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형이 불러온 후폭풍 중동발 ‘치킨 게임’

둘로 쪼개진 중동, 미국은 망연자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시아파 집단 처형 사건이 세계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집단 처형에 따른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간 분쟁이 격해지면서 IS(이슬람국가)에 대한 중동 국가들의 단일 전선 형성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 사이의 충돌은 단지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우디는 바레인·카타르·아랍에미리트 등 수니파 국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란과 이라크·시리아·레바논·헤즈볼라 등 시아파 세력이 주도하는 나라나 조직들 역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시아파 정부가 집권 중인 이라크에서는 지난해 개설한 사우디 대사관을 다시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드세다. 이라크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아야툴라 알리 알시스타니는 “사우디에서 처형당한 시아파 지도자들은 순교자다. 그들은 부당한 탄압으로 피를 흘렸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는 성명서에서 “사우디의 시아파 지도자 알님르 처형은 암살이자 추악한 범죄”라며 사우디 정부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수니파 진영도 만만치 않다. 사우디 정부는 집단 처형은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 쪽으로 여론전의 방향을 설정했다. 대신 이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대한 방화를 초점으로 수니파 진영을 결집시키고 있다. 수니파 국가인 바레인·수단 등은 사우디가 이란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자마자 같은 조치를 선언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이란과의 국교 수준을 대사급에서 대리대사급으로 격하시켰다. 쿠웨이트도 테헤란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AP Photo이라크에서도 알님르 처형에 반발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렇게 중동이 둘로 쪼개지자, 사우디의 우방인 동시에 최근 핵협상 타결로 이란과도 거리를 좁혀나가던 미국은 망연자실한 처지다. 미국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1월2일 “알님르 처형으로 종파 갈등이 악화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 특히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알님르 처형은 이미 중동 전체에 큰 피해를 입힌 종파 갈등을 더욱 키우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정면충돌은 IS와 싸우기 바쁜 국제사회의 발목을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산유국 간의 갈등이 석유시장에 어떤 충격을 주게 될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이미 1400년 이상 지속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 쉽게 해소되리라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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