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지난해 2월 국제원자력기구 기술자가 이란 이스파한에 있는 ‘우라늄 전환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이란과 수십 년간 앙숙 관계로 지내던 미국이 조심스레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차관이 7월19일 스위스에서 열린 이란과 유럽연합 간의 평화협상에 참석한 데 이어 이르면 다음 달 이란 수도 테헤란에 외교 단절 30년 만에 이익대표부를 설치할 방침이다. 특히 미국은 이란이 ‘농축 우라늄 활동’을 중단하기 전에는 직접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고수해온 터라 번스 차관의 평화협상 참석은 이란에 대한 적극적 대화 메시지로도 풀이된다.

특히 최근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스라엘을 사정권 안에 둔 사하브-3 장거리 미사일을 실험 발사한 뒤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급속도로 고조되던 때와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비확산 전문가인 조셉 시린시온 씨는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 문제를 놓고 강온파 간에 대립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북한 문제에서 온건파가 승리함에 따라 이란 문제와 관련해서도 온건파의 입지가 커지고 있는 신호다”라고 풀이했다.

특히 이란 내 이익대표부 설치 결정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주효했다고 알려진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1979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발생한 미국인 인질 사태 이후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란에 이익대표부 설치를 허용하도록 부시 대통령을 맹렬히 설득했다. 라이스 장관은 1년 전 백악관에서 열린 이란 전략회의 당시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포함한 강경 노선을 주창한 체니 부통령 등 보수파를 물리치고 외교적 해결책을 관철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미국, 강경 노선 철회한 건 아니다”

제임스 루빈 전 재무장관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라이스 장관의 이익대표부 구상을 적극 두둔하고 나섰다. 그는 기고문에서 “이란 국민 대부분은 미국을 자유와 현대화의 나라로 보지만 이란 정부는 미국을 적대국으로 묘사했다. 앞으로 더 많은 이란인이 선전매체에 비쳐지는 미국이 아닌 진정한 미국을 보게 되면 자기들의 민주적 권리와 현대화를 더욱 주장할 것이다”라면서 이란 내 미국 이익대표부가 미국 이미지 제고를 위한 전초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의 화해 제스처가 기존 강경 노선 일변도에서 탈피한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180° 정책 전환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관건은 이란이 기존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느냐인데, 지금까지의 완강한 거부 태도를 감안할 때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강행해 미국의 화해 제스처를 거부할 경우 양국 관계는 언제든 충돌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만일 이란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유럽연합의 중재안을 거부한 채 핵개발 활동에 가속도를 낸다면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을 자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가 이란에 화해 제스처를 보내지만, 내심 가장 고민하는 대목은 맹방 이스라엘의 돌출 행동 여부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9월 시리아 핵시설을 전격 공습한 것처럼 이란의 나탄즈 핵시설을 공습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염려를 뒷받침하듯, 이스라엘은 지난 6월 초 지중해 상공에서 그리스와 공동으로 합동 군사훈련을 했는데, 이 기간 중 훈련에 투입된 F-15, F-16 전투기가 100대 이상에 달했다. 특히 당시 군사훈련에는 조난당한 조종사를 구하기 위한 헬기는 물론 공중 급유기까지 동원됐고, 항속거리도 1440㎞ 이상에 달했다.

ⓒReuters=Newsis지난 5월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과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오른쪽)이 예루살렘에서 만났다.
그런데 1440㎞는 이스라엘에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 핵단지로 알려진 나탄즈까지의 거리와 비슷해서, 당시 훈련이 이란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 있게 퍼졌다. 실제로 미국 국방전문가는 이스라엘의 군사훈련 목적이 잠재적으로 이란의 핵시설 단지와 장거리 미사일을 타격하는 동시에 최대 우방인 미국에 대해서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을 저지하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 단독으로 군사행동을 벌일 수밖에 없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파악했다.

북한 포용정책 효과 보자 “이란도 껴안자”

이스라엘은 지난해 12월 미국 국가정보국이 국가정보추정보고서(NIE)를 통해 핵개발 의혹을 받아오던 이란이 실은 2003년 말 핵무기 설계 작업을 중단했다고 밝힌 이후 내심 미국에 불편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스라엘은 또 “이란이 실제로 핵 개발을 하려면 최소 2년은 걸린다”라는 미국 정보당국의 판단을 못마땅해한다. 이스라엘은 지금 같은 속도라면 1년 안에 핵 개발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가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군사 모험에 나서지 않도록 설득 중이라고 알려지지만, 최악의 경우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도 이스라엘 편에 설 수밖에 없으리라고 군사전문가는 내다본다. 다만, 이스라엘도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이 성공적으로 끝나려면 미국의 지원이 필수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미국과 사전 협의는 하리라고 관측된다. 단적인 예로 이스라엘이 이란의 방대한 영공망을 파괴하려면 전투기를 수백 회 출격시켜야 하는데 1440㎞ 이상 떨어진 본토에서 발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란 주변국을 미군 기지로 활용해야 한다. 일부 군사전문가는 설령 이스라엘이 공격에 나선다 해도 대부분 지하 깊숙이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숨겨놓았다고 알려진 핵 관련 시설을 파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다.

아무튼 미국의 대이란 정책 선회와 관련해 워싱턴 외교가는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으로 나름 짭짤한 재미를 본 부시 대통령이 임기를 겨우 몇 달 남겨놓은 상황에서 중동 최대의 골칫거리인 이란에 대해서도 군사 대응이 아닌 외교 해법을 취함으로써 일종의 ‘외교적 유산’을 남기려는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한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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