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벨기에는 ‘유럽 IS전사 양성소’?


아랍어도 모르는 ‘유럽 IS 전사’

 

 

3월22일 아침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자벤템 국제공항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들렸다. 한 시간쯤 뒤에는 유럽연합(EU) 본부 부근에 있는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테러 용의자 3명이 벌인 두 차례 테러로 지금까지 30명이 숨지고 230여 명이 다쳤다. 부상자 대부분이 중상자여서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공항을 비롯한 브뤼셀 시내 곳곳이 폐쇄됐고, 항공기 운항과 대중교통 운행도 전면 중단되었다. 사건 직후 이슬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이번 테러가 자신들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번 브뤼셀 테러는 지난해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파리 테러 이후 가장 큰 테러 사건으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터키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해 터키 남부 국경도시 가지안테프에서 시리아에 다녀온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잡혔다. 당시 가지안테프 경찰서에는 인도네시아인, 모로코인 등 IS 대원으로 추정되는 외국인이 여럿 체포된 상황이었다. 터키 경찰은 이들을 조사하면서 이 가운데 한 명이 벨기에 국적자이며 IS와 연관된 인물임을 확인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해당국에 통보하고 일단 터키 밖으로 추방하는 게 관례인데, 벨기에 국적의 그 젊은이도 그의 선택에 따라 네덜란드로 강제 추방되었다. 그가 바로 이번 브뤼셀 테러 사건의 자살폭탄 테러범 가운데 한 명인 이브라힘 엘바크라위다.

ⓒAP Photo3월18일 파리 테러 주범 중 유일한 생존자인 살라 압데슬람이 벨기에 몰렌베이크에서 생포됐다,

터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에 대한 정보는 분명 벨기에와 네덜란드에도 공식 통보되었다. 쿤 긴스 벨기에 법무장관은 “지난여름 엘바크라위가 터키에 잡혔을 때는 그가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증거가 없었다. 당시 그는 벨기에의 테러리스트 명단에도 없었고 범죄행위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는 와중에 엘바크라위는 이번 브뤼셀 공항 테러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만약 터키에서 그가 체포되었을 때 벨기에 당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이번 테러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테러는 그냥 벌어지는 게 아니다. 테러범의 성장 배경은 물론 테러 조직의 특성과 시대 상황 등이 맞물려 발생한다. 벨기에가 테러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조짐은 이미 지난해 발생한 파리 테러 때부터 감지되었다. 이번 브뤼셀 테러의 유력 용의자들이 파리 테러 때 폭탄 제조와 수송을 맡았던 공범이다. 나짐 라크라위(24)는 브뤼셀 테러를 결행한 인물이자 파리 테러의 공범이다. 벨기에 경찰은 지난 3월18일 파리 테러의 주범 살라 압데슬람(26)을 체포한 후 라크라위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를 공개 수배했다. 벨기에 경찰이 라크라위를 공개 수배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브뤼셀 테러 사건이 터졌다. 압데슬람이 체포됨과 동시에 라크라위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고 공개 수배라는 부담감이 그로 하여금 테러를 바로 실행하게 하는 기폭제가 된 셈이다.

벨기에에는 몰렌베이크라는 ‘섬’이 있다

유럽 국가 중 면적이 비교적 작은 국가인 벨기에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찾아내기 힘든 배경에는 몰렌베이크라는 이민자 거주지역의 특성이 있다. 몰렌베이크는 원래 공장지대로, 가난한 벨기에 노동자들이 살던 곳이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리틀 맨체스터’라 불리며 벨기에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에 터키와 모로코 등에서 무슬림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몰렌베이크 인구는 2000년에 2만4000명 정도였다가 지금은 아랍계 이주민이 몰려오면서 10만명으로 급증했다. 그중 무슬림 인구가 3분의 1이 넘는다. 아랍어가 소통되고 할랄(무슬림에게 허용된 것) 음식점과 식품점이 생겨나 중동의 어느 도시를 가져다 놓은 듯하다. 30%가 넘는 실업률과 차별로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이슬람 급진주의에 급속하게 빠져들었다. ‘유럽 테러리즘의 메카’ ‘유럽 IS전사 양성소’ 등 각종 오명이 생겨났다.

지난해 프랑스 파리 테러에 이어 이번 브뤼셀 테러에도 이곳 출신들이 연루되어 있다. 시리아 내전에 참가한 벨기에의 지하디스트 130명 중 85명이 몰렌베이크 출신이다. 테러 용의자들이 몰렌베이크에서 가족과 친구 등 조력자들과 섞여 숨어 있으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브뤼셀의 한 시민은 “몰렌베이크는 할아버지 시절에 살던 추억의 도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한다. 그 도시 안에서 무슨 괴물이 자라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몰렌베이크 바로 옆 도시인 스와르베이크도 걱정스럽다. 브뤼셀 테러 용의자 가운데 라크라위는 스와르베이크 출신이다.

ⓒAFP3월18일 파리 테러 주범 중 유일한 생존자인 살라 압데슬람이 벨기에 몰렌베이크에서 생포됐다. 그로부터 나흘 뒤 브뤼셀 자벤템 국제공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위).

테러 행위에는 항상 상징성이 수반된다. EU 본부가 위치한 EU의 수도라는 점도 테러범들이 브뤼셀을 택하게 된 요인이다. 이번 폭탄 테러가 발생한 브뤼셀 도심의 말베이크 지하철역은 EU 본부가 있는 곳이다. 현재 시리아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IS 격퇴 작전에 유럽 국가들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감과 복수의 상징으로 EU 건물 근처 지하철역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또 EU가 미국과 더불어 공중폭격을 해 IS 군사기지들을 섬멸하자 이곳의 IS 전사들이 시리아 밖으로 도망간 것도 귀국 테러의 배경이다.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각자 테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벨기에 출신 귀국 전사들이 테러 장소로 택한 브뤼셀 국제공항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유럽의 허브로 일컬어지는 벨기에 공항을 선택함으로써 이번 테러가 벨기에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공항은 여러 국가 사람들이 밀집하는 곳이다.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있기 때문에 폭발물을 들고 들어가도 의심을 덜 받는다. 각국의 비행기가 이착륙하므로 사건을 세계적인 뉴스로 만들 수 있다. 테러범들은 이처럼 ‘한번 테러에 수많은 인명 살상’이 일어나고 자신들의 거사가 세계 곳곳에 잘 알려질 수 있는 곳을 택한다.

‘테러 프로파일링’ 기법도 도입했지만…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벨기에도 테러 대책을 세우며 일명 ‘테러 프로파일링’을 도입했다. 경찰관 1만8000여 명을 상대로 급진주의자들을 파악할 수 있는 훈련을 실시 중이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테러단체에 합류한 사람, 전사로 활동하다 복귀한 사람, 근본주의에 심취한 사람 등에 대한 분석과 테러 프로파일링 전문가를 양성 중이다. 또 IS 대원 중 벨기에 국적자 670명의 리스트를 경찰관에게 배포해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젊은 청년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테러 용의자 대다수가 거주하던 몰렌베이크에는 여전히 경찰관 수가 부족하다. 지난해 11월 파리 연쇄테러 이후 몰렌베이크에 경찰관 50명이 추가로 배치되었을 뿐이다. 또 유럽 국가 간의 공조도 문제다. 유럽은 국경선 없이 고속도로나 기차 등으로 테러범들이 마음대로 오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에 서로 공조가 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일선 경찰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EU 대테러 조정관은 “EU 국가 가운데 일부 국가는 국경 통제와 관련해 인터폴과 공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IS와 같은 극단주의 조직에 합류하고자 EU에서 약 5000명이 이라크와 시리아로 떠났지만 데이터베이스에서 신원이 확인된 외국인 전사자 명단은 2786명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선량한 시민 30여 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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