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업무에 관여한 영관급 고위 인사 A씨가 〈시사IN〉과 단독으로 만나 이렇게 ‘경고’했다. 무슨 맥락일까. 다시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온라인 여론에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댓글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지만, 관련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제보자 A씨는 “나쁜 짓을 하면 책임과 벌이 따라야 하는데, 안그러니까 얘들이 빈둥빈둥 웃으면서 자기가 영웅인 줄 안다. 죄책감·죄의식은 없고 영웅의식만 있다. 선거가 다시 다가오는데, 우리 군이 살려면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6년 총선을 석 달 앞두고, 그동안 국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일어난 일을 점검했다. 제보자 보호를 위해 A씨의 신상에 관해서는 자세히 쓸 수 없다는 점을 밝힌다.

ⓒ연합뉴스2013년 11월2일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댓글부대’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대북 심리전은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전파해서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 여기서는 ‘홍어X’이란 표현이 필요 없다. 그런데 아침마다 ‘홍어X’이라는 댓글이 달리는 거다. 결국 누구를 겨냥한 심리전이었겠는가.”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정치·선거 관련 댓글을 달던 2012년 총선과 대선 기간에 그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다.

실제로 그랬다. 특정 지역에 대한 원색적인 비하뿐 아니라, 특정 정치인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과 비난을 이른바 댓글부대가 쏟아냈다. 군 검찰이 적발해서 1심 재판부가 인정한 정치·선거 댓글은 이랬다(이하 원문 인용).

“안철수의 뿌리는? 홍어 냄새가 난당께. 그의 고향은 전라도다. 왜냐면 조부모가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혐의는 인정됐지만 엄한 처벌은 딱 한 사람만 받았다. 당시 심리전을 담당한 국군 사이버사령부 530단 단장 이태하씨만 지난해 5월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시사IN〉 제401호 “숨어서 일하던 ‘애국자’ 징역 2년 받던 날” 기사 참조). 그나마도 석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2심 재판을 받는 중이다. 선고는 3월3일로 변경되었다.

기소된 나머지 4명은 1심에서 선고유예나 집행유예가 났다(아래 〈표〉 참조). 재판부는 ‘국기 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면서도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 이들의 항소심 재판은 1년 가까이 열리지 않고 있다. 이례적인 상황이다. 서울고법의 한 관계자는 “관련 사건이 계류 중이라 결과를 보고 진행한다고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피의자들이 군인의 정치 관여를 금지한 군형법 제94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렇게 법적 심판에서 ‘시간 끌기’를 하는 동안 군 내부에서는 제 식구 감싸기가 일어났다. A씨는 특히 여전히 국군 사이버사령부에 소속되어 있는 당시 댓글 업무의 실무자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건 당시 530단에 소속되어 있던 박 아무개 대장(4급)과 정 아무개 대원(5급)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당시 연제욱·옥도경 사이버사령관과 함께 기소가 됐고, 실제로 다음과 같은 ‘댓글 작전’도 수행했다. 1심 재판에서 모두 인정된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님 한복 입고 미국 돌아다니시고 영어로 연설하면서 박수갈채 받는 모습 보니까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ㅠㅠ(박 대장 작성).”

“(김광진 의원) 완존히 미친 색이네. 어떻게 저런 놈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지. 길 가다가 벼락 맞고 뒈져라(정 대원 작성).”

 

그런데 사건이 불거진 뒤 이들은 오히려 승진했다.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4년 1월 박 대장은 3급, 정 대원은 4급으로 영전했다. 박 대장은 530단장에까지 올랐다. 지금은 530단 소속은 아니지만 두 사람 모두 여전히 사이버사령부 소속이다. A씨는 “통상적으로 군에서 사고가 나면 모든 업무를 중지시키고 전수조사에 들어간다. 재평가해서 재병렬시킨다. 그런데 감싸고돌았다. 왜 그랬겠는가? 군인이 조직에서 마음대로 하나?”라고 말했다.

심지어 정 대원은 증거까지 인멸했다. 증거인멸 혐의가 1심 재판에서도 인정되었다. 판결문에 명시된 그의 행위는 이렇다. “2013년 11월6일 530단 인원들의 정치 관여 혐의가 문제된 시점에서 직접 전 국군 사이버사령관인 준장 고 서명을  보고 수차례 연습한 후 위조했다.”

‘증거인멸’로 경찰은 감옥 가고 군인은 영전하고?

그럼에도 정 대원은 1심에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경찰의 경우와 비교해보라고 말했다. “생각해봐라. 댓글 사건 때 경찰은 증거인멸로 감옥 갔잖은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정원 수사 외압’과 관련해 증거를 인멸한 박 아무개 경감은 1심에서 징역 9월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다. 댓글팀의 손과 발 노릇을 했던 하위직 대원들은 2014년 11월 상까지 받았다. 팔로어 7만명을 두었으면서도 ‘평범한 워킹맘’이라 주장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댓글을 수없이 남겼던 이 아무개 중사는 상사로 승진했다. 그동안 ‘조직’이 이들을 대한 태도를 보면 앞으로의 상황도 내다볼 수 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그 사람들 아직도 날개를 활짝 펴고 다닌다. 날개를 접어야 하는 이들이 날아다니다 보니, 밑에 정의로운 사람들은 서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이런 식이면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댓글 심리전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A씨는 또 국군 사이버사령부 사건의 실체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댓글 사건이 한창 불거지던 때 나왔던 ‘국군 사이버사령부-국정원-국가보훈처 삼각 공조’ 의혹을 대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실세였던 청와대 인사에 대한 특검이 이뤄져야 밝혀질 의혹이라며 “모두가 (이명박 정부 실세)에게 머리 박았다”라고 당시 사정을 설명했다. 국정원 RCS(해킹팀)와 해킹 부대로 알려진 국군 사이버사령부 산하 31센터(지난해 900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다)의 연관 관계에 대해서도 언론이 더 취재하지 못하고 있음을 질타했다. “원래 북한군을 해킹하는 건 비밀이 아니다. F15 비행장이 비밀이 아닌 것처럼. 운영과 편제만 비밀이다. 그런데 군은 아예 존재를 숨기려 든다. 그러면서도 900연구소 신 아무개 소장은 나중에 청와대 사이버안보비서관으로 영전했다. 왜 그랬겠냐?”

이에 대해 국군 사이버사령부 사건을 오랫동안 파헤쳐온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의원실의 강동기 전 보좌관은 “국방부가 조직에게 충성한 이들만 챙기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이것이 전체 조직에 의미하는 바가 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A씨의 경고를 대충 듣다가는 총선과 대선에 군인이 개입한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책임자를 반드시 중징계하고 내부를 점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