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혼돈).’ 지난해 12월31일 밤, 독일 쾰른 중앙역 광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말 그대로 카오스였다. 쾰른은 독일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100만명) 도시로 쾰른 대성당이 유명하다. 유럽의 유서 깊은 이 도시가 하루 만에 성범죄 도시로 전락하게 된 그날의 사건은 이랬다.

매년 벌어지는 독일 특유의 새해맞이 행사 도중 붐비는 인파 사이에서 남성 1000여 명이 집단으로 젊은 여성들의 신체를 만지거나 금품을 강탈한 것이다. 독일 쾰른 경찰 측에 ‘강간’ 혐의 등으로 신고된 건수만 90건이 넘고 이런저런 피해 접수도 560건이 넘었다. 문제는 가해 남성 대부분이 북아프리카 또는 아랍계 난민이라는 점이다. 쾰른의 한 경찰은 “이날 1000여 명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새해 첫날로 넘어가는 밤을 들뜬 마음으로 즐기면서 경찰 등 독일의 공권력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마음대로 여자들을 농락하고 휴대전화를 빼앗았다”라고 말했다. 독일 내무부는 1월8일 기준으로 쾰른 사건 용의자 32명 가운데 22명이 난민 신청자라고 밝혔다. 이들 중 14명은 모로코와 알제리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난민 신청자를 포함한 이민자들이 집단으로 쾰른 사건을 벌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독일은 물론 유럽 사회가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난민들에게 가장 먼저 문을 열고 환대했던 독일이 그 난민들의 성범죄로 새해 벽두부터 발칵 뒤집힌 꼴이 됐기 때문이다. 동정의 마음으로 집안에 들인 난민들이 자신의 딸들을 유린했다는 점에서 독일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AP Photo1월9일 독일의 우파 시위대가 쾰른 중심가에서 집단 성추행에 항의하며 ‘난민 수용 반대’를 주장하는 거리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제지당했다.

1월4일자 〈슈피겔〉 온라인 기사에 인용된, 사건 현장의 한 이민자 남성이 경찰에게 했다는 말은 들끓는 독일 사회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시리아인이다. 너희는 나를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메르켈 여사가 나를 초청했기 때문이다.” 슈피겔이 경찰 보고서를 빼내 단독 보도한 내용에 들어 있는 이 대목 때문에 그동안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게다가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빌트〉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경찰의 사례를 들어 일부 경찰 상부의 지침을 소개했다. 난민 보호시설 안이나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우 네오나치의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외부로 공표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해당 신문은 이 지침이 이번 쾰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내려온 것이라고 명시했지만, 독일 정부가 ‘보도 통제’를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난민 증가와 집단 성폭행, 여기에 보도 통제라는 예민한 키워드까지 가세하니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일파만파 번졌다. 자연스럽게 ‘메르켈의 대책 없는 난민 환대 정책이 비극을 초래했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이민 반대 정서가 강한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는 “난민 환대 정책이 부른 참담한 결과”라고 주장했고,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페기다)’은 1월9일 17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어 메르켈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DPA메르켈 독일 총리는 ‘쾰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국경 강화’ 카드 들고나온 유럽 국가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메르켈 총리는 “개인적으로도 용납이 안 되는 사건”이라고 천명한 뒤 범죄 난민의 추방 요건을 완화하는 등 통제 모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과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이 입안한 대책은 “살해와 신체 가해, 강간, 성폭력, 상습 절도 등 특정범죄를 저질러서 최소 1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난민은 추방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다. 추방 기준을 2년형 선고에서 1년형으로 줄인 것이다. 집행유예가 선고되더라도 ‘추방’은 원칙적으로 적용된다. 사건 후 독일은 오스트리아 접경지에서 돌려보내는 난민 수가 하루 60명 정도에서 200명으로 3배가 증가했다. 지난 1월10일 저녁에는 쾰른 사태의 보복성으로 추정되는 이민자들에 대한 공격이 잇따라 발생했다. 쾰른 경찰은 파키스탄·기니·시리아 출신 외국인 최소 11명이 훌리건들의 공격으로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연합(EU)의 난민정책 전반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유럽연합 난민이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없는 ‘안전국가’ 명단을 작성해 송환 절차를 간소화할 방침이다. 만약 ‘안전국가’로 지정된 국가가 유럽연합의 송환에 응하지 않으면 유럽연합은 원조 중단이나 비자협상 또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까지 압력 수단으로 쓰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가장 예민한 부분은 난민들 중에 IS를 비롯한 극단주의자들이 섞여 올 수도 있다는 우려다. 난민 유입 과정에서 누가 난민이고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골라내기가 쉽지 않아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골치를 앓던 참이었다.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실제로 테러범들이 난민 사이에 섞여 유럽으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쾰른 사건은 갈팡질팡하던 유럽 국가들의 결정을 오히려 쉽게 해주었다.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이 세우는 쪽으로다. 난민 수용에 가장 열린 태도를 보이던 독일과 스웨덴이 입국을 제한하는 정책을 내놓자 다른 유럽 국가들까지 기다렸다는 듯이 국경 강화 카드를 들고 나왔다.

난민들이 처음 도착하는 나라인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압박에 국경 관리를 강화했다. 장벽을 설치해 난민 유입을 막던 헝가리는 물론이고 이제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국경에도 장벽이 설치되었다. 동유럽에서 독일로 가는 관문인 오스트리아도 국경 경비를 강화했다.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역시 국경 통제를 신중하게 고려 중이다. 인구당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했던 스웨덴은 발트해를 가로질러 자국 도시 말뫼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잇는 외레순 다리를 비상 시 폐쇄할 수 있도록 했다. 쾰른 사건이 벌어지자 스웨덴은 1월4일부터 덴마크 국경을 통제했으며 덴마크는 독일 국경에 대한 통제에 들어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상설 유럽국경해안경비대(EBCG)를 설치할 예정이다. 유럽연합 외곽의 국경과 해안 경비를 전담하는 EBCG는 1500명으로 구성되며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 3억2200만 유로(약 4150억원)를 투입해 유럽 외곽의 경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유럽연합과 터키는 지난해 11월 30억 유로(약 3조7000억원)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난민 대책에 합의한 바 있다. 터키가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면서 가장 최전선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터키에 난민 대책 마련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해주고 터키는 자체적으로 난민을 소화해 난민의 유럽연합 유입을 줄이자는 말이다. 하지만 유럽으로 오는 난민이 줄어들기보다 오히려 불법 난민 루트만 더 만들어낼 가능성이 많다. 유럽 국가들이 다 수용하지 못하는 난민들을 터키 한 나라가 모두 책임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돈 없는 난민들은 터키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고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돈줄을 쥐고 있는 테러범들만 불법 루트로 유럽 땅을 밟을 수도 있다. 독일의 카오스가 유럽의 카오스는 물론 세계의 카오스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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