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2월13일 파리에서 프랑스 공영방송 직원이 사르코지 대통령의 광고 폐지 정책은 언론 탄압이라며 시위하고 있다.
정권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는 풍경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시사IN〉 제41호 기사 참조)에 이어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도 이 유행에 동참했다. 그는 공영방송의 광고 폐지를 주창하다가 최근에는 사장을 직접 임명하겠다고 말해 언론계를 경악시켰다.

지난 1월8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공영방송 ‘프랑스 텔레비지옹’에서 광고를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광고를 폐지한다는 건, 얼핏 방송이 자본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실현 가능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텔레비지옹 운영자금의 약 70%는 가구별 연간 116유로인 시청료로 충당된다. 하지만 법에 의해 다른 수익사업이 금지돼 있어 나머지 30% 정도의 운영자금은 광고수익에서 충당한다. 이 30%에 해당하는 8억 유로를 어디에서 구할 것인지에 광고폐지안의 실현 가능성이 달려 있었다.

프랑스 정부 측은 ‘광고 없는 공영방송의 미래’라는 위원회를 발족하고 4개월간의 조사 끝에 6월25일 법안 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우선 저녁 8시 이후 광고가 금지되며, 2011년 12월1일부터 광고가 전면 금지된다.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전화와 인터넷 사용에 세금을 징수하고 상업방송의 광고에 추가부담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 세수를 확보하면서까지 프랑스 정부가 광고를 폐지하려는 것은, 국가가 공영방송을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민영방송이 광고 등의 수익사업으로 경영되는 것과 반대로, 공영방송은 전적으로 세금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사르코지의 광고 폐지 주장에 숨은 뜻

프랑스에서도 자본의 이해관계가 방송에 미치는 영향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광고 폐지 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프랑스 방송위원회 미셸 보용 위원장은 “광고 폐지를 통해 방송이 광고의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사르코지의 의도를 순수하게 봐줄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그가 보인 태도는 광고 폐지의 진짜 목적을 의심케 했다. 프랑스 정부가 광고폐지안과 더불어 공영방송사 사장을 정부가 임명토록 하는 법안을 발표한 것이다.

ⓒReuters=Newsis6월25일 사르코지 대통령이 공영방송 광고 폐지 정책을 설명하는 모습.
공영방송 프랑스 텔레비지옹은 프랑스 2, 프랑스 3, 프랑스 4, 프랑스 5번 채널과 해외 프랑스령에서 방영하는 ‘프랑스 O’ 채널을 운영 중이다. 현재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사장은 방송위원회에서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밝힌 개정 법안에 따르면 대통령이 프랑스 텔레비지옹의 사장을 직접 임명한 뒤 방송위원회와 의회의 추인을 받는 것으로 바뀐다.

프랑스 2, 프랑스 3 채널의 기자협회는 일간지 리베라시옹 7월1일자에 ‘광고 없이, 그러나 복종하는’이라는 이름의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공영방송 운영 논리를 반박했다. 그들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 텔레비지옹을, 마치 정부가 사장을 임명하는 다른 공기업과 동일하게 여기고 있다”라며 이와 달리 “프랑스 텔레비지옹은 이미지·생각·의견을 전달함으로써 민주적 논의를 제공하는 생산자”라고 공영방송의 특수성을 역설했다. 이 성명서는 “정부의 프랑스 텔레비지옹 사장 임명은 방송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훼손할 것이다”라고 끝을 맺었다.

사르코지에 의해 당장 교체 대상으로 지목된 현 프랑스 텔레비지옹 사장 패트릭 드 카롤리 역시 정부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7월2일 라디오 방송 RTL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 텔레비지옹에 대해 잘못되고 멍청한 의견을 지니고 있다”라고 날을 세웠다. 카롤리 사장의 임기는 2010년까지이지만, 새로운 방송법안이 통과되면 8월 중순께 물러나야 한다.
 
언론·정치권, ‘언론법 개정안’ 맹비난

이 사태의 심판관이 될 프랑스 국민의 생각은 어떨까. 7월6일 ‘르 파리지앙’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시민 71%가 대통령의 프랑스 텔레비지옹 사장 임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런 반대 여론을 주도한 곳은 프랑스 언론계와 정치권이었다. 정부안에 반대하는 여러 신문 가운데 특히 리베라시옹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원색으로 비난한다.

의회에서는 좌파 및 중도 세력이 연합해 정부를 비판한다. 7월8일 열린 언론법 개정안 심의에서 중도 성향인 ‘민주주의 운동’(MoDem)의 대표 프랑수아 배루는 “국가권력과 자본의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언론이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법이 보장해야 한다”라며 법안의 수정을 요구했다. 사회당의 크리스티앙 폴 의원은 “러시아의 푸틴과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가 부러워할 프랑스 모델이다”라며 정부안을 비꼬았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부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이 “방송위원회와 의회의 동의를 받는 등 견제 장치가 있으므로 민주적인 절차라고 볼 수 있다”라며 개정안을 옹호했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돌아보면 사르코지의 언론관을 신뢰하기는 힘들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1986년 통신자유화 법안 제정을 주도하면서 당시 프랑스 1채널을 민영화한 바 있다. 1번 채널은 1986년 당시 건설 재벌이던 브이그 사에 매각되었고 브이그 그룹은 이를 발판으로 미디어 산업에 진출했다. 이번 공영방송 광고 폐지 법안도 결국 민영방송에 광고를 몰아줘서 사르코지 대통령 친구들이 사장으로 있는 민영방송사에 이익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인다. 프랑스와 한국 공영방송이 시장과 정권이라는 양날의 칼에 시달리고 있다.

기자명 파리·표광민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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