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모술수의 끝을 보여주는 미국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공식 트위터 계정이 3월17일 의미심장한 트윗을 하나 올렸다. 극중 대통령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가 “브라질 뉴스를 보고 있는” 모습이다. 브라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금 브라질의 최대 화두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 여부다.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중요한 이유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부정부패 스캔들이다. 지구 역사상 최대 스캔들(28억 달러 규모)로 불리는 ‘페트로브라스(Petro bras) 스캔들’을 의미한다.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가 비자금을 조성해 독점권을 확보하기 위한 로비를 벌인 사건이다.

‘라바 자투(Lava Jato:세차(洗車)를 뜻함)’라는 명칭으로 진행 중인 특검 조사는 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겨냥하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이 측근의 비리를 몰랐을 리 없기 때문에 탄핵 시도가 지난해부터 시작되었다. 탄핵 명목은 2014년 대선 때의 대선자금 회계부정이지만, 여기에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이 불을 지폈다는 의미다. 지난해 시작된 탄핵 추진은 도중에 절차상의 법적 하자가 지적됐고 분위기도 지지부진해지면서 동력을 잃었다. 그랬던 것이 올 3월 초부터 사태가 급변한다. 양형거래를 통해 구속에서 풀려난 한 상원의원이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하 룰라)이 스캔들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부정에도 개입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AP Photo룰라 전 대통령(오른쪽)이 3월17일 장관 취임식을 마치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특검팀의 지휘에 따라 연방경찰은 룰라의 자택을 수색하고, 룰라를 입건 조사했다. 페트로브라스의 자금이 룰라의 수많은 호화 부동산 구매에 투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룰라 개인 계좌가 아닌 룰라 재단이 개입됐으며, 추가 구속수사가 곧 진행되리라는 전망이 커졌다.

이때 호세프 대통령이 개입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자신의 전임자인 룰라 전 대통령에게 연방장관직을 제안했다. 연방장관은 특검팀의 구속 수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연방장관은 연방대법원 판사의 영장이 있어야만 구속할 수 있는데, 특검팀의 판사는 연방지법 판사여서 구속이 불가능하다.

충격적인 뉴스는 끝이 아니었다.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간의 통화 기록이 3월16일 인터넷에 공개됐다. 룰라는 검찰 조사 대상이기 때문에 연방경찰의 도청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녹음이 어떻게 공개됐는지 관련 자료를 제출토록 요구하는 등 인터넷 공개의 위법성 여부는 상당히 논쟁적인 사안으로 흐르는 중이다. 통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호세프:룰라, 말해줄 게 있어요.
룰라:말해봐요.
호세프:말하자면, 를 서류와 함께 보낼 텐데, 필요할 때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장관 임명이니까요, 알았죠?
룰라:어허, OK. OK.
호세프:그게 다예요. 그러니까 거기 기다려요. 가 갈 테니.
룰라:OK. 여기서 기다릴게요.

필요할 때 쓸 수 있다는 말은 곧 구속될 때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룰라의 장관 임명은 수사를 방해할 목적이라고 대통령 본인이 확인해준 꼴이 되었다. 대규모 탄핵 시위가 재개됐고, 대통령을 탄핵하고 룰라를 구속 수사하라는 여론이 높아졌다. 다음 날 오후, 연방 브라질리아 지법의 한 판사는 룰라의 장관 임명을 정지하는 법원명령을 내렸고, 뒤이어 20여 개 주의 연방판사들이 동일한 내용의 법원명령을 한꺼번에 내렸다. 이래서는 룰라가 버틸 수가 없다.

ⓒAP Photo3월13일 상파울루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죄수복을 입은 룰라와 ‘탄핵’ 어깨띠를 두른 호세프 대통령의 인형을 앞세워 행진했다.

의원들은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할까

결국 3월21일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룰라의 장관 임명을 “당분간” 유예시켰다. 소명자료 제출과 함께 특검팀의 조사도 받으라고 명령했다. 정부는 룰라 장관 임명자의 인신보호청원(habeas corpus)을 시도했으나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앞서 3월16일에는 탄핵심의특위가 연방하원에서 정식 구성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브라질 선거법원(TSE)은 2014년 대선자금 문제를 심의하고 있으며, 여기서 불법으로 판결이 나올 경우 브라질은 대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 물론 정부 측이 연방대법원에 항소할 수 있기 때문에 절차가 오래 걸릴 수 있다. 의회가 추진 중인 탄핵 절차도 6개월 이상 흐를 가능성이 크다. 브라질은 1992년 페르난두 콜로르 대통령 탄핵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는데 당시에는 7개월이 소요됐다. 다만 당시는 콜로르 대통령이 탄핵 시점 직전에 사임했던 반면, 현재 브라질 법은 탄핵 절차 중에 대통령의 사임이 불가하도록 수정돼 있다.

그렇다면 탄핵에 찬성할 의원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는 채울 수 있을까? 브라질의 경우 각 정당에 소속된 의원들은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정당의 의견이 아닌 개인 입장에 따른 투표가 보장된다. 게다가 당선을 위한 탈당 및 입당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정당 소속 의원 수에 따른 계산은 거의 무의미하다. 예상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 절차에서 생존하려면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이끌고 있는 정당,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의 지지가 필수인데, 테메르 부통령은 형식적으로나마 개최됐던 룰라의 장관 임명식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탄핵심의특위의 구성을 주도한 에두아르두 쿠냐 하원의장도 PMDB 소속이다. 쿠냐 하원의장은 본인이 페트로브라스 스캔들 조사 대상 중 한 명이다. 자신의 부패 혐의가 공개됨에 따라 대통령 탄핵을 강경하게 추진하는 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MDB는 현지 시간 3월29일 연립정권 탈퇴를 선언했다. 제1야당인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의 예전 대선 후보(룰라와 경쟁했다)인 조제 세하 상파울루 주 상원의원이 테메르 부통령과 탄핵 이후의 정부 재구성 및 2018년 대선 후보를 밀약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테메르 부통령은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였던 룰라의 인기도 추락 중이다. 3월21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룰라는 차기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결선투표에 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다.

※ 이 기사에 포함된 모든 논평은 필자의 소속 기관과 무관한 개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기자명 위민복 (외교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