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춘씨는 올해 일흔다섯 살이다. 스물두 살이던 아들 원근을 잃고 31년이 지났다. 군에 간 아들은 첫 휴가를 하루 앞두고 숨졌다. 군 수사기관은 아들 원근이 M16 소총으로 자신의 오른쪽 가슴과 왼쪽 가슴을 쏜 뒤, 다시 오른쪽 눈썹 위에 총구를 놓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고 했다.

 

ⓒ시사IN 신선영
2002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허 일병이 술 취한 선임 중사의 총에 맞아 타살된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같은 해 특별조사단을 꾸려 자살로 결과를 뒤집었다. 2004년 2기 의문사위는 다시 타살이라고 발표했다.

2007년 허 일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타살, 2심은 자살이라 봤다. 9월10일 대법원은 ‘타살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자살로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결했다. 국가의 배상책임은 기각하고 부실 수사를 한 군 당국의 책임만 인정했다.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 사망 사건은 미완으로 남게 됐다.

아들을 잃은 뒤 생업인 양식업도 뒤로하고 서울과 진도를 뛰어다닌 허씨는 “잘못된 판결이다. 국제 절차를 거쳐서라도 반드시 자살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법의학자를 믿을 수 없어서 법의학을 독학한 허씨는 총 자국이 난 아들의 맨몸 사진을 수없이 들여다봤다. 군에 검시관 제도를 도입해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는 게 머리가 하얗게 센 허씨의 마지막 소원이다. 2003년 허씨는 다른 의문사 유가족 13명과 함께 법의학 발전을 위해 장기와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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