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 ‘애국법’으로 본 테러방지법의 미래
테러범 잡으랬더니 시민 잡았다

 

 

2004년 7월 미국 법무부는 의회에 ‘애국법 적용 사례’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애국법이 제대로 적용된 사례를 정리해 법무부의 성과를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 보고서의 내용이 오히려 법무부의 의도를 무참하게 짓밟고 만다. 애국법의 오용 사례가 광범위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애국법의 입법 취지는 ‘테러로부터 미국인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다. 애국법을 들이대면, 까다로운 수사 절차를 거치지

ⓒAP Photo애국법 이후 공항의 검문·검색이 강화됐다. 애국법은 지난해 6월 미국 자유법으로 대체됐다.

않고도 개인 신상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비밀리에 취득할 수 있다. 그래서 수사·정보 당국은 애국법으로 강화된 권한을 테러가 아닌 마약 거래, 신원 도용 등 일반 범죄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이 법무부 보고서와 관련해 〈뉴욕 타임스〉는 “부시 행정부가 테러리스트에 대항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하던 애국법이 테러와 상관없는 범죄 수사에 이용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애국법은 테러를 방지한 것이 아니라 수사 당국의 편의만 봐준 꼴이었다.

앤토인 존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나이트클럽 경영자인 그는 마약 밀매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수사 당국은 애국법을 근거로 영장도 없이 존스의 자동차 위치를 GPS로 추적했다. 이후 법정에서 검찰의 이런 수사 방식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은 존스를 무죄로 판결했다. 애국법을 근거로 용의자에 대한 정보 추적을 무제한으로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었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가 감시하는 테러 용의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테러 용의자의 수를 지나치게 부풀려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단체 간부인 배리 스타인하트는 “(미국 정부의 테러 용의자 감시 시스템은) 불공정하고 자원 낭비적인 데다 통제할 수도 없다. 죄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테러 용의자 100만명 중 5만명 정도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청의 ‘항공기 탑승 금지’ 또는 ‘요주의 인물’ 명단에 포함되어 가족 여행도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다. 명단에 오른 용의자들은 세탁소 주인에서 기자, 자동차 정비사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런 평범한 시민이 일단 테러 용의자로 몰려 수감되면, 이후 결백한 것으로 판명된다 해도 감시를 받아야 했다. 한번 테러 용의자로 찍히면 평생의 삶이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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