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국 ‘애국법’으로 본 테러방지법의 미래
테러범 잡으랬더니 시민 잡았다

 

이집트 출신 미국 이민자인 안와르는 화학공학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출장 가 있던 중 그의 휴대전화로 부재중 전화가 한 통 들어왔는데 대수롭지 않게 넘긴 적이 있다. 출장을 마친 뒤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워싱턴 D.C. 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 직원이 “급한 메시지가 있다”라며 다가왔다. 직원과 함께 어디론가 향하던 중 갑자기 안와르의 머리에 검은 두건이 씌워졌다. 그는 순식간에 테러 용의자로 전락했다. 그가 미국에 도착했다는 기록도 삭제되었다. 출장 중이던 안와르에게 전화를 걸었던 자가 라시드라는 거물급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안와르는 화학공학자다. 심문관은 그에게 “당신, 핵폭탄도 만들 수 있잖아?”라고 황당한 질문을 했다. 안와르의 체포를 허가한 사람은 CIA의 고위 간부였다. 그 고위 간부는 “데려와!”라는 한마디로 안와르를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CIA 비밀기지로 이송시킨다. 안와르가 테러리스트라는 어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결국 안와르는 고문에 못 이겨 ‘라시드가 시켜서 폭발물을 제조했다’라고 자백한다. 권력이 얼마나 간단하게 평범한 시민을 테러리스트로 둔갑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 〈렌디션(Rendition)〉의 내용이다.

영화의 제목인 ‘렌디션’은 누군가 테러리스트로 의심되기만 하면 공식적인 법률 절차 없이 비밀리에 제3국의 비밀감옥으로 이송한 뒤 구금·조사할 수 있는 미국 CIA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AP Photo미국 정부는 아프간 전쟁 이후 테러 용의자들을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위)로 이송했다.

미국 공안 당국이 이런 무소불위의 권한을 시민들에게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은, 미국판 테러방지법이라 불리는 ‘애국법’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테러로부터 미국인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비공개로 입법되었다. 덕분에 미국 공안 당국은 무고한 사람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고문해도 법률상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지위를 획득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 카타르 위성방송 ‘알자지라’ 기자였던 수단 출신 사미 알하즈는 2001년 12월 취재차 방문한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체포됐다. 그는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로 보내져 CIA와 FBI의 심문을 받았다. 그가 테러 용의자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수단 출신이 아프간으로 들어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사미는 그들이 찾던 용의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미국 정부는 그를 석방하지 않았다. 계속 감금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미는 항의 표시로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단식 투쟁을 벌였다. 심문관들은 사미의 팔다리를 묶고는, 굵은 튜브를 그의 목구멍에 집어넣어 음식물을 투입했다. 체포된 지 7년 만에 관타나모를 떠나 수단으로 돌아간 사미는 끔찍한 경험을 알자지라 방송에서 증언했다.

큰 옷을 입어서 테러 용의자로 몰린 사람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는 2010년 아이워치(iWATCH)라는 강력한 테러방지법 시행에 들어갔다. ‘테러 용의자 같다’는 주민 신고만 있으면, 경찰이 누구든지 체포할 수 있는 법이다. 정부 청사 같은 주요 건물 앞 주차금지 구역에 차를 세우거나, 관공서도 아닌 건물을 단지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는 이유로 테러 용의자 혐의를 받아 체포될 수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는 시민이 속출했다. 심지어 자기 체격보다 훨씬 크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람들도 있다. 혹시라도 옷 속에 권총이나 폭발물을 감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힙합 스타일의 큰 외투를 입고 공원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체포된 한 19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테러 용의자로 몰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어울리지 않게 큰 옷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다. 미국의 대도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처럼 시민에 대한 인권침해가 횡행할 수 있는 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테러 용의자의 규정을 너무 광범위하게 설정한 데다 체포·구금도 쉽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테러 용의자가 된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용의자 중에 실제로 테러를 시도할 의도와 능력을 가진 자도 간혹 있었지만, 무고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더욱이 공안 당국이 무고한 사람을 테러 용의자로 체포하는 경우,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심문을 해봤자 나오는 정보가 없다. 결국 ‘인권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공안 당국은 ‘고문’이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서슴지 않게 된다.

ⓒAP Photo2014년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위)이 이끄는 특별위원회가 CIA 고문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4년 공개된 CIA 고문 보고서는 정말 충격적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당·캘리포니아)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이 이끄는 특별위원회가 CIA 내부 문서 수백만 건을 분석해 총 6800쪽 분량으로 작성한 보고서다. 500쪽의 요약본도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이른바 ‘심문 강화(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으로 최소 119명의 테러 용의자를 구금·조사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CIA가 테러 용의자들에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한 고문 수법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일주일 이상 잠재우지 않기, 러시안룰렛(회전식 연발 권총에 총알 한 발을 장전한 뒤 돌아가며 자신의 머리에 대고 쏘는 게임), 강제 탈의로 수치심 자극하기, 물고문, 성고문 등 문명국 정부 차원에서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운 잔학 행위가 자행됐다. 이렇게 잔혹한 고문이라면, 없는 범죄 음모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무고한 시민을 테러 단체의 고위 간부로 둔갑시키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이런 잔학 행위의 중심에 관타나모 수용소가 있다. 미국 정부는 아프간 전쟁 이후 미군에 의해 체포된 테러 용의자들을 관타나모로 이송했다. 지금까지 관타나모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는 모두 779명이다. 이들 중 678명이 석방되거나 본국으로 송환됐고 1명은 미국에서 재판 중이다. 석방되거나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 대부분이 무죄였다. 부시 행정부 당시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의 비서실장이었던 로렌스 윌커슨은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은 수감자 대부분이 무죄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들을 가뒀다”라고 폭로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정치적 희생양에 불과했던 것이다.

풀려난 관타나모 수용자들은 가혹한 정신적 고문과 성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심한 고문 탓에 자살을 시도한 수용자도 많았다. 지금까지 관타나모 내에서 사망한 수용자 9명 가운데 6명의 사인이 자살이다. 2003년 8월에는 23명의 수감자가 집단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자해 행위도 2005년까지 모두 350여 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관타나모에서 파키스탄으로 송환된 한 수용자는 “고문이 너무 심해서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자살하고 싶었다. 나뿐 아니라 관타나모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관타나모’에 모르쇠 하는 미국 정부

이토록 심한 고문으로 얻은 정보인 만큼 신빙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CIA 고문 보고서는 “CIA가 고문으로 얻은 정보를 과장해 백악관과 의회를 속였다”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CIA는 기밀 정보를 특정 언론에 슬쩍 흘려 ‘고문이 테러 예방에 기여한 것’처럼 선전하는 짓까지 감행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고문 책임자들을 기소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애국법이라는 막강한 법을 등에 업은 미국 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미국의 수감자들은 인신보호 청원을 통해 구금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 있다. 더욱이 1949년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전쟁 포로의 지위와 대우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관타나모 수용자들은 전쟁 포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투 중에 나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 영토가 아니라 쿠바 땅에 있는 만큼 미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다고 억지 해석까지 내놓았다. 이 와중에 관타나모의 무고한 수용자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데다 언제 풀려날지 기약도 없는 상태에서 잔혹한 고문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불법 체포와 감금, 그리고 고문이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남긴 애국법은 지난해 6월 결국 폐기됐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부작용이 지나친 애국법을 폐지하고 독소 조항을 제거한 ‘미국 자유법’을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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