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6월 주미 한국대사관용으로 비밀리에 작성된 22쪽짜리 특별 보고서가 유출되는 소동이 있었다. 그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크리스 넬슨. 정보지 〈넬슨 리포트〉를 쓰는 정보통이었다.
〈넬슨 리포트〉는 미국 정부가 대아시아 외교통상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려면 꼭 참고해야 하는 정보지다. 지난 1980년대 중반 첫선을 보인 이 보고서는 연방 정부는 물론 의회와 학계·언론계·싱크 탱크 곳곳에 포진한 1000명 이상의 단단한 취재원이 보내주는 정보를 취합한 것이다. 종종 세계적 특종도 낚아낸다. 월 구독료가 1000달러(약 90만원)에 달해도 아시아 외교 종사자에게는 ‘필독서’이 〈넬슨 리포트〉의 주인공 크리스 넬슨을 직접 만났다.

ⓒ권웅크리스 넬슨(위)은 2005년 6월 22쪽짜리 주미 한국 대사관용 특별보고서 유출 사거능로 유명세를 치렀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기자 생활을 하다가 1970년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일을 하게 됐다. 나중에는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의 전문요원으로 적을 두게 됐다. 여기서 ‘아시아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1980년대 중반 의회에서 나와 일본인이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넬슨 리포트〉의 효시가 되는 통상 전문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그러다 1997년 새뮤얼스 인터내셔널에 입사해 내 이름을 걸고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

〈넬슨 리포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내게는 연방정부와 의회, 학계, 언론 등 곳곳에 1000명 이상의 ‘충실한 독자’(Loyal Reader)가 포진해 있는데 이들이 바로 나의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다. 보통 오후 4시쯤에 보고서 작성에 들어가 6시30분쯤 독자에게 보낸다. 보고서가 나간 뒤 보통 250통 정도의 이메일을 받지만 바쁜 날에는 그 두 배쯤 온다.

〈넬슨 리포트〉가 자랑할 만한 세계적 특종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유명한 ‘특종’이라면 과거 하워드 베이커가 주일 대사로 간다는 것이었는데 국무부 내부 취재원에게서 귀띔받았다. 지금도 일본 기자들을 만나면 왕년의 베이커 특종 건을 얘기한다. 또한 몇 년 전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 대사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로 부임할 것이라는 뉴스도 내가 제일 먼저 터뜨렸는데 당시 한국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다.

두고두고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세계적인 특종을 꼽으라면 두 가지다. 취재원 개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추하게 한 사건이기도 하다. 하나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건이다. 1991년 걸프전 직전 과거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에서 근무하던 ‘충실한 독자’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비밀 정보기관 모사드와 끈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며칠 전 이 친구와 얘기를 하는데 내게 침공 예정일을 귀띔해준 것이다. 이걸 곧바로 〈넬슨 리포트〉로 알렸는데 결과적으로 침공일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또 다른 특종은 좀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당시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월요일에 출근해 TV를 보니 보리스 옐친이 탱크 위에 올라가서 카메라를 앞에 두고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내 느낌으론 진짜 반옐친 쿠데타는 아닌가 싶어 방금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국무부의 한 ‘충실한 독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자기도 이제 막 러시아 출신의 전직 장관하고 얘기를 마친 참이라면서, 그 사람이 “소련 군부가 옐친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건 조크다. 수요일이면 종칠 것이다”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전문가 몇몇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들도 동감을 표하며 옐친에게 좋은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난 그날 밤 11시쯤 ‘전문가들, 반옐친 쿠데타는 수요일이면 종칠 것을 예견’이라는 제목의 〈넬슨 리포트〉를 급히 타전했다. 당시 언론은 ‘이런, 쿠데타가 일어나 소련군대가 다시 몰려올 것’이라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면서도 막상 며칠 후 벌어질 일에 대해선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때라 〈넬슨 리포트〉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내 보스는 이 일로 당시 일본 총리로부터 고맙다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약 2년 전 주미 한국 대사관용으로 작성한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들’이라는 비밀 보고서가 누출돼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
당시 특별 보고서 초안을 다른 파일로 옮기다 깜빡 이메일 수신란을 잘못 치는 바람에 수 백명의 〈넬슨 리포트〉 수신자 전부에게 보고서가 나가버렸다. 그 보고서는 완성된 것이 아니었는데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내가 한 분석은 거의 다 정확한 것으로 그 중엔 상당히 독창적인 것도 있다. 보고서는 아주 진지한 목적으로 작성됐는데 그 핵심은 워싱턴에는 차세대의 확실한 한국 전문가 그룹이 없다는 것이었다. 의도가 좋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고서 유출이라는 실수를 범한 데 대해 응당 ‘죗값’을 받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일이 터진 뒤에도 기존 구독자들은 물론 날 도와준 ‘충실한 독자’도 떨어져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중엔 ‘충실한 독자’라는 신분이 노출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날 버리지 않은 것은 아마 그들도 오랜 세월 내가 이 작업을 해왔으며 또한 그들이 궁금해하는 현안을 제대로 보려고 하는 진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넬슨 리포트의 가장 큰 강점이라면.
많은 뉴스를 제일 먼저 터뜨린다는 점이다. 대개 인쇄 매체보다 12~24시간 앞서간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워싱턴 일원은 내가 훤히 꿰뚫고 있는 바닥인 데다 취재원 모두가 영어를 쓰고 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 워싱턴 주재 외국 언론보다 뉴스를 찾아내기가 쉽다. 나는 국무부와 국방부 그리고 여타 수도권 내의 인사들로부터 상당한 ‘누설 정보’를 건네 받는다. 그들은 어떤 이슈나 해석 또는 사실에 관해 나를 통해 누설하는 게 유용하다고 본다. 물론 내 보고서에서 그들의 정체를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의회 쪽은 항상 내부 가십에 굶주려 있어 내겐 끊임없는 취재원이기도 하다. 의회에서 반평생 이상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도 나를 ‘자기 사람’으로 보며, 일반 기자들과 다르게 나를 대한다.

〈넬슨 리포트〉의 성공 비결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술적으로 이런 보고서를 내기에 적합한 시기를 타고났다. 여기에 내 오랜 경험과 운도 따랐다. 1980년대 중반 이걸 처음 시작할 때는 일일이 타자기로 치고, 필요한 정보를 가위로 오려 테이프를 붙이는 식으로 일일이 수작업에 의존해야 했고, 그렇게 만든 정보지를 팩스를 통해 한 번에 15명에게만 보낼 수밖에 없는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이메일로 정보를 교환하고 전달해 일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게다가 이 일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늘 나를 도와주는 ‘충실한 독자’도 숱하게 생겨났다. 언제든 이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한다. 보고서가 친밀감을 주는 대화체로 돼 있는 것도 구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요인이다.

북한 핵협상이 커다란 진전을 이루고 있는데 현재 부시 행정부내 이와 관련한 기류는 어떤가?
라이스 장관과 부시 대통령이 미측 협상수석 대표인 힐 국무부 차관보를 통해 북한과 협상을 일궈내려 한다는 점, 또 대북강경파인 체니 부통령 일파가 밀려났다는 점에선 100%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체니는 그나마 있는 영향력을 이란에 집중하고 있다. 6자회담에 관한 한 부시는 개인적으로 완전히 몰입해 있으며,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에게도 그같은 입장을 전했다. 힐은 행정부내에 6자회담의 “성공”에 대한 개념정의의 기준을 낮추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따라서 북한이 설령 부시 행정부 아래서 완전한 비핵화 과정을 이루지 못해도 핵폭탄 추가생산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게 내 관측이다.

다만 남한이 북한에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고 줄 경우 일을 망치고, 6자회담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이게 지금 미국쪽의 큰 우려다. 한국 정부도 이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했던 것이고, 버시바우 주한미국대사가 연내 종전선언 불가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미 무역자유협정이 연내 통과될 것 같은가?
천만에 말씀이다. 부시 행정부의 계획에도 들어가 있지 않다. 최근에 나온 성명들은 대개 남미 자유무역협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한미무역자유협정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에 로비하기 위해선 상당한 정도의 정치적 노력과 업계의 지원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워싱턴 기류는 내년 2월~3월 사이에 한미자유무역협정 투표를 실시하되 4월을 넘기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후엔 미국도 선거시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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