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이 뉴햄프셔에서 승리하며 탄력을 받고 있다. 한국 정치판에서도 난리다. 이념은 고사하고, 살아온 길이나 삶의 궤도 자체가 다른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까지 샌더스 돌풍에 숟가락을 얹어가려는 발언들을 한다.

샌더스는 혜성같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인물도 아니다. 그가 선전할 수 있는 미국의 정치 지형을 이해하려면 지난 8년간 미국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의 재임 기간 미국에서는 ‘봉기’가 두 번 일어났다. 2011년의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농성과 지난해 시작된 ‘흑인의 삶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다. 진보 성향 흑인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점은 흥미롭다. 기대와 실망은 정비례하는 법인가 보다.

ⓒAFP버니 샌더스는 2011년 ‘월가 점령’ 운동의 의제를 2016년 대선으로 들고 와 공론화했다.

미국 경제를 망가트린 월가의 자본가들에게 백기를 들고 타협한 오바마 행정부에게 분노한 ‘99%’의 ‘점령’이나, 흑인 대통령하에서도 개선되지 않는 미국 사법 당국의 체계적인 흑인 혐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흑인 삶’ 모두  21세기 미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필요하지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가 필요 없다.’ 사람들은 이 아포리즘을 진리로 여기고 있었다. 선거를 주도하고 정부를 제어하는 거대 자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실에 시민들은 길들여져 있었고, 나날이 커져가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 불의에 이의를 제기한 항의가 ‘점령’이었고, 이 운동의 의제를 2016년 대선에 들고 와 공론화한 지도자가 샌더스다. 샌더스를 현재 위치로 끌고 온 힘이 ‘점령’이었다면, 앞으로 그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밀어줄 뒷심은 ‘흑인 삶’으로 대변되는 유권자들이다. ‘정치 혁명’의 성패는 흑인들에게 달려 있다.

그렇다면 과연 샌더스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샌더스는 오바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샌더스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2008년의 오바마처럼 흑인 민주당원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이것은 산술적인 사실이다. 오바마의 국무장관으로 재직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자신이 오바마의 ‘적자’라고 강조하는 버릇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아직까지 유색인종 유권자들의 지지율에서 클린턴은 샌더스보다 월등히 우세하다.

샌더스의 운명은 2월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결판난다고 볼 수 있다. ‘슈퍼 화요일’ 직전에 오픈 프라이머리로 치러지는 예비선거는 남부 지역에서의 첫 전투이자, 샌더스가 취약한 흑인들로부터 검증받는 첫 무대이기도 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의 28%를 이루는 흑인들은 민주당 성향이 강해, 프라이머리의 절반까지 채울 수 있다. 현재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클린턴은 샌더스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지지를 받고 있다. 샌더스가 유력 후보로 연명하기 위해서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최소한 접전이라도 펼쳐줘야 한다. 그래야만 ‘슈퍼 화요일’에 투표할 흑인들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샌더스에게는 ‘슈퍼 화요일’보다 사우스캐롤라이나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제까지 샌더스가 보여준 인종 관련 메시지는 단조롭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원론에 머무르고 있어서 감동이 없다. 학창 시절부터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일관되게 투쟁해온 샌더스의 열정과 진정성이 아직 전달되지 못한 양상이다.

ⓒAP Photo힐러리 클린턴은 청년 지지층이 얇다. 이는 본선에서도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클린턴 역시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경력을 내세워 자신만이 검증되고 준비된 후보라고 되풀이하는 클린턴에게 유권자들은 적지 않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소외계층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약속’이 아닌 ‘역사’를 강조하는 후보에게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클린턴은 8년 전에도 훌륭한 이력서를 갖고 있었지만 오바마에게 패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약력을 가진 정치가는 15대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이다. 하원과 상원에서 의원직을 거친 그는 17대 국무장관과 영국 주재 대사를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뷰캐넌의 무능은 미국을 내전과 파탄으로 몰고 갔다. 미국이 북남으로 갈라서는 것을 막아낸 대통령은 훌륭한 경력과는 거리가 먼 그의 후임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힐러리의 경력, 강점인가 약점인가

힐러리 클린턴의 경력은 오히려 그녀를 과거 지향적인 ‘낡고 늙은’ 후보로 만들고 있다. 이는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아이오와의 30세 미만 유권자 가운데 84%가 샌더스를, 14%가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다. 전국적인 조사에서도 샌더스는 젊은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2008년이나 지금이나 클린턴은 젊은 층이 열광하는 후보가 아니라는 게 본선에서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서로 너무나 다른 성향의 두 후보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 1940년대에 태어난 샌더스와 클린턴은 둘 다 일흔이 넘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권자들 처지에서는 그들의 나이가 미국의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이런 ‘약점’을 본선에서 반드시 파고들 것이다.

공화당의 유력 주자인 루비오와 크루즈는 둘 다 1971년생으로 쿠바 이민자 2세이고, 남성이고, 초선의 연방 상원의원이다. 프로필상 이 네 가지는 똑같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봐도 된다.

크루즈와 달리 이념적으로 균형감각을 가진 루비오는 젭 부시와 더불어 당 지도부를 안심시키는 무난한 후보다. 바텐더 아버지와 호텔 청소부 어머니를 둔 루비오는 연방 상원의원이 된 이후에도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했던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루비오와 부시의 인연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18년이니, 부시가 딱 지금의 루비오 나이였을 때다. 웨스트 마이애미 시의회에서 일하던 루비오는 친구에게 수표를 한 장 보여주며 자랑했다. 플로리다에서 가장 유망한 정치가이자 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젭 부시가 보내준 후원금 50달러였다. 그로부터 2년 뒤 루비오가 주의회에 입성하자, 주지사 부시는 후원자들에게 정치 신인을 소개해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정치적 동맹 관계가 됐다.

ⓒAP Photo공화당의 루비오(왼쪽)가 다크호스로 떠올랐고, 트럼프(오른쪽)의 예비선거 득표는 기대에 못 미쳤다.

루비오가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공화당 내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고 한다. 이미 부시의 출마가 예견된 상태에서 같은 플로리다 주 출신의 무명 초선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그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2007년 선출직에서 물러나 오랜 기간 정치판에서 멀어져 있던 부시는 ‘감’이 떨어졌고, 당원들은 차기 주자로 젊은 피를 찾고 있었다.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공화당 후원자들과 언론은 부시를 대관식을 기다리는 황태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부시와 그의 참모들은 초반부터 판세를 완전히 잘못 읽고 들어왔다. 부시 캠프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분노’를 오해한 것이다. 부시의 생각과 달리 그들의 분노는 오바마 정부를 향한 악감정을 넘어, 공화당의 기득권 세력(부시를 포함한)에 대한 불만이 더해져 있었다.

부시는 아이오와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선거비용(1400만 달러)을 쓰고도 2.8%의 득표율로 6등에 그쳤다. 뉴햄프셔에서는 아버지와 형을 들먹이는 것도 모자라, 노모 바버라 부시까지 함께 유세를 폈지만 4등에 머물렀다. 공화당의 귀족 후보는 어째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부시는 미국 대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대 게임’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이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위대한 아이오와 유권자들은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오바마 정권으로부터 나라를 다시 되찾아와야 한다고!”

얼핏 들으면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수락 연설 같다. 하지만 아니다. 아이오와의 승자 크루즈의 인터뷰도 아니다. 아이오와에서 3등이 확정된 뒤 루비오가 지지자들 앞에 나와 외친 말이다. 루비오는 아이오와의 ‘기대 게임’에서 이긴 것이었다. 유권자들에게 루비오는 골리앗에 맞선 다윗이자 다크호스로 비쳐졌다. 루비오라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우량주를 먼저 알아보고 투자를 시작한 세력은 금융자본이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치러지기 전에 이미 루비오는 부시와 클린턴에 이어 세 번째로 월가의 후원금을 많이 받는 후보였다.

실체보다 부풀려진 트럼프의 지지율

미국의 대선 과정은 주식시장과 비슷하다. 중장기적으로는 후보의 내공, 본선 경쟁력, 이념적 신뢰성 같은 근본 요소들이 탄탄한 우량주가 떠오르며 옥석이 가려지지만, 단기적으로는 ‘거품’과 ‘바람’에 의해 후보자들의 지지율이 춤을 춘다. 물론 이런 현상들은 적절한 ‘조정’을 거치게 된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의 예비선거가 그런 조정 단계인 셈이다.

가장 큰 조정을 받은 후보는 트럼프다. 그의 지지율은 아이오와에서 투표로 직결되지 않았고, 뉴햄프셔의 승리 역시 기대치에 모자랐다. 그전까지 트럼프가 자극적인 돌출 언행으로 미디어를 독차지하며 만들어낸 ‘여론조사 1위’라는 지위는 실체보다 부풀려진 것이었다. 이제는 루비오와 크루즈를 포함한 다른 유력 후보들과 언론 노출을 나눌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트럼프의 거품은 앞으로 더 빠질 수 있다.

미국의 대선 마라톤에서 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아이오와와 뉴햄프셔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이념적으로 가장 나뉘어 있고, 미국인들은 근래 보기 드물게 선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근대 격동기의 정점을 찍었던 1968년 선거 이후 가장 뜨거운 대선이 되리라 전망된다. 결국 모든 선거를 주도하는 주체는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스토리라면 선거는 스토리텔링이다. 오바마 시대 이후의 미국 유권자들은 화려한 경력이나 대단한 집안 배경이나 엄청난 액수의 재산보다는 정체성이 명확하고 감동적인 후보를 선호한다. 선거의 본질은 대중적 분노를 활용한 분풀이도 아니고, 과거에 대한 심판도 아닌, 미래 설계라는 진실을 유권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관록 있는 여성, 유대인 사회주의자 또는 쿠바계 보수주의자 중 한 명이 될 것 같다. 억만장자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 누가 되든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다. 시대에 맞춰 미국은 변하고 있다. 변화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경쟁의 질서가 있는 곳에 발전이 있다. 미국 대선을 관심 있게 보며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심정은, 아마 우리가 한국 정치에서 바라지만 얻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불만의 표출일지도 모른다.

기자명 정승구 (영화감독·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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