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제공관광객을 가장해 미얀마 양곤에 잠입해 시내 곳곳을 살핀 김영미 프리랜서 PD.

 “시위 군중이 다쳐서 병원으로 오면 치료하기 전 당국에 신고부터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시위가 극에 달했던 지난주에 응급실에는 생명을 다투는 중상자들이 많았는데 군인들이 다 데리고 갔다.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의사로서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몇몇 민가에 숨어있는 환자는 뜻있는 의사들이 몰래 방문해 치료를 하고 있다.”

지난 10월4일 목요일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한 종합병원 의사가 털어놓은 고뇌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적지 말라고 했다. 시위 시민을 돕거나 외국 기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연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미얀마 양곤에 도착한 것은 10월3일이었다. 양곤은 북한의 평양을 연상케 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완벽히 통제된 양곤에는 거대한 침묵이 흘렀다.

기자와 같은 비행기로 입국한 외신 기자 대여섯 명은 서로 연인 혹은 친구, 관광객을 가장해 움직였다. 나도 그 무리 중 하나였다. 평소 기자들이 잘 묵는 호텔을 피해서 일반 관광객이 찾는 호텔로 숙소를 잡았다.

양곤은 현지 취재를 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우선 통역과 현지 가이드를 해줄 코디네이터가 사라진 상태였다. 미얀마에는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몇몇 출중한 코디들이 있는데 벌써 그중 세 명이 외신기자들의 일을 도왔다는 이유로 군부에 연행된 상태였다. 미얀마 군부는 관광객을 가장한 기자들을 색출하는 데 혈안이었다. 어느 외신기자는 공항에서 테이프를 유출하려다 발각되는 바람에 압수당하기도 했다.

기자는 미얀마에 오기 전 방콕에서 소개받은 자우(가명)라는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았다. 자우와 나는 보안을 위해 주로 일본어로 이야기했다.

양군 시내는 고요했다. 스님들이 있어야 할 사원에는 승려보다 군인이 더 많아 보였다.  자우는 나에게 “지금 이 사람들은 기도 시위중이다. 정부와 군인들이 무서워서 겉으로는 말도 못하지만 부처님께라도 지금 정부가 물러나게 해달라고 빌고 있다”라고 설명해줬다.  양곤 시민 몇 명에게 “당신은 지난주 시위에 참여했나?”라고 물어보았으나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아니다. 시위 현장에 가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당신 기자인가?”라고 되물었다. 외국 기자에게 솔직히 말 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인터뷰에 응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듯했다.

10월7일 호텔로 돌아오는데 한 청년이 입구에 나타나 쪽지를 건네더니 사라졌다. 그 쪽지에는 ‘지금 정부는 테러리스트입니다’라는 일본말이 적혀 있었다. 나를 일본인 기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경찰, 통행금지 시간에 시위 참가자 색출

아무리 관광객을 가장해도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에서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자체가 문제가 되곤 한다. 시위의 중심에 있던 술레 파고다 사찰 주변에서는 단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 검문을 받아야 했다. 그들에게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관광객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한 외신 기자는 카메라를 뺏기기도 했다.

현재 양곤에서는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가 통행금지 시간이다. 이 시간 거리에는 경찰 사이렌 소리만 앵앵 울린다. 밤 동안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색출하는 작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시위 당시 전세계 뉴스에 나갔던 사진과 영상을 분석해 참가자를 가려낸다.

심지어 각국에 있는 미얀마 대사관이 비자 업무를 전혀 안 하고 각 나라의 주요 언론에 나간 사진과 영상 수집과 판독만 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라고 한다. 알려진 바대로 미얀마에서 인터넷은 모두 끊겼다. 국제전화도 통화 도중 두절되는 일이 흔하다. 호텔도, 각국 대사관들도 인터넷이 되는 곳이 전혀 없다.

ⓒ김영미 제공호텔 같은 공공장소에는 외국인을 감시하는 정부 요원(오른쪽)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서 볼 수 있는 미디어라고는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라는 국영 신문과 ‘MRTV’라는 국영 방송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라이트 오브 미얀마’는 영어판도 낸다. 이 신문 마지막 면에는 ‘BBC는 거짓말 방송. VOA(미국의 소리)는 속임수 방송’이라는 선전 광고가 한 면 가득 실려 있었다. 신문 1면 사진은 군부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관제 데모를 하는 장면이었다.

정권의 선전 광고는 방송 드라마 중간에도 등장한다. 요즘 미얀마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한국 드라마 〈인어 아가씨〉다. 그런데 방송 중간에 갑자기 화면이 끊기더니 군부 정권을 지지하고 외신 보도를 믿지 말라는 광고가 1분가량 나왔다. 

〈미얀마 타임스〉라는 주간지에서 일하는 기자는 좀더 솔직하게 현실을 이야기했다. “현 정부는 미쳤다. 여기서는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국가에 반역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취급을 받는다. 1988년 있었던 군중 시위 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나쁜 것 같다. 편집권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보석 사진이나 찍고 현 정부를 찬양하는 기사를 쓰는 것만 가능하다”라고 토로했다. MRTV는 연일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 수천 명이 궐기대회를 하는 기사 일색이다. 연일 단상에서 친정부적 발언과 군중 시위를 알린 외신들을 규탄하는 모습들이다. 마치 1980년대의 ‘땡전 뉴스’와 너무도 닮았다.

그러나 이런 미얀마 정부도 위성으로 날아오는 뉴스까지 막지는 못했다. 가난한 미얀마 사람들이 모두 위성 안테나를 달고 있지는 못하지만 외신 뉴스를 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외국에서 미얀마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고 유엔도 정부를 제제하려고 한다.”라는 소문을 입으로 전하고 있었다.

필자의 호텔방에 청소하러 온 미얀마 아가씨가 마침 내가 보고 있던 CNN 뉴스를 열심히 곁눈질하며 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외국에서 미얀마 사람들을 구해주려고 하나요?(Will they save Myanmar?)” 나는 무어라 대답을 해주기가 마땅치 않아서 “그들이 노력하고 있다(They are trying)”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미얀마 군부 정권은 국민의 눈과 귀를 완벽히 틀어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언론 통제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민중의 불만은 더 커질 것이다.

기자명 양곤=김영미 (프리랜서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