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 5월 초 한·중·일 3국을 방문해 6자 회담 체제를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제안한 네그로폰테 미국 국무부 부장관.
앞으로 2년 뒤면 한·일 병탄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8월29일을 국치일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과거사에만 매달릴 수는 없다. 몇 차례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자고 약속했다. 지난 2월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후쿠다 총리가 방한하고 5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답방해 양국 관계를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재규정하고 ‘한·일 신시대’를 개척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합의는 번번이 독도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이처럼 양국 관계가 굴곡을 겪는 중에도 한·일 양국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전략가 사이에서 나온다. 미국의 세계 패권이 점차 쇠퇴하고 중국이 떠오르는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미국의 영향력을 대신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전략적으로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간의 전략적 협력은 과연 가능한가. 최근 한·중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하기로 했지만 상징적인 의미 외에 실효성은 없다. 이에 비해 한·일 양국은 비록 ‘성숙한 동반자 관계’에 머물러 있지만, ‘민주주의’ ‘시장경제’ ‘대미 동맹 관계’ 등 가장 기본적인 가치와 중요한 체제를 공유하고 있어 이를 통해 서로의 가치관과 국가 목표가 접근해 있다. 따라서 한·일 간 전략적 협력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는 한·일 양국의 전략적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 전략적 협력의 필요조건으로, 진정한 역사 청산과 영토 분쟁이 조기에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독도 문제가 풀리는 것만으로 한·일 관계가 전략적 협력 관계로 발전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한·일 양국의 국민적 협력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한·일 전략적 협력의 충분조건이다.

ⓒ해양경찰펑 제공한국 해경의 5000t급 구난함 삼봉호가 독도 주변을 경비하는 모습.
광복 이후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나 영토 문제가 잠재 현안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영토 문제에 관해 한·일 양국 간의 시각에 근본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영토 문제를 과거사 문제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주권 확립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반면 일본에서는 영토 문제를 이웃나라 사이에 흔히 존재할 수 있는 외교 문제의 하나로 인식한다. 지난 4월21일 한·일 정상회담에 “미래지향 한·일 관계”를 약속했을 때, 한국에서는 일본이 더 이상 독도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일본에서는 영유권 문제를 별개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영유권 분쟁은 식민지 지배의 처리 과정이나 전쟁 뒤 점령지의 처리 과정에서 비롯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유권 분쟁에서 주로 역사적 근원이 주요한 쟁점이 되기 때문에 결국은 역사 논쟁과 맞물린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 문제에 관한 인식 자체가 한국에서는 확장주의 야심으로 비친다.

독도 문제 해결 위한 네 가지 시나리오

한·일 간의 전략적 협력을 가로막는 독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외교 마찰 속에 한국의 실효적 지배 계속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다자간 합의에 의한 포괄적 해결 △한·일 양자 합의에 의한 해결 등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네 가지 가운데 가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행을 거부하는 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영유권 문제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독도 문제를 국제 재판에 의해 해결하려는 일본 측 요구를 거부한다.

ⓒ뉴시스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침탈행위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 회원.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양국이 대립·갈등하면서 한국의 실효적 지배가 지속되는 방안이다. 이 경우 국력이 우세한 일본이 다양한 압박 수단을 통해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무효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이러한 일본 측의 압박에 맞서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반일 전선을 구축하는 등 대응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이처럼 독도 문제를 둘러싼 마찰이 지속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제일 높지만, 21세기 한·일  전략적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다자간 합의에 따른 포괄적 해결이나 양자 합의에 의한 외교적 해결이 바람직하다. 일본은 러시아·한국·중국 등과 도서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는데, 독도의 전략적 가치나 경제적 이해가 상대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독도 문제의 해결책으로 한·일 당사자 간의 협상에 의한 방안을 들 수 있다. 현재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한다. 그리고 한국은 독도 문제를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연결지어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외교 합의에 따른 독도 문제 해결은 일본 정부가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이러한 양자 합의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양측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양국 정부가 합의로 독도 문제와 같은 영토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민의 이해와 강력한 리더십이 양측 모두에게 필요하다. 국민적인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

ⓒ연합뉴스이명박 대통령(위 왼쪽)이 7월9일 오전 일본 도야코 윈저 호텔에서 일본 후쿠다 야스오 총리(위 오른쪽)와 만났다.
3년 전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논설주간은 독도에 대한 한국 주권을 인정하고, 주변 해역에 대한 일본 측의 어업권을 인정하며, 다른 영토 문제에서는 일본을 지지하고, FTA 협상도 일거에 끝내 한·일 연대에 탄력을 붙이자고 제안했다. 아이치가쿠인 대학 세리타 교수도 울릉도와 오키 섬의 중간선을 두 나라 영해의 경계로 삼도록 해 독도를 자연스럽게 한국 영해에 속하도록 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 한국의 ‘독도 주권’ 인정해야

동북아 지역에서는 냉전구조 해체가 진행되어 왔지만, 여전히 북·미, 북·일 간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등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 지역은 미·중·러·일 등 강대국의 지역패권 장악을 위한 신경전이 치열한 가운데, 역사적으로도 한·일, 중·일, 러·일 간에 전쟁과 침략 및 식민지 지배 경험이 중첩돼 있어 다자간 안보협력을 논의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였다.

최근 6자 회담의 진전과 더불어 동북아 다자안보포럼 논의가 시작됐다. 6자 외무장관회담이 열릴 경우, 동북아 안보포럼은 세 개의 트랙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 트랙은 이미 진행하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 회담, 둘째 트랙은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한반도평화체제의 4자 회담, 그리고 마지막 트랙이 해양도서 영토 분쟁을 다룰 5자 회담이다.

이와 같이 역내 해양도서 영토 분쟁을 다루는 5자 회담을 동북아 안보포럼 차원에서 갖는 데 대해 일본이 난색을 표명할 가능성이 있다. 5자 회담 참가자인 남북한과 중국·러시아 모두 일본과 해양도서 영토 분쟁을 겪기 때문이다. 6자 회담이 북한을 대상으로 한 1대5의 구도였다면, 한반도평화체제 포럼은 북한·중국 대 한국·미국의 2대2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비해 해양도서 영토분쟁 포럼은 일본 대 남북한·중국·러시아의 1대4 구도가 될 수 있다.

일본 처지에서 볼 때, 한·일 협의에 의한 독도 문제 해결을 우선 모색하는 것이 유리하다. 어차피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다른 분쟁 지역보다 전략적 가치나 경제 이해가 덜하기 때문에, 한·일 FTA나 지역 문제의 공동보조, 국제무대에서의 공조와 같은 전략적 협력을 위해 독도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독도 문제 해결은 한·일 전략적 협력의 조건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 추구해온 ‘전후 외교의 총결산’ 작업이 될 것이다. 나아가 한·일 간의 전략적 협력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자명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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