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고 박왕자씨 영정에 국화꽃을 올리는 아들 방재정씨(위). 오른쪽은 7월18일 새 정부 들어 처음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
드디어 남북 관계에 파국의 그림자가 드리우는가. 이명박 정부 들어 외줄타기에 매달린 양 위태롭던 남북 관계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을 계기로 파탄의 순서를 밟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7월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가 개성 관광 검토 중단을 천명한 것이야말로, 그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날 NSC는 “북측이 남북한 공동조사와 재발방지책 등의 약속을 하지 않을 경우 개성 관광도 중단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라고 했다. 실제로 중단까지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칠 예정이라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 분위기로 볼 때, 정부가 요구하는 공동조사 내지는 재발방지책 등에 응할 가능성이 전무하다. 오히려 북측이 먼저 개성 관광 중단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까지 있다.

예측 불허의 북한 움직임

애꿎은 민간인을 정조준 사격해 피살했으면, 좀 숙이고 나올 만도 한데, 북한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오히려 남쪽이 이 사건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 중단을 장기화하면, 개성 관광에 대해서는 북한이 중단할 명분을 갖게 된다는 식의 얘기도 떠돈다고 한다.

더구나 이 사건 와중인 7월16일 개성공단 내에서 남쪽의 건설회사 주관으로 철골공사를 하던 중 북한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하는 인재가 발생한 것도 북한의 강경 대응을 부채질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북측이 남쪽 기업에 대해 부실공사 책임을 물으며 맞대응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자칫 남북 관계 파국으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나오는 까닭이 있다. 바로 이번 피격 사건의 실질 배후라 할 수 있는 북한 군부가 이미 지난 4월부터 개성공단의 폐쇄까지 염두에 두고, 일련의 강경한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몇몇 대북 사업자나 NGO 관계자를 중심으로 북한 군부 움직임에 대한 염려와 경고의 메시지가 전달된 바 있으나 정부는 오불관언이었다. 그런데 이번 금강산 피격 사건을 계기로 남과 북의 공방이 무르익게 되면, 군부가 그동안 책상 서랍에 넣어뒀던 공단 폐쇄 시나리오를 꺼내들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금강산 피격 사건 역시 지난 4월부터 시작된 군부 강경파의 모종의 움직임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개성- 금강산-다시 개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치달을지도 모를 일이다.

군부 강경파가 개성공단과 관련한 어떤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말에 터진 두 가지 사건에 기인한다. 하나는, 지난 3월26일 김태영 합참 의장 내정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선제 타격 발언이 화근이었다. 당시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내정자는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라는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의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무기)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이 기사에는 익명의 군 관계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김 내정자의 발언을 사실상 ‘예방 차원의 선제 공격’이라고 정식화했다.

개성공단 폐쇄 시나리오의 진상은?

김 합참의장 내정자의 이 발언은 그야말로 북한 군부를 벌집 쑤시듯 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해 11월 남북 군사회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것 떼라”고 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북한 군부의 감정이 무척 상해 있던 터였다. 그 뒤로 이명박 정부 들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들이 남쪽에서 계속 튀어나와도 꾹꾹 눌러 참아왔는데, 남한군 최고 책임자의 입에서 선제 타격 발언까지 나오는 데에 이르자 북한군 내 강경파가 ‘우리도 본때를 보이자’며 결집하기 시작했다.

국내의 대북 전문가 중에는 북한을 일사불란한 사회로 보면서, 북한 내 강경파 혹은 온건파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북한을 이처럼 획일적 사회로 보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군부 내에도 남북 관계가 잘되어야 한다는 민족주의 성향의 온건 군부가 존재하고, 반면 남북 관계보다는 내부 권력 구도 속에서 군부의 위상과 입지를 위해 대남 강경 대응을 주장하는 강경파도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을 자극하는 얘기가 정부 주변에서 계속 나왔음에도, 북한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북측 내부의 민족주의 원로 그룹이 강경 세력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비무장지대 휴전선 마을에서 북한 군인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3월26일 김태영 합참 의장 발언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이같은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부 업무보고 발언 내용까지 겹치면서 북한 내부 원로 그룹조차 이명박 정부에 등을 돌려버리는 상황이 됐다. 북한 내 강경 군부에 대한 잠금장치가 사실상 사라져버린 셈인다.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군부 강경파의 분노가 공교롭게도 개성공단을 향해 터지도록 하는 사건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 발생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북한 내부에서는 지난 10년간 대남 사업을 담당해왔던 민경련, 민화협, 통일전선부 등에 대해 당 차원의 감찰이 심도 있게 진행돼왔다. 그 감찰 보고서가 3월 말께 나왔는데, 북한 군부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개성공단을 관리해온 민경련이나 아태평화위원회 등 대남 부서 요원 중에 남쪽으로부터 돈을 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시피 했고, 그 액수도 하위직은 몇만 달러, 고위직은 몇백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개성공단 지역은 원래 북한 군부 관할의 군사 요충이었다. 6·15 공동 선언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군부가 눈물을 머금고 대남 부서에 넘겼던 것인데, 그 뒤로도 궂은일은 모두 군인이 담당하고, 내심 기대했던 떡고물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군 내부에서는 2단계 공사라도 시작되면 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3월19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개성공단 2단계 공사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부터 이같은 기대마저 접어야 했다. 이때부터 김하중 장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 내부에서 대화 불가능 인사로 찍혀버렸는데, 당시 북한 내부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방증하는 사건이다.

이런 와중에 민경련 등 대남 기관 종사자가 남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흥청망청 살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군내에서, 차라리 이럴 바에야 우리 땅 다시 내놔라 하는 여론이 비등할 것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도 지난 4월 말 공단 폐쇄까지 상정한 어떤 시나리오가 대북 사업가나 NGO 관계자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최고 실권자인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 사업이라는 점, 여기에 몇 가지 우여곡절이 겹치면서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 폐쇄를 일단 유보한 채, 불만을 터뜨릴 또 다른 공간을 물색하게 된다.
 피격 사건이 터진 후 언론에는 북한 군부의 계획적 도발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했다. 그러나 이 사건 발생 이전의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진상은, 계획적 도발과 우발적 사건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우선 사건 발생 직전, 그동안의 누적된 불만 외에 북한 군부를 초긴장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이 또 발생했다. 바로 8월18일부터 22일까지 한·미 간에 전개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 군사훈련이다. 통상적으로 남쪽에서 한·미 합동훈련을 하면 북한은 그 몇 배의 기간을 초긴장 상태에서 대응 훈련을 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최근 식량난 여파로 군인조차 굶주림을 참아야 하는 등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피격 사건 하루 전인 7월10일 북측의 요청에 따라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미 대령(대좌)급 회담’이 열려, 서로 험악한 상황이 벌어진 것도 최근 북측이 얼마나 신경질적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금강산 외곽을 경비하는 북한군 초병에게 군 상층부에서 ‘원칙 대응’ 지시가 떨어진 것은 바로 이런 정황 속에서였다. 대략 피격 사건 발생 1주일 전쯤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관광객이 군 경계 지역을 침범할 경우 과거처럼 일시 억류 후 방면하는 식이 아니라, 초병 근무 수칙을 원칙대로 적용해 대응하라는 지시였던 셈이다.

ⓒ연합뉴스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이 7월16일 고 박왕자씨 피살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군의 원칙 대응은 북한 군부가 평양의 정치 지도부에게 나름으로 핑곗거리를 대면서도, 이명박 정부 들어 누적된 자기들의 불만을 터뜨릴 수 있는 묘안이었던 셈이다. 사건 발생에서 발표까지 4시간이 걸린 것은 북한 군내 상부 보고 절차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군의 생리상 불가피한 상황에서 원칙 대응했다고 하면, 상부에서는 잘했다는 얘기 외에는 할 수 없다.

피격 사건은 과연 계획된 도발인가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앞으로 벌어질 상황의 심각성이 있다. 이미 선을 보였듯이 북한 군부는 앞으로 전개될 남측과의 핑퐁 게임에서도 원칙 대응 방침을 그대로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남측에서 먼저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으니 앞으로 적당한 시점에 개성 관광은 우리가 중단시키겠다는 분위기가 이미 존재하던 터이다. 그런데 남측 정부가 먼저 개성 관광 중단 검토를 언명했다. 북한 군부로서는 더욱 쉽게 받아칠 명분이 생겼다.
그 다음 순서는 군부 강경파의 원 시나리오대로 갈 가능성이다. 바로 개성공단 폐쇄이다. 먼저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을 중국이나 베트남 수준으로 올리라고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태업·파업 등 단계적 절차를 밟는다는 시나리오도 만들어진 상태라고 한다.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까지 무너지면, 남과 북의 분단 대치선에는 이제 완충지대가 모두 없어진다. 바로 이것이 남북 관계의 파국이 아니고 뭔가. 10년의 평화 시대가 가고, 남과 북이 날것으로 부딪치는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인가.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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