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라이스 장관(왼쪽)은 핵 폐기와 관련한 선물이 있어야 방북이 가능하다는 견해이고, 김정일 위원장(오른쪽)은 일단 오면 선물을 주겠다는 생각이다.
6자 회담 북한 측 수석대표 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부장의 품에는 세 가지 미션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이미 6자 회담에서 크게 문제가 됐던 것처럼, 경협 및 에너지 지원 문제를 반드시 매듭지으라는 것, 두 번째는 라이스 장관 방북 문제에 대한 방침을 전하라는 것, 마지막으로는 남북 문제에 대한 것이다.
7월4일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핵 불능화를 80% 이상 완료했고 핵 신고까지 마친 북한이 그에 상응하는 주변국의 경협 및 에너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2·13 합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6자 회담을 전후해 경협과 에너지 지원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온 데는 북한 핵 속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부시 행정부와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부담스러운 국제 행사를 앞둔 중국 지도부 간에는 처음부터 북한 핵 해결의 속도에 대한 견해가 달랐다. 부시 정부는 매우 속도감 있게 진행하기를 원해왔다. 가급적 8월8일 베이징 올림픽 이전에 북한과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끝내고 싶다는 게 바로 올해 초 미국 협상팀의 기본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모든 일정을 올림픽 이후로 미루고 싶어했다. 올림픽 성공이라는 부담 때문에 중국이 뭐든지 양보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양국의 수 싸움은 지난 4월 이래 일진일퇴를 거듭해왔다. 미국이 50만t 식량지원 카드를 꺼내들면서 한때 주도권을 쥐는 듯했으나 중국은 곧바로 시진핑 방북 카드로 반격을 가했다. 시진핑의 방북은 북한이 식량 및 경협과 관련한 중국의 막대한 지원 약속을 받은 사실 외에도 김정일 위원장과 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 간에 인간적 유대를 쌓았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지난 몇 년간 간곡하게 초청했어도, 여러 가지 조건만 내걸며 까다롭게 굴어온 라이스 장관과 비교할 때, 선물 보따리를 들고 제 발로 찾아온 시진핑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일 터였다.

김정일-시진핑의 인간적 유대가 관건

바로 시진핑 방북을 기점으로 이번 6자 회담, 그리고 북·미 관계에 대한 북한 방침이 정해졌고, 그것이 바로 김계관에게 과제로 주어졌다. 바로 경협과 에너지 지원 문제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역시 속도 문제다. 중국은 북한 측에 여러 복합적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올림픽에 김 위원장이 참석해 ‘베이징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좋다. 그러나 올림픽 전에 라이스가 평양을 간다든지, 중국을 배제한 채 북한과 미국이 너무 진도가 나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림픽만 끝나면 중국이 많은 것을 줄 테니,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얘기이다. 물론 북한이 중국 하라는 대로 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대규모 지원을 해준다는데 무시하기도 어렵다.

ⓒ연합뉴스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상(오른쪽)은 이번 6자 회담에서 경협 및 에너지 지원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으라는 따위 과제를 받았다고 한다. 생각대로 북·미 관계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힐 차관보(왼쪽)의 속이 다시 시커멓게 타들어간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난처해진 북한을 엉뚱하게도 일본이 도와준 꼴이 됐다. 납치 문제 해결 없이 테러지원국 해제는 곤란하다는 일본의 불만을 배려해 미국이 북한과 회담까지 주선해주었건만, 일본은 여전히 자국에 할당된 에너지 지원 의무를 거부해 북한에 빌미를 줬다. 일본은 물론 납치 문제 해결 전에는 지원이 어렵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에너지 지원으로 북한 핵문제가 급물살을 타면, 종국에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꼴을 두 눈 뜨고는 못 보겠다는 생각이 밑에 깔린 듯하다. 그러나 중국 역시, 나쁠 게 없다. 올림픽 개막식 이벤트가 된다면야 금상첨화이지만, 어차피 처음부터 기대감이 높지는 않았다. 그보다 일본이 악역을 맡아준 덕에 미국의 발목을 붙잡아둘 수 있다면 나쁠 게 없다는 것이다. 원래 예상하기로는 지난 6월27일 냉각탑 폭파 쇼 바로 다음 주에 6자 회담이 열렸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느닷없이 일본의 에너지 지원 불참을 비난하며 버티는 바람에 열리지 못했고, 이번 회담에서까지 계속 쟁점 사항이 된 것이다.

미국의 발목 잡은 일본의 에너지 지원 불참

힐 차관보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데, 라이스 장관 문제 역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김계관의 두 번째 과제가 바로 이 문제와 직결돼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할 만큼 했다. 올 테면 오고 싫으면 말라”는 투다. 김계관은 이번에 라이스가 올 건지 말 건지 확실하게 담판짓고 오라는 미션을 받았다고 한다. 핵 폐기와 관련해 가시적인 선물이 있어야 갈 수 있다는 라이스와 무조건 오면 해결해주겠다는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서 힐 차관보의 처지가 참으로 난처하다. 또 당장이라도 오라는 북한과 8월11일 테러지원국 해제 이전까지 핵 신고에 대한 검증 체제를 마련하고 그 뒤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열려야 방북 일정을 잡을 수 있다는 미국 방침 역시 여전히 거리가 있다. 힐 차관보는 북·미 관계가 한 단락을 짓기 위해서라도 라이스 방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김계관에게 주어진 이번 과제를 통해 북한이 더 이상 저자세를 취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김계관의 세 번째 과제는 남북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 북핵 협상 대표로 데뷔한 김숙 한반도 평화대사에 대한 평은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뭔가 통할 것 같은 인물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남북 관계는 김계관 담당이 아니다. 김숙 대사를 만났을 때 남북 관계는 “나의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이것이 그의 세 번째 미션이었다고 한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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