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12일 전 세계 195개국 정부 대표는 역사적인 ‘파리 협정(파리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결의된 합의문)’을 체결했다. 온난화와 이에 따른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까지 제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협정 체결 직후부터 탄소 중립적인 재생가능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 정부는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을 새로운 것으로 발 빠르게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경제 선진국 중 가장 눈에 띄게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 보급하는 나라는 단연 독일이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전력 생산 647TWh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194.1TWh가 풍력과 태양광발전 같은 자연에너지에서 생산되었다. 수출된 전력량 61TWh를 제외할 경우, 독일 국내 전력 수요 중 무려 32.5%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은 전기라는 뜻이다(한국의 경우 2014년 전체 전력 생산 546.2TWh 중 세계적으로 공인된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된 전력량은 12.0TWh로, 그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자연에너지의 보급을 촉진하기 위한 재생가능에너지법(EEG)이 시행된 2000년, 전력에서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6.5%에 불과했다. 15년 사이 원자력이나 화력을 제치고 독일에서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에너지원으로 등극하는 매우 빠른 증가를 보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값비싸고 효율 낮은 에너지로 알려진 이 재생가능 에너지가 우리보다 일사량도 적고 물가도 비싼 독일에서 이처럼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손익을 경험했을까?

ⓒEPA안개에 덮인 독일 페테르스베르크의 힐 풍력발전소 모습.

눈에 띄는 현상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유럽에서 덴마크 다음으로 값비싼 전기를 쓰고 있는 독일의 개인 소비자는 올해 약 3% 인상된 요금을 내야 한다. 2015년 kWh당 평균 28.81센트(약 389원. 한국의 약 3배)를 내는 독일의 4인 가정은 올해 연간 약 30~40유로(약 4만~5만원)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이 재생가능 에너지 때문만은 아니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독일 재생가능에너지협회(BEE) 관계자는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대기업 대신 일반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기 때문에 그 증가폭이 “커 보인다”라고 주장한다. 재생가능에너지법은 기존의 화력·원자력보다 생산원가가 비싼 재생가능 에너지의 보급을 위해 독일 전체 전기 소비자가 그 부담을 고루 나누도록 하고 있는데, 2003년 제정된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규칙’을 통해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은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에 따른 비용 부담을 면제받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의 경우, 순수하게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폭은 2.29센트였으나, 대기업이 면제받은 금액이 개인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그 비용이 5.28센트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2016년의 경우, kWh당 6.35센트(약 85원)가 모든 일반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에 따른 부담이다.

그렇다면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독일 정부의 재생가능 에너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재생가능 에너지 전력 생산(161.4TWh)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감소는 1억1000만t으로 나타났다. 열과 수송에너지 생산에 이용된 재생에너지까지 모두 포함할 경우, 이 수치는 1억5100만t으로 상승한다. 2013년 한국 전체가 배출한 온실가스 6억1600만t의 24.5%에 해당하는 양이다.

ⓒREUTER독일 란트슈트 지역의 한 농가에서 창고 지붕에 태양광발전 패널을 설치하고 있다.

독일인이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를 지지하는 이유

눈에 띄는 전력요금 인상, 반면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 이 둘의 조합만으로는 독일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독일 사람 모두가 환경운동가는 아닐 터인데, 전기요금 부담이 큰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해 왜 독일인 90% 이상이 확대를 지지한다고 답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기존의 에너지원과는 달리 자연을 이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는 낮은 반면 그 분포는 넓다. 즉, 같은 용량의 발전시설이라 하더라도 화력발전처럼 한곳에 대형 발전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풍력발전기 여러 개, 태양광발전기 여러 개를 설치하는 식이다. 이러한 특성이 엄청난 고용 확대로 이어진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운송하고, 시공하고, 유지·관리하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한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일자리 대부분이 해당 지역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2014년 현재 독일에서 재생가능 에너지와 관련한 직간접 일자리의 수는 총 37만 개로 파악된다.

독일 정부는 재생가능 에너지 확대에 따른 경제적 편익을 시설이 설치된 곳에서 직접 누릴 수 있도록 세법까지 개정했다. 2008년 조세 규정을 변경해 그간 발전사업자 본사 소재지에 납부하던 소득세를 본사 소재지 30%,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 지역에 70%로 분할해 납부하도록 했다. 또한 발전사업자들은 완력을 이용해 지역 주민들의 저항에 대응하는 대신, 지역 주민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수용성을 높였다. 사업자만 배불리는 ‘남의 발전소’가 아니라 내 가계에 도움 되는 ‘내 발전소’가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역 주민들은 외부 투자자의 도움 없이 협동조합을 설립해 시민발전소, 주민발전소를 만들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독일에 설치된 총 73GW의 재생에너지 시설 중 개인 소유가 34GW(47%)이며, 특히 농부들이 8GW(11%)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지역 금융기관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중앙정부의 안정적인 정책을 바탕으로 한국의 농협이나 새마을금고에 해당하는, 지역에 뿌리를 내린 공적 금융기관이 앞으로 들어설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을 담보로 지역 주민들에게 저리로 자금을 대출해주기 때문이다. 지역 자본과 지역 노동력을 이용해 지역의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드는 선순환이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을 매개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선순환은 2014년 한 해에만 독일에서 189억 유로(약 25조3260억원)가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 건설에 투자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값비싼’ 재생가능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독일에서는 풍력이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 되었으며, 가장 값비싼 태양광발전마저도 소매 전기요금보다 값이 저렴해지는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grid-parity)’를 이미 통과해, 더 이상 지원금이 필요 없는 상황이 되었다. 독일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는 저렴하며 온실가스도 줄이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1석3조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환경 선진국으로 거듭난 독일의 ‘생태적 근대화’의 결과다.

기자명 염광희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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