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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일이었다. 7월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했다. “독도가 일본 땅이지만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교사에게 가르치라고 정부 차원에서 지침을 내린 것이다. 2005년 일본 극우파가 주도한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했다. 또 한국과 일본이 독도를 두고 영유권 분쟁을 벌인다는 교과서도 있다. 하지만 해설서 명기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다.

신용하 독도학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일본은 독도를 침탈할 장기 정책을 입안해 집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중·고교 의무교육 과정에 그런 내용을 포함하는 것인데 이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는 그런 장기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10년 전부터 가동된 일본의 독도 시나리오

10년 전만 해도 독도 영유권 문제는 그저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이었다. 몇몇 우익 정치인과 극우 단체가 주장할 뿐 일본 국민의 호응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표현을 학생에게 가르칠 정도로 환경이 바뀌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온 노력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본이 점부터 찍고 선으로 연결하고 다시 면으로 만드는 치밀한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부터 일본 학계에서는 독도 연구가 봇물을 이루었다. 일본 정부는 미국·영국·프랑스·한국 등지에 연구자를 파견해 독도에 관한 문헌을 샅샅이 뒤졌다. 한 일본 언론사의 서울 특파원은 “일본은 10년 전부터 연구원을 한국과 미국 등지에 보내 독도 관련 문헌을 찾았다. 특히 16~20세기 독도 지도를 집중 연구해 일본이 독도를 관리했다는 논리를 만들려고 했다”라고 말했다.

축적된 자료는 일본 공식 문서에 등장했다. 이는 국제 행사, 외국 학자와의 공동 연구와 세미나 등을 통해 하나 둘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은 세계지도에서 독도라는 이름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동해의 독도’가 ‘일본해의 리앙쿠르 바위섬(Liancourt Rocks)’으로 바뀌고 있는 것은 모두 일본의 치밀한 외교 전략의 결과다.

인터넷 자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월드 팩트북’(The World Factbook), 세계 최대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사이트인 ‘인사이클로피디아’ 등에서는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으로 표기하고 있다. 7월16일 미국 의회도서관은 독도 이름을 리앙쿠르 바위섬으로 바꾸는 심의를 하려다 잠시 보류한 상태다. 7월16일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미국 국무부가 독도 이름을 수년간 ‘리앙쿠르암’으로 공식 사용해왔다. 국무부가 사용하는 독도 명칭이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지난 7월 G8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맨 오른쪽)은 독도 문제에 대한 대응이 아쉬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대 법대 이상면 교수는 “리앙쿠르암이라는 표현은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 호가 독도를 확인한 19세기 말로 역사를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훌륭한 섬 독도를 바위 덩어리로 격하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든 결과다”라고 말했다.

2000년 이전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정치인의 망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일본의 주장은 노골화했다. 일본 우익 세력은 2001년 이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손잡고 종군위안부 문제 등 전쟁범죄 은폐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역사·지리 교과서는 독도를 일본의 경제수역 안에 있는 것처럼 지도에 그려넣기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 등 각종 시험에 독도 문제가 비중 있게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또한 각종 사전·연감·지도·여행서 등과 만화책에까지 독도가 빈번하게 출연했다. 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연구위원은 “2001년 이후에 교과서와 다른 자료의 독도 관련 기술의 왜곡이 심해졌다”라고 말했다.

일본이 독도 역사 왜곡 가운데 중점을 둔 분야는 교과서였다. 2005년 후소샤의 공민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구나시리·에토로후·시코탄·하보마이 제도의 북방 영토, 일본해 해상의 다케시마(竹島), 동중국해 해상의 센카쿠(尖閣) 제도에 대해서는 각각 러시아·한국·중국이 그 영유를 주장하고 일부 지배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나 국제법으로 보나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다.”

2001년판 교과서에는 독도를 표시하지 않았던 도쿄서적 교과서도 2005년 개정판은 독도를 북방 영토, 센카쿠 제도와 함께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서술했다. 일본의 지리 교과서는 일제히 독도와 울릉도 사이에 국경을 표시하는 선을 그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연합뉴스2008년 4월 일본 우익 단체 회원이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숙소 앞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치며 시위하는 모습.

일본 정부가 전면에 나서 독도에 대해 공세적인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부터다. 2005년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정한 조례안을 통과했고, 일본 경비행기가 독도 상공 진입을 시도했다. 이는 일본 정부, 시마네현, 다케시마문제연구회, 다케시마·북방영토 반환 요구운동 시마네현민회의, 현토 다케시마를 지키는 모임 등 일본 정부·시민단체·지방단체가 치밀하게 역할 분담을 한 것처럼 보인다. 시마네현과 각 단체의 주장은 자민당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외무성·문부성·내각부의 정책에 반영된다. 여기에 언론이 적극 협조하면서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의식을 다져가고 있다. 우익 단체는 대형 차량을 동원해 시위를 벌이면서 ‘독도를 되찾자’는 대국민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6년에는 독도 주변을 조사하겠다고 측량선을 보내기도 했다. 2007년 일본 방위백서에는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기술했다. 2008년에는 일본 교사에게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했다고 가르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일본이 10여 년 동안 독도를 접수하려는 준비를 마치고 총공세를 취하려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거의 없었다. 대책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다. 독도 문제는 대응하면 일본에 말려든다는 논리만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독도에 관해서는 일본의 왜곡된 논리가 한국의 논리보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신용하 독도학회장은 “한국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세계는 ‘일본이 정당하고 한국은 무언가 약점이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화를 부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대 일본어학과 호사카 유지 교수는 “한국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만한 충분한 역사적 증빙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영어로 자료를 번역하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만 부르다가 뒤통수를 맞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지난 7월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독도 수호를 위한 촛불집회가 열렸다(위). 한 참가자는 “정부가 못 지키는 독도를 시민이 지켜내겠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독도 문제에 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 3월 역사 왜곡을 전담해온 교육부의 동북아 역사 문제 대책팀을 해체했다. 대신 교과서 개발을 담당하는 직원 한 명에게 역사 왜곡 대책 임무를 맡겼다. 교육과학기술부 한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는 독도 담당 공무원이 여러 명인 데다 학자 뺨칠 정도로 전문성을 갖추었다. 직원 혼자서 주 업무를 보면서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다음 노림수는?

이번 해설서 파동도 일본 측에서 예상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는 휴가를 떠났고, 일본 측의 절차는 오히려 빨라졌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내용의 교과서는 2012년부터 전면 배포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독도 교육은 내년부터 시작된다고 일본 NHK 방송이 보도했다. NHK는 “문부과학성에서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에 관해 북방 영토와 마찬가지로 학습할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상, 가능한 한 빨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에 대한 안이한 현실 인식이 일본에게 비집고 들어올 틈을 준 것은 분명하다. 지난 4월18일 권철현 주일 대사는 부임하자마자 “낡은 과제이면서도 현안인 독도·교과서 문제는 다소 일본 쪽에서 도발하는 경우가 있어도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드러내지 말자”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도발을 꾀하는 일본에 좋은 빌미였다. 이 기사를 두고 누리꾼은 “일본이 도발하더라도 가만히 있겠다는 것이냐” “독도를 포기한 것이냐” 따위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괴담으로 몰아세우기만 했다.

일본의 한 통신사 한국 담당 기자는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일본 핵심 인사 한두 사람 아는 것을 가지고 일본 문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뉘앙스조차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일본 시스템에 대한 무지가 자만심으로 나타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종원 일본 릿쿄 대학 교수는 “국가 정상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1주일 뒤 교과서 해설서 명기가 결정됐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외교력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용갑 전 의원은 “G8(선진 8개국) 회담에서도 일본 총리에게 악수하면서 손을 흔들었는데, 독도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현 상황에서 대통령이 좀더 진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라고 꼬집었다.

일본은 올가을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문제를 명기하고, 내년에는 독도 교육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잠수함·해군함정·전투기 등이 독도 주변에 출몰하는 등 무력 시위를 통해 영유권 분쟁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또 유엔 총회에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상정하는 것을 꾀한다.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는 다음 순서이다.

한양대 김유은 교수는 “독도 문제는 일본에 밑질 것이 없는 장사여서 도발은 계속될 것이다. 일본 고위 관료와 학자를 만나보면 일본은 독도에 관해 50년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때그때 땜질 처방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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