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새해 벽두부터 미국 공화·민주 양당 대선 주자들의 발걸음이 부쩍 바빠졌다. 당장 2월1일 중서부 아이오와 주에서 당원만 투표에 참가하는 코커스(당원대회)가 예정돼 있다. 2월9일에는 뉴햄프셔 주에서 당원뿐 아니라 일반 유권자도 투표에 참가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열린다. 가장 먼저 경선이 치러지는 두 곳의 선거 결과에 따라 후보의 경쟁력과 당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지지율 추세를 보면 민주당에서는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 후보(68)가 우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현역 상원의원으로 ‘사회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후보(74)가 턱밑까지 추격한 상태다. 마틴 오말리 전 메릴랜드 주지사가 아직 버티고 있지만 세간의 관심권 밖이다. 공화당에서는 억만장자 기업가 도널드 트럼프(69)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최근 현역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후보(45)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혼전 상황이다. 그 밖에도 의사 출신인 벤 카슨, 현역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와 랜드 폴, 현역 주지사인 크리스 크리스티 및 존 케이식, 전직 주지사 젭 부시, 마이크 허커비 등이 난립해 있다.

미국 대선은 간접선거 방식인 ‘선거인단’을 통해 이뤄진다. 선거인단 수는 상·하원 의석수 535명과 워싱턴 D.C. 3명을 합쳐 모두 538명이며, 당선을 위해서는 270명을 확보해야 한다. 선거인단 수로 보면 각각 6명, 4명에 불과한 아이오와 주나 뉴햄프셔 주는 무려 55명이나 걸린 캘리포니아 주에 비해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정반대다. 두 곳에서 선전하지 못할 경우 대선 동력을 상실해 중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AP Photo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테드 크루즈가 지난해 12월15일 대선 후보 TV토론을 하고 있다.

대선의 첫 격전지 아이오와 주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격언이 있다. “아이오와엔 3장의 티켓뿐”이란 말이 그것이다. 코커스 경선에서 3위 안에 들지 못하면 대선 후보 꿈을 접어야 한다는 뜻이다. 클린턴·샌더스·오말리 세 사람이 나서는 민주당의 경우에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후보 12명이 난립한 공화당은 사정이 다르다. 아이오와 주의 코커스에 뒤이은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 성적표까지 나온 뒤에는 중도 탈락자가 속속 나올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한때 트럼프 후보를 앞설 정도로 지지율이 급상승하다 근래 3위권 밖으로 밀려난 카슨이 그런 경우다. 그는 1월8일 뉴스맥스 TV에 나와 경선이 벌어질 첫 4개 주 가운데 2개 주에서 3위 안에 들지 못하면 경선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렇다면 첫 격전지 경선을 코앞에 둔 양당 선두 주자들의 경쟁력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혼전 그 자체다. 민주당부터 살펴보자. 클린턴 후보는 지난해 4월 공식으로 출사표를 던진 뒤 전국 단위의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세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심상치 않다. 1월13일 공개된 〈뉴욕 타임스〉와 CBS 방송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경우 클린턴이 48%로 샌더스(41%)보다 고작 7%포인트 앞섰다. 한 달 전만 해도 클린턴이 샌더스를 20%포인트 이상 따돌린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격차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특히 샌더스는 45세 이하 유권자 사이에서 클린턴보다 2대1 비율로 지지가 더 많았다. 공화당의 경우 트럼프가 32%의 지지율을 얻어 19%에 불과한 크루즈를 크게 앞선 상태다.

1월10일 공개된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뉴스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은 아이오와에서는 샌더스를 앞섰지만(48% 대 45%), 뉴햄프셔에서는 오히려 46% 대 50%로 뒤진다. 문제는 이 같은 근소한 격차가 모두 오차 범위 내에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결과는 클린턴이 첫 두 격전지에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보여준다. 클린턴이 패하면 대선 전망에 타격을 받겠지만 샌더스는 동력을 확보해 더욱 믿을 만한 대선전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클린턴은 2008년 대선에서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위로 밀린 바 있다.

클린턴이 뉴햄프셔에서 샌더스에게 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오와와 달리 뉴햄프셔에는 샌더스의 주된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유권자와 자유주의 성향의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햄프셔에는 공화·민주 양당의 분열과 반목 정치에 오랜 염증을 느껴온 무당파 유권자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이 샌더스 지지자들이다. 갤럽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 국민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은 민주·공화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는 무당파다.

ⓒAP Photo지난해 12월19일 민주당 대선 후보 3차 TV토론에 참여한 버니 샌더스(왼쪽)와 힐러리 클린턴.

‘전면 공격’에 나선 불안한 선두 주자들

공화당도 혼전이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오와에서 크루즈는 트럼프를 4%포인트 차이로 근소하게 앞질렀다(크루즈 28% 대 트럼프 24%). 그나마 크루즈가 앞선 까닭은 이 지역의 ‘티파티(Tea Party)’ 소속 극우파 유권자들과 기득권 유권자들의 지지 덕분이다. 반면 무당파 유권자들이 많은 뉴햄프셔에선 트럼프가 30%로 14%를 얻은 크루즈를 크게 눌렀다.

경선을 코앞에 두고 선두 자리가 흔들리자 클린턴과 트럼프도 비상이 걸렸다. 클린턴은 최근 외동딸 첼시까지 선거운동에 끌어들였는가 하면 그동안 샌더스를 경시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그의 과거 행적까지 들춰가며 전면 공격에 나섰다. 이를테면 2005년 총기업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안에 샌더스가 찬성했다는 사실을 들춰내 공격한 게 단적인 예다.

트럼프는 아예 대놓고 크루즈를 인신공격하고 있다. 헌법상 ‘출생에 의한 미국 시민’이 아닌 이상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없는데 크루즈가 캐나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크루즈의 모친은 미국인이지만 부친은 쿠바 출신 이민자다. 크루즈는 1970년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모친이 미국 시민권자였으므로 자신 역시 호적상 미국 시민권자이고 후보 출마에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다수 헌법학자들도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이런 후보 간 혼전 양상보다 더욱 흥미로운 건 공화·민주 상대 후보 간의 가상대결 결과다. 〈월스트리트 저널〉·NBC 조사에 따르면 아이오와의 경우 클린턴은 크루즈에 대해 48% 대 47%로 신승이지만 뉴햄프셔에선 44% 대 48%로 뒤진다. 반면 샌더스는 아이오와에선 크루즈를 47% 대 42%로, 뉴햄프셔에선 55% 대 36%로 모두 이긴다. 민주당 후보와 트럼프 간의 가상대결도 흥미롭다. 아이오와에선 클린턴이 트럼프를 48% 대 40%로 다소 앞서고, 뉴햄프셔에선 45% 대 44%로 간신히 우위다. 하지만 샌더스는 아이오와의 경우 51% 대 38%, 뉴햄프셔의 경우 56% 대 37%로 트럼프를 너끈히 앞지른다. 민주당 처지에선 클린턴보다 샌더스가 훨씬 경쟁력이 있는 셈이다.

미국의 유수한 정치 분석가들은 클린턴이 아이오와 승리의 여세를 몰아 뉴햄프셔에서도 샌더스를 누를 경우 민주당 후보 경선은 일찌감치 끝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샌더스가 양쪽 모두 이기면 경선은 의외로 오래갈 수도 있다. 공화당의 경우 트럼프가 아이오와는 물론 뉴햄프셔에서 승리할 경우 트럼프 대세론이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15개 주가 동시에 경선을 치르는 3월1일 ‘슈퍼 화요일’을 계기로 공화·민주 양당의 대선 후보 윤곽도 가려질 전망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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