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평화운동가를 향한 반테러법


반테러법 있어서 테러가 없어지면 참 좋겠네

 

아름다운 관광지 몰디브에는 2008년 대선 당시 드라마처럼 역전극을 펼쳤던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이 있다. 그는 30년간 독재를 휘두른 압둘 가윰을 몰아내고 몰디브 최초의 민주정부를 세운 희망의 대통령이다. 그는 1989년 스물두 살에 처음 투옥된 이래 무려 20여 차례나 투옥되고 망명의 서러움도 겪었던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몰디브는 활기를 찾았다. 그는 몰디브의 당면 과제인 해수면이 높아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문제에 적극 나섰다. 2012년 서울 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아일랜드 프레지던트(Island President)〉에는 기후변화에 맞서는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담겨 있다.

그러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반테러법이다. 2012년 초 형사법원장 체포 문제를 둘러싸고 독재정권인 가윰 전 대통령 측과 공방을 이어가야 했다. 결국 나시드는 5년 대통령 임기 중 3년3개월만 채우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올 3월 반테러법 혐의로 13년 형을 선고받고 섬의 외딴 감옥에 투옥됐다. 그리고 몰디브에는 과거의 독재정권이 돌아왔다. 나시드에게 적용된 반테러법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국제사회가 일제히 비난했다. 유엔도 ‘인권에 대한 중대한 역행 행위’라고 몰디브 정권을 비판했지만 몰디브 정부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몰디브의 한 일간지 기자는 “대통령도 반테러법에 속수무책이었다. 이 법은 어느 문이나 따고 들어가는 마스터키 같은 것이다. 좋은 대통령을 반테러법 때문에 잃은 우리 국민은 지금 많이 슬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몰디브에서 반테러법은 과거 독재정권이 대통령직을 탈환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나라의 테러를 막는다는 반테러법이 오히려 정쟁을 가중시킨 것이다.

ⓒAP Photo2015년 2월 몰디브 법정에 도착해 경찰과 승강이를 벌이는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

브라질에서도 반테러법은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두고 있다. 브라질 정부가 이 법안을 발의한 합법적 명분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안전이다. 올림픽 기간에 테러를 막겠다는 취지다. 브라질의 반테러 법안은 ‘테러 행위’를 “정치적 극단주의, 종교적 불관용, 인종·민족·성·외국인에 대한 편견 등을 바탕으로 폭력이나 다른 심각한 위협을 통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위반 시 최고 징역 30년을 선고할 수 있다. 하지만 유엔 인권담당관은 법안이 포괄적이고 막연한 단어들로 쓰인 까닭에 정부가 시민들의 사회적 항의 행동들을 제약하고 범죄로 낙인찍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질 시민사회단체들도 일제히 반테러 법안의 악용 가능성을 경고하며 반대한다. 브라질 최대의 시민운동단체 ‘땅이 없는 소작인 운동’(MST)은 성명을 내고 “이 법안은 보수파들이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들의 합법적 시위를 탄압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월25일 브라질의 대표적 인권단체 코넥타스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는 “문제의 법안은 사회적 권리를 위해 싸우는 단체와 활동가들을 불법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다”라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 시민활동가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면 반테러법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치안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세상의 모든 국가가 큰 행사를 치를 때 반테러법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반테러법은 명백히 시위대를 탄압하기 위해 올림픽을 핑계로 만드는 악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에서는 반테러법으로 평화운동가들을 체포

반테러법의 원조는 영국이다. 영국이 북아일랜드 ‘IRA 소탕’을 내세우며 1973년 ‘북아일랜드 법안’을 최초로 만들었다. 하지만 IRA가 더 이상 반테러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데도 영국은 여러 차례 법안의 이름을 바꿔가며 이 법을 유지했다.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미국이 갑자기 ‘애국자법(Patriot Act)’을 제정한 직후 영국의 반테러법은 평화운동가들을 향했다. 영국의 무기박람회를 반대하는 평화운동가들을 반테러법으로 체포한 것이다. 당시는 아프간 전쟁을 막 개시하던 시점이라 영국에는 군수산업으로 한몫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에 대규모 무기박람회를 개최했는데 평화운동가들이 이를 반대함으로써 정부의 계획을 방해한 것이다. 테러를 반대하는 것이 평화 활동인데 이 법으로 평화활동가를 체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영국은 2005년부터 위치 추적, 가택 구금, 특정인물 접촉 금지 등 새로운 조항을 더해가며 반테러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공들여 반테러법을 유지한 영국도 테러를 피하지는 못했다. 2005년 런던의 주요 지하철역 세 곳과 런던 중심부의 러셀스퀘어 역 주변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등 엄청난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반테러법을 만든 나라는 많다. 싱가포르(2001), 인도네시아(2003), 터키(2006), 바레인(2006), 필리핀(2007) 등 제3세계는 물론 프랑스·독일·일본 등 비교적 선진국에서도 반테러법을 만들었다. 한창 전쟁 중인 시리아도 내전이 시작되고 16개월 후 알아사드 정부가 반테러법을 서둘러 제정해 반정부 세력을 겨냥했다. 시리아 반테러법에 따라 현재 알아사드 대통령이 반정부 세력의 중심 도시에 퍼붓는 공중 폭격은 합법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되어 유럽으로 향하지만 알아사드 정부에겐 불법이 아니다.

대다수 국가들의 반테러법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신체의 자유’ ‘이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테러리즘의 정의를 광범하게 규정하기 때문에 정적이나 민주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이나 정쟁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특히 테러리스트라는 명목으로 언제든 ‘억울한 개인’을 만들기 쉽다. 이 억울한 개인이나 그 가족들이 오히려 테러리스트가 되곤 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억울한 개인과 무고한 죽음을 양산했다. 미국이 운영하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테러 용의자들은 재판도 없이 합법으로 간주된 고문을 받았다. 이들이 흘러들어 간 곳이 테러의 대명사이며 반테러법의 명분이 된 이슬람국가(IS)였다.

ⓒEPA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발생한 테러로 호텔이 불타올랐다(위). 무장 테러범들이 사흘간 테러를 가해 170여 명이 사망했다.

무슬림에게 테러 혐의를 돌리는 ‘힌두’ 인도

2009년에 만들어진 인도의 반테러법은 2008년 11월, 뭄바이에서 무장 테러범들이 사흘간 테러를 가해 170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제정되었다. 프라티바 파틸 당시 인도 대통령은 테러와 관련해 경찰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반테러법에 서명했다. 법안은 테러 용의자를 최대 180일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법으로 인해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은 사람은 대부분 무슬림이었다. 힌두교도가 다수인 인도에서 무슬림은 소수에 속한다. 인도 정보부 요원들은 무슬림을 그들 나름의 합법 절차를 통해 구금하고 고문하고 조사했다. 고문을 하면 누구나 금세 테러리스트로 둔갑했다. 이때 무고하게 잡혀간 무슬림 및 소수자들을 변호한 이가 샤히드 아즈미라는 변호사인데, 그는 반테러법으로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들을 대부분 무죄로 이끌어냈다. 샤히드 아즈미가 법정에서 이들을 대변하며 반테러법의 문제를 연설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샤히드〉이다. 그러나 샤히드는 32세의 나이로 2010년 2월11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4명의 힌두교 극우단체 조직원들에게 사살되었다. 반테러법을 제정하는 데 찬성한 힌두교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테러를 가한 셈이다.

2011년 여름, 노르웨이에서 극우주의자에 의해 테러가 일어나 77명의 무고한 생명이 숨졌을 때, 옌스 스톨텐베르 노르웨이 총리는 “우리는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테러리즘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류애’입니다”라고 했다. 그의 연설을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시점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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