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연 ‘철천지원수’ 이란과 새로운 화해의 시대를 열 수 있을까? 미국은 20세기 중반 이후 이란과 밀월 관계를 유지해오다 1979년 회교혁명의 발발로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이란과의 핵 협상이 타결되었다. 이란은 협상에 따른 의무 사항을 착실하게 이행해왔다. 이에 부응해 미국은 최근 유럽연합(EU)과 함께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었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특히 시리아 내전 수습과 중동 평화를 위해서도 이란의 협조가 절실한 미국으로서는 이번 제재 해제를 계기로 조성된 화해의 불씨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이번 조처를 전후해 벌어진 일련의 상황만 보면 양국 관계는 일단 청신호다. 이를테면, 미국과 이란은 1월16일의 경제제재 해제 직전에 양국의 수감자들을 맞교환했다. 이란은 이중국적 혐의로 잡아뒀던 미국인 4명을 풀어주었다. 미국은 대이란 경제제재 위반 혐의로 수감된 이란인 7명을 석방했다. 이번 맞교환을 위해 막후에서 14개월간의 협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놀라운 사건은 또 있다. 경제제재 해제 나흘 전인 1월12일에는 페르시아 걸프 해역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됐던(1월11일) 미국 해군 10명이 하루 만에 전격 풀려났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나포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란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했는데, 즉각적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미국 해군들의 신속한 석방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난 몇 년 동안의 핵 협상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맺은 친분과 신뢰관계 덕분으로 보인다. 36년 동안이나 꽁꽁 얼어붙었던 두 나라의 냉랭한 관계를 감안할 때 수감자 맞교환과 나포 미국 해군의 신속한 석방은 정치적 상징성 못지않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IRIB 동영상 갈무리1월12일 미 해군 10명이 이란 군에 나포되었다가(위) 하루 만에 풀려났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이란 관계는 개선될 여지가 많다고 본다. 미국 정부는 핵 협상 결과에 따라 이란이 의무 사항을 충실히 이행할 경우 모든 대(對)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법안이 만들어지면 차기 정부도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거부하기 힘들다. 정치 분석 자문사인 유라시아그룹의 클리프 쿱찬 의장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핵 협상 타결 덕에 향후 몇 년간 미국·이란 양국 관계는 점진적이고 고르지 못한 해빙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사실 1월16일 조처의 의미는 ‘미국 이외의 기업 및 개인이 이란과 경제적 거래를 해도 괜찮다’ 정도에 불과하다. ‘제3자(미국 이외의 기업 및 개인)’까지 이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만 해제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나 개인들의 대이란 경제 거래를 금지한 ‘1차 제재(primary sanction)’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이란을 여전히 테러지원국 명단에 잔류시킬 뿐 아니라 인권 탄압국으로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제재도 시행 중이다. 맥도날드는 1월16일의 재제 해제 직후 낸 온라인 광고에서 이란 프랜차이즈 사업 지원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1차 제재’가 존재하는 한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나마 유일한 우회로는 미국 기업들이 유럽 등에 해외 법인을 설립해 이란과 거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유럽의 애플 지사가 미국 본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이란에 아이패드나 아이폰을 팔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각종 법률적 시비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란의 경우, 8000만 인구 가운데 약 60%가 소비 성향이 강한 30세 이하라는 점에서 세계적 브랜드를 많이 가진 미국 기업들은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지금처럼 ‘1차 제재’가 지속되는 한 직접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 중동 문제 전문가인 마지드 라피자데 박사는 CNN 방송에서 “미국 기업들이 직접 이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포괄 입법이 조만간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이란 핵 합의의 결과, (경제 부문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최대 패배자로 떠오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REUTER

경제제재 해제에 따라 ‘이란 특수’ 누리는 EU

반면 미국과 달리 전면 제재 해제를 단행한 유럽연합은 유례없는 ‘이란 특수’를 누리고 있다. 실제로 이번 조처가 단행되자 이란은 무려 114대의 에어버스 여객기를 유럽연합에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연합은 대이란 제재가 강화되기 시작한 2012년 전까지도 연간 교역량이 280억 유로에 달할 정도로 이란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었다. 이란도 이번 경제제재 해제로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동결 자산을 전 세계에서 회수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란은 회교혁명 이전 미국과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해서 4억 달러를 지급하고도 물품(무기)을 받지 못한 바 있다. 이제 그 4억 달러와 13억 달러의 연체이자까지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막대한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을 서방국가들에 수출하면서 중동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 낙관은 이르다. 오랜 세월 쌓인 의심과 불신의 벽이 워낙 높다.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제재 해제 직후,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11개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제재를 새롭게 발표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경제제재 해제 하루 뒤 “미국 등 오만한 나라들의 속임수와 배신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라면서 특히 “일부 미국 정치인들의 발언은 의심스럽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이번 조처와 관련해 공화당의 마이클 매콜 하원 국토안보위원장은 “이란과의 핵 합의는 테러리스트와 협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란 핵 합의를 무력화하겠다”라고 경고한 상태다.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의 잘못된 협상으로 이란이 부자 테러 국가가 됐다”라고 오바마 행정부를 맹공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및 의회 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이란 핵 협정 파기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오바마 행정부에 비판적이다. 이스라엘은 제재 해제 직후 “우리는 이란이 절대 핵무기를 가질 수 없게 만들 것”이라고 협박했다. 2007년 이스라엘은 전투기로 시리아 원자로를 폭격한 바 있다. 이슬람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오랜 세월 원수 관계인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제재 해제가 나오기 며칠 전 이란과 단교했다. 사우디가 저명한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고, 이에 격분한 이란 국민들이 이란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방화하자 곧바로 단교 조치를 내린 것이다. 미국은 5년째 접어든 시리아 내전의 조속한 수습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도 사우디와 이란의 협조를 모두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두 나라가 앙숙 관계로 남아 있는 한 미국의 대중동 전략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란 양국이 일단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맞이한 것은 사실이지만, 2월의 이란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에 큰 영향을 받으리라 본다. 미국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고, 이란에서는 핵 협상을 타결한 집권 로하니 정부가 승리할 경우 양국 관계가 순항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난항이 불가피하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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