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곡 ‘드립 드롭(Drip Drop)’에서부터 혼돈의 비트가 춤을 춘다. 사운드의 톤과 볼륨이 무작위로 커졌다 작아지고, 태민의 보컬은 그 사이를 날렵하게 파고들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이어지는 곡은 ‘프레스 유어 넘버(Press Your Number)’다. 속도를 늦추고 음악적인 뿌리 중 하나라 할 R&B의 실루엣을 은근하게 녹여낸 뒤 후렴구에서는 펑크를 기반으로 하는 통통 튀는 리듬으로 집중력을 유지한다.

“누가 작곡했지?” 싶어 크레디트를 찾아보니 아주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띈다. 주인공은 바로 우리 시대의 슈퍼스타라 할 브루노 마스다. 그러나 ‘프레스 유어 넘버’에서 태민은 단지 브루노 마스의 우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뭐랄까, 확실히 일렉트로‘적’이고 SM‘적’이다. 글쎄. 마치 블라인드 테스트처럼 크레디트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브루노 마스와의 연관성을 추측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연합뉴스태민이 솔로 2집 〈프레스 잇(Press It)〉을 내놨다.

2014년의 데뷔 앨범 〈에이스(Ace)〉를 들으면서 솔직히 ‘이 이상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첫 두 곡만으로도 태민은 듣는 이들의 의구심을 단숨에 뒤로 물린다. 그는 서정적이면서도 ‘최신’의 감각을 잃지 않는 발라드 ‘솔저(Soldier)’를 부르는가 하면, ‘벌써(Already)’에서는 저 유명한 테디 라일리와 샤이니의 동료 종현의 지원사격을 받아 현대 R&B의 어떤 정석을 일궈낸다. 특히 보컬 측면에서는 이제 거의 ‘완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다. 곡의 진행에 따라 언제 악센트를 부여해야 할지, 수도 없이 반복했을 연습을 통해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게 딱 느껴진다.

이제 다시 기어를 올릴 차례다. 파워풀한 리듬 터치와 각종 효과음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던져주는 ‘게스 후(Guess Who)’는 마치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를 연상케 하고, ‘원 바이 원(One By One)’에서는 루프처럼 반복되는 기타 리프와 묵직한 베이스를 통해 최면적이면서도 상승하는 무드를 선사한다. ‘미스터리 러버(Mystery Lover)’는 또 어떤가. 오르골 소리로 시작되는 이 곡은 앨범이 지닌 다채로운 분위기를 압축해서 설명해주는 지표와도 같다. ‘섹슈얼리티(Sexuality)’에서는 절도 있는 리듬이 돋보이는 복고풍의 유로 댄스를 시도했고, ‘오늘까지만’과 ‘최면’에서는 어쿠스틱한 질감을 살려내 음반을 차분하게 마무리한다.

카오스적 사운드를 통합하는 태민의 존재감

이제 총정리를 해봐야 할 시간이다. 지금까지 곡 설명을 어떻게든 다 하려고 한 이유는 그만큼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스타일이 ‘다양함’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음반에는 실로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마이클 잭슨, 브루노 마스, 샤이니, 위켄드(The Weeknd)의 그림자가 일렁이는가 하면, 장르로는 R&B·펑크·일렉트로·록이 뒤섞여 있다. 곡들을 하나로 묶는 아이덴티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외면받을 수도 있을 음반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 장의 앨범을 하나 혹은 적은 수의 기조로 엮어내는 방식은 20세기적이다. 까놓고 말해 그냥 구식이란 얘기다. 우리가 통상 케이팝이라고 부르는 음악들은 도리어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레퍼런스를 끌어안으면서 이걸 물리적으로 펼쳐놓는 방식을 선호한다. 바로 한국학자 존 리 교수가 케이팝을 논하면서 “위협적이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은 패키지(non-threatening, pleas ant package)”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빌보드 차트가 증명하듯이 케이팝뿐만이 아닌 현대 주류 대중음악의 전반적인 방향과 특성 자체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중요해진 것이 가수 본인, 즉 스타성이 아닐까. 카오스에 버금갈 만한 이 사운드들을 통합할 수 있는 가수의 존재감이야말로 현대 대중음악을 해석할 수 있는 열쇳말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스타성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음악적인 자질은 도리어 균질성이 아닌 불균질성임을, 이것을 넘어 불균질성을 균질한 것처럼 ‘들리게’ 하는 것임을 이 앨범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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