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내 남편이 죽는 영상이 유튜브에 떠 있다”


인질극 범인도 고프로 카메라를 사용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허름한 건물에서 줄지어 나온다.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건물 창문으로 불길과 섬광이 번뜩인다. 화면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가운데, 누군가 “빨리 빨리 움직여!”라고 외친다. 작전에 참여한 군인의 목소리일 터이다. 화면은 빠르게 건물 안으로 진입해서 어떤 방 내부에 이른다. 벽에 이슬람국가(IS)의 깃발이 걸려 있다. 방의 다른 쪽으로 화면이 돌아가더니,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몸수색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펙터클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그러나 영화가 아니다. 지난 9월22일, 이라크 북부 도시 키르쿠크 부근 하위자에서 7㎞ 떨어진 어느 마을에서 수행된 실제 작전 상황이다. 이날 작전은 새벽 2시에 개시되었다. 블랙호크 등 침투용 헬기 12대에 나눠 탄 군인들이 IS의 인질 수용소로 알려진 건물에 착륙했다. 미국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쿠르드 자치정부(KRG) 산하 대테러 부대 CDT 소속 병사들이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IS가 이날 인질들을 모두 살해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군에 합동 구출작전을 요청했다. 실제로 쿠르드족과 이라크 군경 수십명이 인질로 잡혀 있었다. 미군은 지상군을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지만, 인질 구출작전에는 종종 특수부대를 투입해왔다. 이날 미국·쿠르드 연합군은 작전 개시 2시간여 동안 인질 69명을 구출했다.

ⓒ쿠르드자치정부 제공쿠르드 자치정부 대테러 부대 CDT와 미국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가 IS에 붙잡힌 인질을 구하는 장면. 이 영상은 미군이 ‘헬멧캠’으로 촬영한 것이다.

1991년 CNN의 걸프전 생중계가 효시

이 동영상은 모두 4분 정도 길이다. 작전에 참여한 특수부대 요원의 헬멧에 장착된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헬멧캠’으로 불린다. 요즘 미군들은 특수작전을 수행할 때 헬멧캠으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 덕분에 비밀스럽고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군의 특수작전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헬멧캠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2011년 5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벌어진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이었다.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 앉아 실시간으로 작전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현장에 투입된 미군 병사의 헬멧캠 영상이 워싱턴으로 전송되었던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이 사살되는 장면까지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2011년, 이라크 사마라에서 벌어진 황금사원 전투도 이것으로 촬영되었다. 헬멧캠을 쓴 미군 특수요원이 총을 쏘며 사원 안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탄피가 날아가고 적이 사살되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나온다.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뒤를 잘 봐!” “앞으로 진격한다”라고 지시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이렇게 안방에서 전쟁 현장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최초의 사건은 1991년 발발한 1차 걸프전이다. 뉴스 전문 채널 CNN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도 걸프전을 생생하게 중계했기 때문이다. 걸프전은 미국의 첨단 무기가 총동원된 전쟁이었다. 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엇 미사일,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 탱크킬러로 불리는 A10 폭격기, 지상전의 저승사자 아파치 헬기 등 막강한 화력의 첨단무기가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졌다. 세계인들은 이런 영상을 통해 안방에서 전쟁을 실시간으로 간접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걸프전은 그 참상과 역사적 의미보다 흥미로운(?) 전쟁 영상으로 기억된다.

이후 이런 전쟁 체험물이 더욱 다양해지고 사실적으로 발전한다. 전투기에 카메라를 장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전투기 조종사와 같은 시점에서 미사일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는 장면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2월, 유튜브에는 ‘미군 전투기가 이라크의 IS 대원 4981명을 죽였다’는 제목으로 15분2초 분량의 영상이 올라왔다. ‘알리 하이더’라는 아랍권 누리꾼이 처음 올린 이 영상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인 만큼 피폭 장소가 이라크의 IS 본거지라는 것 이외의 정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폭격 장면은 매우 생생하다. 흑백 화면 정중앙 목표물의 십자 조준점 주변으로 IS 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 하얗게 나타난다. 이윽고 이들이 밀집한 지점으로 미사일이 발사된다. 달아나거나 공포에 질린 듯 엎드려 땅을 기는 IS 대원들을 쫓아다니며 사격한다. 부상자를 확인 사살하는 장면도 나온다. 조준용 십자 표시가 폭사한 시신들 위를 훑는 가운데 조종사들의 교신 내용과 총격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번에 쏠까?” “녀석들이 저쪽에 우르르 몰려 있군!” 마치 PC방에서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며 나누는 대화 같다.

조종사들 “내가 맞혔다” 게임하듯 환호

실제로 청소년들이 즐기는 게임 중에는 〈콜드 오브 듀티〉 〈고스트 리콘〉 〈오퍼레이션 플래시 포인트〉 따위 전쟁을 모델로 만든 것들이 많다. 스토리도 영화만큼 탄탄하다. 짐작하건대, 이런 전쟁 게임은 헬멧캠이나 전투기 장착용 카메라 영상을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특히 걸프전을 모델로 제작된 게임의 경우, 당시 CNN에 방영된 실제 전투 장면을 쏙 빼닮았다.

2010년에는 고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2007년 7월12일 바그다드에서 미군 헬기가 로이터 기자 등 10여 명을 공격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17분짜리 영상에는 미군 아파치 헬기 조종사들이 로이터 기자 누르엘딘(당시 22세)과 로이터 직원 사이드 스마흐(당시 40세) 등 모두 12명을 사살하는 과정과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조종사들은 로이터 기자의 카메라를 무기로 판단해서 사격을 요청한다. 목표물들이 총격으로 쓰러지자 “내가 맞혔다”며 마치 게임이라도 하듯 즐거워한다. 심지어 부상자들을 후송하려는 밴이 다가오자 또다시 사격을 가한다. 이로 인해 밴에 탔던 어린이 2명이 중상을 입었다.

현재 이라크 바그다드에 거주하는 스마흐의 아내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영상을 보지 못한다. 그녀는 “내 남편이 죽어가는 영상이 유튜브에 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하다. 사람들은 그 영상을 보며 실제 사람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실감할까?”라고 반문했다. 중세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는 “겪어보지 못한 자들에게 전쟁은 달콤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헬멧캠과 전투기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은 게임이나 영화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실제 사건을 안방에서 가상의 영화나 게임을 즐기듯 체험할 수 있는 지금은 너무나 잔인한 시대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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