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형이 불러온 후폭풍 중동발 ‘치킨 게임’

둘로 쪼개진 중동, 미국은 망연자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정면충돌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2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강행한 집단 처형이다. 시아파 운동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크르 알님르(이하 알님르) 등 47명을 테러 혐의로 사형한 것이다. 알님르는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 안에서 인구의 15%에 불과한 시아파의 권익 보장 운동을 하던 인물이다. 사우디는 ‘알님르가 타크피리(이단) 사상을 바탕으로 정부 전복을 위해 외부 세력과 결탁해 폭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 사형 집행에 이웃 국가인 이란이 발칵 뒤집혔다. 사우디 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자국 시민을 영토 안에서 처형한 것인데 왜 이란이 이토록 반발할까? 이슬람 내 뿌리 깊은 종파 대립 때문이다. 이슬람에는 수니와 시아로 불리는 양대 종파가 있다. 교리를 다르게 해석해서 다른 종파로 갈린 것이 아니다. 1400년여 전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서거(632년)한 뒤 후계자(칼리프) 자격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 분열의 씨앗이었다. 이후 수니로 불리게 되는 파벌은 지도자 회의에서 합의로 후계자를 선출하자고 주장했다. 다른 쪽에서는 무함마드의 핏줄만이 후계자로 적합하다고 맞섰는데, 이들이 시아파를 형성하게 된다. 1~3대 칼리프는 수니파의 의견대로 선출되었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4대 칼리프로 앉히는 데 성공해 숙원을 이루는 듯했다. 그러나 알리는 이내 암살되어버렸다. 이후 전개된 권력투쟁에서 그의 장남과 차남까지 무참히 살해당했다. 이로 인해 수니파와 시아파는 철천지원수가 되었고 그 원한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체 무슬림 인구 가운데 수니가 85%를 점유하는 데 비해 시아는 15% 정도로 추정된다. 앞서 사우디 정부가 ‘타크피리 사상의 외부세력’으로 에둘러 지목한 대상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으로 보인다.

ⓒAP Photo1월3일 이란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대가 시아파 운동 지도자인 알님르(피켓 속 인물)의 처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우디 정부가 알님르 등을 처형한 1월2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규탄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으로 몰려가 건물에 불을 질렀다. 이란 제2도시 마슈하드의 시위대는 사우디 총영사관에 돌과 불붙은 물건을 던지고 사우디 국기를 찢었다. 이란 외교부는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의 대사 대리를 불러 처형에 항의했다. 이튿날인 1월3일에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까지 나서서 “사우디 정치인들은 신의 복수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알님르 처형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

사우디 정부는 맞받아쳤다. “이란이 테러리즘을 지원한다는 민낯을 드러냈다. 이란은 중동 테러리스트의 파트너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낸 것이다. 또한 이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대한 공격을 문제 삼았다. 사우디로서는 국제 여론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더할 나위 없는 명분이었다. 과거에도 이란 주재 외국 대사관들이 공격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은 각각 1979년과 2011년에 이란 주재 대사관이 점거당하는 사건을 겪었다.

1월3일 밤, 사우디 정부는 자국 공관이 시위대로부터 공격당한 것을 이유로 이란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전격 발표했다. 사우디에 주재 중인 이란 외교관들에게도 “48시간 내에 떠나라”고 통보했다. 또한 사우디인의 대(對)이란 교역과 여행을 금지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민간 차원의 교류조차 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로써 양국의 국교는 단절되었다.

그런데 사우디는 시아파 지도자 알님르의 처형으로 이 같은 파국이 닥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사우디 측이 이란 주재 공관에 대한 공격은 물론 국교 단절까지 각오하고 있었으리라 본다. 그런데도 알님르의 처형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알님르는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에서 소수자인 시아파를 상징하는 성직자였다. 2010년부터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휩쓴 이른바 ‘아랍의 봄’ 당시 사우디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다. 2011년에는 사우디의 시아파 중심지인 동부 카티프 지역에서 시아파가 주도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를 이끈 사람이 바로 알님르다. 그는 왕정국가 사우디에서 정치 지도자들을 가차 없이 비판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왔다. 더욱이 저항의 방법으로 평화 시위와 자유선거를 주장해서 사우디 민주화 세력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 사우디 왕정에게 알님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민주화는 왕정의 전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AFP1월3일 이란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시위대가 불을 질렀다.

또한 알님르는 시아파 주민들의 거주지이자 유전 밀집 지역인 사우디 동부의 분리 독립을 주장해왔다. 사우디 정부로서는 가만 놔둘 수 없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사우디 정부는 알님르 처형으로 시아파 주민들의 결집을 막고, 민주화 세력을 견제하며, 동부 유전 지역을 보호하고, 중동 패권의 경쟁자인 이란에 일격을 가하는, 1석4조의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지난해 1월 왕권을 계승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체제는 사실 여러 측면에서 위기 상황이다. 우선 유가 급락으로 인해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5%인 3670억 리얄(약 114조원)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로 인해 시민들에게 지급하던 보조금까지 일부 축소했다. 왕가 내부의 위기도 만만치 않다. 살만 사우디 국왕은 90세로 건강이상설이 끊이지 않는다. 제2 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인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자는 지난해 “강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외치며 이웃 나라 예멘의 반군 지역 공습을 주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왕가의 권위가 손상됐다. 사우디의 한 왕족은 “왕가는 예멘 공습 이후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석유와 민심 이반에 대한 위기감도 팽배해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집단 처형은 ‘외부의 적’을 빌미로 강한 정부의 모습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정치 전략이기도 했다.

군사적 충돌 외 가능한 적대 조치는 모두 이행

이란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반격했다. 사우디가 이란과의 국교를 단절한 명분은 이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번엔 이란이 사우디로부터 자국 공관이 공격당했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이란 정부는 지난 1월6일 밤 사우디 전투기가 예멘 사나에 있는 이란 대사관을 폭격했다고 주장했다. AP 통신은 현장 목격자의 증언을 인용해 “이란 대사관 건물에 폭격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란 언론들은 일제히 대사관 벽 일부가 무너지고 직원들이 다쳤다고 전하는 중이다. 아미르 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차관은 1월7일 “수시간 내로 유엔에 대사관 폭격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내겠다”라며 맹공세에 나섰다. 또한 사우디에서 생산된 물품 수입을 금지하고 사우디 메카에서 이뤄지는 비정기 성지순례(움라)도 당분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수니파와 시아파가 나뉘었다 해도 이슬람권에서 성지순례를 건드리는 것은 상당히 수위 높은 조치다. 무슬림의 6대 의무 중 하나가 성지순례이기 때문이다. 1988년에는 사우디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끊으면서 이란 국적자에 대한 비자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전체 무슬림 세계의 분노를 샀던 적이 있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양국은 군사적 충돌 이외에 가능한 적대 조치는 모두 이행한 셈이다. 민감한 국제 현안인 이란 핵개발 및 IS(이슬람국가)와의 전쟁 등에서 양국의 충돌이 어떤 변수로 등장할지 매우 불투명해졌다. 양국 모두 더 이상 밀리면 안 되는 벼랑 끝에 선 꼴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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