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독재자의 무기가 되고 있는 ‘반테러법’


‘반테러법’은 언론 탄압의 족쇄

 

“저널리즘은 테러리즘이 아니다.” 2014년 제66차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 토마스 브루네가드 회장이 개막 연설을 통해 한 말이다. 그가 이렇게 강조했던 이유는, 제3세계 언론인 보호 차원에서 제정된 황금펜상을 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 기자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네가 기자는 에티오피아의 반(反)테러법을 비판하다 2011년 9월에 체포되었다. 다음 해 1월에는 반테러법으로 18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전엔 ‘아랍의 봄’ 관련 보도와 정부 비판 기사 등으로 인해 구금되기도 했다. 당시 판사는 “네가는 표현의 자유를 가장해 폭력을 선도하고 헌정을 전복하려 했다”라며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아랍의 봄’이라는 표현 자체에 에티오피아의 안보를 해치고 헌정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내외신 언론인이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11년 12월에는 에티오피아의 분리독립 단체를 취재하기 위해 불법 입국한 스웨덴 언론인 2명이 징역 11년형을 받았다. 모두 2009년 도입된 ‘반테러법’을 위반한 혐의다.

ⓒ엠네스티 제공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 기자(오른쪽)가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이집트에서도 반테러법 때문에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테러 사건 관련 오보나 정부 발표 이외의 내용을 보도했다간 20만~50만 이집트 파운드(약 3000만~76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원래는 최소 2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려 했는데, 언론기관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그나마 벌금형으로 바뀐 것이다. 한 달에 고작 한국 돈으로 수십만원을 버는 절대다수의 이집트 기자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금액이다. 이집트의 한 인권활동가는 “반테러법을 이용한 언론 길들이기다. 언론 매체가 정부에 불리한 내용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사전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의 언론 자유는, 2014년 엘시시 전 국방장관이 대통령이 된 뒤 더욱 후퇴했다는 평가다. 시위와 집회를 철저히 차단하는 동시에 반정부 성향의 인사나 언론인들을 대거 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테러법에서 가장 큰 부작용은 바로 언론 자유의 위축이다. 정부는 언제든 불리한 언론 기사에 대해 ‘국가 안보’를 근거로 반테러법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법조문만 보면, ‘언론 행위’ 가운데 어디까지가 저널리즘이고 어디부터가 테러리즘인지, 대단히 모호하다. 반테러법은 이런 모호한 사각지대를 비집고 언론 자유를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다.
2013년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영국의 진보 성향 매체인 〈가디언〉 지면을 통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불법적 정보수집 활동을 폭로했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가디언〉 사무실로 찾아가 하드디스크 파기를 요구했다. 경찰은 스노든 관련 기사를 담당한 글렌 그린월드 기자의 동성 연인을 히드로 공항에 장시간 구금하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도 스노든 파문 이후 언론인 다수가 체포되거나 기소되었는데 그 법적 근거는 모두 자국의 반테러법이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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