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오른쪽)은 부정 선거로 정권을 연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난 6월30일 미국 미시간 대학의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가 이끄는 사회조사연구팀은 ‘세계가치조사(WVS)’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 각국 국민의  행복지수(HI)를 매겨 비교한 것이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52개국 가운데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덴마크였다. 반면 ‘가장 불행한 나라’는 아프리카 남부의 공화국 짐바브웨였다.
이 결과는 2006년까지의 조사 내용을 분석해 나온 것이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올해는 상황이 더 나쁘다. 대통령 선거 부정을 둘러싸고 폭력이 난무하면서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3월29일 1차 대통령 선거부터 6월27일 결선 투표 때까지 벌어진 폭력 사태로 사망한 사람이 80명이 넘고 수천명이 부상했으며 20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짐바브웨 사태는 (아시아권에서는 별 관심이 없지만) 최근 국제 뉴스 가운데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로버트 무가베 현 대통령은 1980년 이래 28년간 장기 집권 중이다. 3월29일에는 대통령 선거 1차 투표뿐만 아니라 총선도 동시에 치러졌다. 4월2일 선거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제1야당 MDC가 96석을 얻은 반면 여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연맹애국전선(ZANU-PF)은 94석을 얻는 데 그쳤다. 다음 날인 4월3일 짐바브웨 정부는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야당 정치 지도자와 기자를 체포했다. 1차 대선 결과는 무려 5주가 지나서야 발표됐는데, 5월2일 선관위 발표에 따르면 무가베 현 대통령은 43.2%를 얻어 야당 후보 츠방기라이(47.9%)에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 득표자가 없었기 때문에 결선투표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야당 측은 이미 1차 투표에서 츠방기라이 후보가 50.3%를 얻었으므로 결선투표를 할 필요가 없다며 선관위 발표를 부정했다.

결선투표 강행을 두고 곳곳에서 반대 시위와 충돌이 벌어졌다. 폭력은 주로 무가베 대통령 지지자가 츠방기라이 지지자를 공격하면서 발생했다. 무가베 대통령 선거운동본부는 전국에 900여 곳이 넘는 지휘 캠프를 꾸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선거운동 캠프라기보다는 퇴역 군인과 청년 당원을 내세운 공안 조직에 가까웠다.

무가베 대통령 지지자 캠프에서는 동료 당원을 ‘동지’라고 불렀다. 이 ‘동지’들은 야당 지지자를 단순 구타하는 걸 넘어 성폭력까지 자행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7월7일자는 21세 짐바브웨 여성 아시아투의 사례를 통해 이른바 ‘동지’들이 젊은 여성을 성노예로 삼는다고 폭로했다. ‘짐바브웨 인권의사협회’는 6월20일까지 사망자가 85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다른 시민단체는 6월27일까지 사망자가 80명이 넘고 100여 명이 실종됐다고 말했다. 짐바브웨 정부는 야당 당원이 여당 당원으로 위장한 채 시민을 공격한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12년째 사는 동포 최광세씨는 〈시사I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현지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선거운동을 한다면서 무가베 지지자들과 정부 당국이 무가베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와 머플러·스카프를 나눠 줬다. 이런 스카프 등을 두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다가는 무가베 지지자에게 잡혀 곤혹을 치르기 일쑤다.”
 

 

폭력 사태가 이어지자 야당 후보 츠방기라이 측은 결선투표 보이콧을 선언했다. 츠방기라이 는 수도 하라레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7월1일 다시 다른 곳으로 피했다. 아무튼 6월27일 결선투표는 강행됐다. 결과는 무가베가 85.5%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왔다. 무가베 대통령은 당선을 선언하며 6년 임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기문 “단지 짐바브웨만의 문제 아니다”

현지인 10여 명을 고용해 사업을 하는 교포 최씨는 “결선투표를 앞두고 누군가가 밤에 우리 직원을 집합시켜놓고 선거 교육을 시키는 모습을 봤다”라고 말했다.
7월5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결선투표 때 부정선거가 벌어지는 모습이 담긴 몰래카메라 동영상을 공개했다. 공무원(교도관)이 투표를 하는 곳에 감독관이 서서 일일이 투표 내용을 확인하고 검열하는 모습이었다.
짐바브웨 야당 지도자들은 국제 사회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과거 짐바브웨를 식민통치했던 영국을 중심으로 무가베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영국은 이미 지난해 12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유럽-아프리카 회의 때부터 짐바브웨 정부와 각을 세웠다. 영국 브라운 총리는 무가베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불참했다. 짐바브웨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는 크리켓인데, 트웬티20월드컵대회가 올해 영국에서 열리자 무가베 정부는 참가를 포기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7월4일 “유럽연합은 할 수 있는 한 짐바브웨 정부에 모든 제재 조처를 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U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과 측근의 자산을 동결하고 EU 역내 여행을 금지시켰다. 미국도 짐바브웨 고위직 170여 명의 여행 금지와 금융자산 동결을 시행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짐바브웨 관리 11명의 여행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결의안 초안을 발표했다. 7쪽에 달하는 제재 조처안 초안에는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월27일 치러진 짐바브웨 결선투표를 인정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하라레 지역 군인들에 대한 무기 판매 등의 행위를 중단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7월12일 방영된 CNN 인터뷰에서 짐바브웨 사태에 대해 “이는 전반적으로 아프리카의 신뢰도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단지 짐바브웨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안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EPA야당 지도자 츠방기라이(위)는 1차 대선 투표 때 자기가 과반 득표를 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짐바브웨 정부는 7월10일 유엔 주재 대표를 통해 안보리에 보낸 서한에서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 등 지도부에 제재 조처가 내려질 경우 내전이 시작되면서 짐바브웨가 제2의 소말리아가 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놨다. 제재 결의안은 당분간 표결이 미뤄진 상태다.
7월7일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회담 때도 짐바브웨 사태가 주요 의제였다. G8 정상들은 짐바브웨 제재 결의안을 주장했지만, 러시아와 아프리카연합(AU)의 반대로 무산됐다.

아프리카연합, 연립정부 구성 권고

2002년 출범한 AU는 아프리카 역내 53개국이 모인 범국가 기구다(오른쪽 상자기사 참조). AU는 인종학살이나 전쟁 범죄가 벌어지면 평화유지군을 보낼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짐바브웨 사태와 관련해 AU의 행보는 무력하기만 하다. 6월30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 정상회의에 짐바브웨 무가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서 자신의 정당성을 열변했다. 케냐와 잠비아는 짐바브웨에 대한 제재를 주장했지만, 아프리카연합에 영향력이 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아무런 제재 조처 없이 ‘연립정부 구성’을 권고하는 선에서 끝났다. 야당 츠방기라이 대표는 연립정부 구성에 반대했다.

최근 2년간 아프리카 분쟁이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양상을 살펴보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경향이 있다. 소말리아 내전에서 시작해 수단 다르푸르 분쟁이 2007년 가장 이목을 끈 사건이었다면, 올해는 케냐 선거 폭력 사태(1월)에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외국인 혐오 폭동(5월)과 짐바브웨 사태가 뒤를 잇는다. 역설적으로 보면 아프리카가 주기적으로 세계 언론에서 주목되는 것은 과거보다 나아진 점인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비극을 낳았던 르완다 사태 때는 국제 사회의 무관심으로 학살이 방치됐다. 10년 전만 해도 너무나 당연했던 독재 정부의 부정선거 풍경이, 지금은 국제 문제로 비화한다는 점이 어쩌면 아프리카 민주주의 발전의 증거일 수도 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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