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코즈웨이베이 서점’의 사주와 직원들이 두 달여에 걸쳐 하나둘 사라지는, 스릴러 영화에나 나올 법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장 먼저 실종된 사람은 지난해 10월15일 타이의 휴양지 파타야에서 휴가를 보내던 작가 겸 공동 사주 구이민하이(桂民海)였다. 곧이어 지난해 10월20~26일, 다른 공동 사주인 류보(吕波), 사업부장 청지핑(张志平), 서점 점장 람윙케이(林荣基) 등 세 사람이 각각 출장 중 사라졌다. 가장 최근에 실종된 사람은 편집장 리보(李波) 씨였다. 그는 지난해 12월30일, 홍콩섬 차이완의 서점 창고를 살피러 나갔다가 종적이 끊겼다.

실종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 중순 중국 관영 방송인 CCTV를 통해서다. 서점의 공동 사주 구이민하이 씨가 “2003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뒤 달아나 10여 년에 걸친 도피 생활 끝에 중국으로 돌아와 자수했다”라고 울먹이는 장면이 방송된 것이다. 나머지 실종자들 역시 2월4일 홍콩 경찰의 발표로 행적이 확인되었다. 중국 광둥성 공안 당국으로부터 ‘류보, 청지핑, 람윙케이 등 3명을 범죄활동 혐의로 조사 중’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실종자들이 중국 공안의 손안에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코즈웨이베이 서점 관계자들이 정말 범죄 혐의 때문에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이 서점이 그동안 팔았던 서적들로 인해 실종 사건이 터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실 코즈웨이베이 서점은 매우 ‘정치적’인 업체였다. 중국 내에서는 금서인 중국 지도자들의 부패 및 성생활의 내막, 공산당 일당 독재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서적들을 유통시켜온 것이다. 〈2017년 시진핑의 몰락〉 등 제목만 봐도 중국 지도부가 예민하게 반응할 책들이었다. 실종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기획했던 책의 제목은 〈시진핑과 그의 연인들〉이었다고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젊은 시절 여성 편력을 다룬 내용으로 보인다.

ⓒAP Photo최근 홍콩 ‘몽콕 시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권총을 꺼내 시위대를 향해 겨누는 모습이 방송 화면에 잡혔다. 이날 경찰과 시위대가 격렬하게 대치했다.

실종자들이 중국에 구류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홍콩 시민들은 코즈웨이베이 서점 주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 6000여 명이 ‘정치적 납치 반대’ ‘관계자 석방’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도심을 행진했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은 뒤 이른바 ‘일국양제(한 나라에 두 제도)’를 시행해왔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홍콩은 정치·경제 부문은 물론 언론·출판에서도 상당한 자율성을 누려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이 홍콩에 대한 관할권을 강화하려는 행태가 나타나면서 홍콩 시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2014년 ‘우산 혁명’의 경우, 사실상 중국 정부가 지정한 인사만 홍콩 행정장관(사실상 행정 수반)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 방식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였다. 이처럼 반중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가운데 ‘코즈웨이베이 서점 연쇄 실종 사건’이 터졌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이 표현의 자유마저 박탈하려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시위 주도 단체는 더욱 급진 노선을 취할 태세

이 같은 홍콩 시민들의 우려와 불만이 춘제(春節:음력설)인 2월8일 홍콩 중심가 중 하나인 카오룽(九龍) 반도 몽콕(旺角) 거리에서 다시 폭발했다. 이날 홍콩 경찰은 주로 어묵 등 서민 음식을 파는 몽콕 거리의 노점상 철거에 나섰다. 반발하는 상인들에 행인들이 합세하면서 주변 도로는 금세 시위대로 넘실거리게 되었다. 이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한 시민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몽콕은 지난 ‘우산 혁명’ 기간에도 가장 치열하게 시위가 전개되었던 지역이다.

경찰은 도로를 점령한 시위대 수백명을 해산하기 위해 후추 스프레이와 경찰봉을 사용했다. 이에 맞선 시위대는 불을 지르고 경찰관을 향해 벽돌과 쓰레기통, 유리병 등을 던졌다. 이처럼 양측의 충돌이 새벽까지 격화되던 끝에, 경찰관이 공중으로 총알 두 발을 발사한 뒤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위에 총기까지 등장한 것은 홍콩에서 30여 년 만의 일이다.

ⓒAP Photo1월10일 홍콩의 한 시민이 실종된 ‘리보’의 가면을 쓰고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종료된 뒤 경찰은 경관 90여 명이 부상당하고 일부는 혼수상태라고 발표했다. 시위대도 수십명이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태를 취재하던 언론인도 최소 4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4년 우산 혁명 때만 해도 홍콩 시민들은 시위를 정리하며 거리를 깨끗이 청소하는 등 시민정신을 과시했다. 그런데 이번 몽콕 시위가 전례 없이 과격한 양상을 띠게 된 것은 평화적으로 전개된 우산 혁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지만, 몽콕 시위가 전개되던 시간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에는 충격적인 시위 사진과 속보가 쏟아졌다. 급진적 시민단체인 ‘열혈공민(熱血公民)’의 페이스북에는 한 여성이 경찰의 곤봉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인도에 누워 있는 영상이 올라왔다. 프랑스 통신사인 AFP는 홍콩 경찰이 홍콩 본토주의(중국에 대한 홍콩의 고유한 정체성을 주장하는 사상) 단체인 본토민주전선(本土民主前線)의 에드워드 렁(梁天琦) 대변인 등 시위 참가자 54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체포된 시위대는 최고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 있는 폭동 가담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 크루세이드 야우(丘紹箕) 몽콕 경찰서 부지휘관은 “수많은 폭도가 경찰관을 공격하며 생명에 위협을 가해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발포했다”라고 밝혔다.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 역시 이날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면서 “총기 사용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위 참가 시민들은 “총과 벽돌 중 무엇이 더 위협적인가. 홍콩에서 총으로 시위대를 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몽콕 시위를 주도한 본토민주전선은 더욱 급진적인 노선을 취할 태세다. 이 단체의 레이 웡(黃台仰) 위원장은 한 언론을 통해 “과거엔 평화적 수단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봤지만, 생각이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홍콩 정부에서 보안국장을 지낸 레지나 입(葉劉淑儀) 입법위원은 이번 폭력 시위 이후 “정부가 소득불균형 등 뿌리 깊은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고용과 주택, 교육 문제가 해결될 길이 보이지 않으면 젊은이들이 빗나가서 폭력에 의존하기 쉽다”라는 주장이다.

몽콕 시위가 폭력적 양상까지 띠게 된 데는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에 세대 간 갈등까지 가세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홍콩 정국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시위는 ‘어육 완자’를 파는 노점상 단속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어묵 혁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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