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에서 독도(다케시마)를 찾기는 쉽지 않다. 1883년 〈일본소학〉(위)에는 시마네현에 “오키섬 외에는 기재할 내용이 없다”라며 독도를 뺐다. 시마네현이 독도를 편입한 1905년 교과서(왼쪽 위)에도 독도 관련 내용이 없다. 교사용 해설서에 해당하는 1938년판 〈소학국사교사용서〉(왼쪽)에는 독도가 등장하지만, 조선의 영역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 전쟁’은 주로 일본 교과서 위에서 벌어진다. 올해에도 독도 분쟁은 일본 정부가 교과서 교사용 해설서에 독도(다케시마) 영유권을 명기하면서 벌어졌다. 한편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종종 일본 교과서를 인용하곤 한다.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표시된 일제 시대 교과서를 우연히 고서점 구석에서 발견했다”라는 식이다. 해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이되면 연례행사처럼 일제 시대 교과서 발굴 뉴스가 소개된다.

일본 도쿄 가쿠게이 국립대 교육학부 이수경 교수는 이런 돌출적인 일본 교과서 발견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 일반인이 골동품점에서 옛 교과서를 간헐적으로 발견하기 이전에 왜 한국 정부가 체계적으로 일본 국정교과서를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늦었지만 이 교수는 130년 전부터 2차 대전 종전까지 40권에 달하는 일본 역사·지리·지도 교과서를 모두 입수해 독도를 언급한 부분을 따로 연구한다.

이 교수가 모은 자료에는 해석하기에 따라 한국에 유리한 것도 있고 일본에 유리한 것도 있다. 최근 일본 문부성은 이 교수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 교수는 “이 자료 자체만으로는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이 유리하냐 불리하냐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나라나 단체가 있다면, 반드시 살펴봐야 하는 기본 연구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이수경 교수와 공동 연구자 구사가베(日下部龍太) 씨의 미발표 논문 〈일본의 전쟁 전의 역사/지리/지도 교과서에서 보는 근대사 과제; 독도 고찰을 중심으로〉 가운데 일부 자료를 입수해 소개한다. 여기서 소개된 사례 9건은 시대에 따라 일본인 사이에 독도에 대한 인식이 변해왔음을 보여준다.

1. 〈일본지사략〉 문부성 펴냄, 1874년

지리 교과서로 일본 국정교과서 가운데 최초로 독도에 관해 언급했다. 이 책 19~20쪽 구절은 이렇다.
원문:(오키섬은) 북쪽 바다에 나란히 마주하여 하나의 나라 형태를 만들고 있으며, 치부리, 아마, 스키, 온치(혹은 오치)의 네 군이 있으니. (중략) 또, 서북 해상에 마쓰시마, 다케시마 있고….
괄호 안은 이수경 교수의 해석이다.

여기서 마쓰시마는 독도, 다케시마는 울릉도를 뜻한다. 19세기에는 마쓰시마와 다케시마가 서로 바뀌어 불렸다. 이 교과서는 한·일 양국 모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이미 130년 전에 일본 교과서가 독도 영유권을 명기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국 쪽에서 보자면,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묶어 표현한 것은 영유권과 무관한 지리상 설명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울릉도가 한국 땅인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2.〈소학용지도〉 오사카장사용장당, 1876년

한국 교과서의 사회과부도 같은 지도책이다. 별다른 설명 없이 그림으로만 채워진 이 책에 울릉도와 독도가 그려져 있다. 사례 1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한·일 양국 모두 각자 해석이 가능하다.
 
3. 〈일본소학〉 문부성, 1883년

초등학생용 지리 교과서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2권 47쪽에 시마네현 부근의 지리를 기술하면서 “오키섬 외에는 기재할 내용이 없다”라고 표현한 점이다.
오키섬과 독도 사이의 거리는 울릉도와 독도의 그것과 비슷하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면 저런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1876년 교과서와는 달리 1883년 교과서에 독도에 관한 언급이 사라진 까닭이 뭘까? 이와 관련해 이수경 교수는 1877년을 기점으로 시대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877년 3월29일 일본 정부 최고 기관인 태정관은 공문서로 “일본해 내 다케시마 외 일도를 판도 외로 정한다”라고 밝혔다. 이 문서는 대체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 관련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 중앙정부의 이런 판단이 교과서 제작에 영향을 미쳤으리라 볼 수 있다.

4.〈최근통합제국지리〉 대일본도서주식회사, 1905년

중학교용 지리 교과서다. 1905년 11월 편찬된 이 교과서에는 시마네현 서안 오키섬 근방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자세하게 쓰여 있지만 독도에 관한 정보는 언급이 없다. 이 교수는 “1905년 2월22일 독도는 시마네현에 편입됐고, 같은 해 11월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1905년 11월에 발행된 이 지리 교과서에는 독도·다케시마 등의 표기는 일절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이 지리 교과서에는 다케시마의 존재가 인식되지 않았던 것은 명확하다”라고 말했다.
 

일본 교과서 가운데 명백하게 독도를 일본령으로 표기한 것은 1937년 조선총독부가 조선 학생을 교육하기 위해 발행한 지도(위)가 처음이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일본 본토 지도 교과서(왼쪽)는 독도를 명기하지 않았다.

원문:오키 군도는 ‘도우젠’ ‘도우고’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도우고의 사이고라는 마을에는  안전한 정박지(작은 부두 같은)가 있고, 근해에서 오징어를 많이 산출한다. 도우젠은 니시노시마, 나카노시마, 치부리시마 세 섬이 서로 어우러져 모모에 문양을 이루고 고토바 천왕의 유적지가 있다….

5.〈심상소학지리서〉 문부성, 1918년

이 책은 한국인 학자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 같다. 76쪽에 쓰인 내용은 “(일본해의 시마네현 바다의) 섬에는 오키섬만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90년 전 교과서에는 시마네현 바다에 독도가 없다는데, 지금 시마네현 정치인은 독도가 당연히 자기 땅이라고 주장한다.

6.〈심상소학지리서부도〉 문부성, 1924년 

이 지도에서 조선의 영역을 표시한 부분에 독도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지도는 조선 전도를 표현한 것이라 독도의 크기가 작아 표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후 문부성이 펴낸 지리 부도에는 같은 방식으로 조선 영역이 표기된다.

7. 〈심상소학국사〉 문부성, 1934~1935년

러·일 전쟁 때, 동해에서 벌어진 전투 양상을 소개한 그림에 독도와 울릉도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독도와 울릉도 모두 일본과 구별되는, 조선과 같은 색으로 색칠돼 있다.

8. 〈심상소학용지리〉 문부성, 1934년

1918년판과 비슷한 표현으로 시마네현 영역에 독도가 없음을 나타낸다.
원문:(일본해의 시마네현 바다의) 섬으로는 오키도를 중심으로 하는 것들뿐이다.

9. 〈초등지도〉 조선총독부, 1937년

태평양 전쟁을 치르는 군국주의 일본은 이 즈음에 처음으로 지도 교과서에 독도를 분명한 일본 땅으로 명기한다. 독도 아래에 ‘시마네현’이라는 주석을 단 것이다. 이견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게 독도를 일본 땅으로 명기한 것은 제2차 대전 이전에는 이 교과서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 교과서는 조선인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 일본 본토 학교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일본 국정교과서를 통해 본 일본 정부의 독도 인식을 정리하면 이렇다. 19세기 후반까지 독도와 울릉도를 지리상으로 인지하던 일본 정부는 1877년 태정관 문서를 기준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인식의 범위에서 배제시킨다. 1905년 시마네현이 독도(다케시마)를 일본령으로 등록한 이후에도 교과서 표기에 별 변화는 없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는 다케시마를 의도적으로 일본 땅으로 각인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그 와중에도 일본 본토 교과서 편찬자들은 여전히 독도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일본 국정교과서에서 외면받던 독도는 1980년대가 되어서야 화려하게 국정교과서에 등장하게 된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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