 한다. 가짜와 진짜는 ‘진정성’으로 구분될 수 있고, 대중음악에서 대개 전자는 ‘아이돌’을, 후자는 ‘리얼 악기’의 세계를 꼽는다는 식이다. 그렇다. 앞서 말한 ‘무언가’가 바로 이 ‘진정성’이다.

당신은 음악을 감상할 때 진정성을 어떻게 감별하는가. 진짜 악기를 쓴 밴드 음악에 진정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꽤 봤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요즘에는 진정성을 엄청 따지는 외국 음악 전문지에서도 진짜 악기라고는 단 한 점도 쓰지 않는 음악들에 아주 높은 점수를 준다. 심지어 이런 음악들이 리얼 밴드보다 더 강렬하게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직접 연주’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좋은 음악이라고 확신하곤 한다.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맹신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싱어송라이터가 더 높은 진정성을 담보한다고 의견을 제시하는데,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로 꼽히는 어리사 프랭클린의 곡은 대부분 남이 써준 것이었다. 예시가 너무 부족하다고? 엘비스 프레슬리, 제임스 브라운 등 작곡가의 곡을 받아 노래한 특급 가수들의 리스트는 팝과 가요를 막론하고 정말이지 끝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더 높게 쳐주는 관습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문화지 168권나무(위)의 새 앨범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를 들으면 ‘진정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음반 앞에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권나무라는 포크 뮤지션이 막 발표한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라는 앨범이다. 그의 음악에는 화려한 수사라고는 없다. 코드 몇 개와 특정한 구조의 반복, 단정하게 다듬어낸 노랫말 정도만으로 곡을 이끌어나간다. 자연스레 부각되는 건 담백하면서도 명징한 울림을 지닌 그의 목소리다. 이렇듯 내면에 솔직한 (것처럼 들리는)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진정성’이라는 것이 여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속물적인 욕망을 인정하고서야…

결국 핵심은 목소리로 표현되는 ‘나’와 그 목소리가 겨냥하는 ‘세계’ 사이의 거리에 있다고 본다. 권나무 등의 포크 뮤지션에게 1인칭의 자아는 왜곡된 세계와 대립하고, 이러한 세계와의 투쟁 끝에 자아의 순수성을 지켜낸다는 서사를 지니고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포크 음악의 대부분이 이런 식의 얼개를 통해 듣는 이들에게 어떤 진심을 전달한다.

그렇다면 진정성이라는 것은 비뚤어진 세계로부터 자아를 보호한다는 태도를 지닌 포크 음악류(流)에서만 기능할 수 있는 것일까. 세계와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화해하는 나의 욕망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나와 당신이 속한 속물적인 우리의 세계가 단순히 흑과 백으로 나눠질 수 없다는 점에서, 진정성이라는 개념은 포크라는 자장 속에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요컨대, 그것이 만능키라도 되는 양 진정성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러한 모순을 인정하고 끌어안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성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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