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메갈리안’… 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여성 향한 외침, “왜 넌 날 사랑하지 않는 거니”


온라인 공간 일부의 소동처럼 여겨지던 여성혐오의 물결이 이제는 현실 세계를 덮치고 있다. 〈시사IN〉은 2015년 한국 사회의 첨예한 단층선인 여성혐오에 관한 연속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호(제417호)에서는 여성혐오 담론의 구조와 확산 동력을 입체 해부한다. 다음 호(제418호)에서는 여성혐오의 언어를 그대로 남성들에게 돌려주는 ‘미러링’ 전략을 구사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는 반(反)여성혐오의 거점 메르스갤러리를 살펴본다.

❶ ‘여성혐오 지도’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

2015년은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이 시민권을 획득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유명 칼럼니스트가 자기 칼럼의 파장으로 진행하던 방송에서 하차하고,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래퍼가 여성혐오 랩을 쏟아내 문제가 되고, 개그맨이 팟캐스트에서 여성혐오 개그를 하다가 사회적인 논란까지 불거져도, 여성혐오는 수그러들기는커녕 온라인과 현실 세계에 공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남성지 〈맥심 코리아〉 9월호는 여성 납치 범죄를 연상시키는 표지 사진을 내걸었다가 여성혐오라는 집중포화를 받고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다. 〈맥심 코리아〉는 미국 〈맥심〉 본사가 규탄 메시지를 내는 등 외신으로 문제가 확산되자 9월4일 뒤늦게 사과문을 냈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같은 극우 커뮤니티만의 문제도 아니다. 대놓고 여성혐오를 과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김치녀’에 자기 이름을 걸고(페이스북은 실명 계정이 원칙이다)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16만명이다. 한국의 젊은 남성에게 여성혐오는 차라리 시대정신이다. 가부장제의 익숙한 남성 우월주의와는 결이 다른, ‘약자로 전락했다는 분노’가 젊은 세대 남성을 사로잡았다.

그런 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여성혐오만큼 희한한 전략도 흔치 않다. 이 ‘전략’을 쓰는 남성은 여성과 데이트할 확률이 극히 떨어지는데, 젊은 남성이 이런 손실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는 아주 불투명하다. 그러니까 여성혐오란 거의 ‘자해적인 전략’이다. 그런데도 여성혐오의 깃발 아래 갈수록 많은 남성이 줄을 선다.

이 기묘한 현실을 이해하려면 당사자에게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여성혐오 담론을 날것 그대로 전시하는 쇼윈도를 알고 있다. ‘일베’다. 일베는 폭넓게 퍼진 여성혐오 담론 구조의 원형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훌륭한 전시장이다.

STEP 1:데이터가 그려낸 여성혐오 지도

〈시사IN〉은 데이터 기반 전략 컨설팅 회사 ‘아르스프락시아’와 함께 일베에서 확인되는 ‘여성혐오 지도’를 그렸다. 2011~2014년 3년 동안 일베에 올라온 게시글 43만 개를 원자료 삼아 여성 관련 논의를 추출했다. 그 결과가 아래 〈표 1〉이다.

우선 깨져나가는 통념이 있다. ‘군대’는 핵심이 아니다. 여성혐오 담론지도에서 군대 문제는 주변부에 고립되어 있고(표 위쪽 회색 블록), 담론지도의 핵심부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지도 않다. 단어의 등장 빈도로도 732회에 불과해 20위권 밖이다. 분석을 진행한 아르스프락시아 김학준 연구원은 “데이터 분석 결과로 보면 군대는 담론 형성에서 거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성혐오가 먼저다. 군대는 ‘더 본격적으로 미워하기 위해’ 사후에 가져다 붙인 명분에 가깝다. 군가산점이나 여성부도 핵심이 아니라 사후 명분이라는 점이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담론지도에서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김치녀’다. 일베에서 이 말은 사실상 ‘여성’의 대체 단어일 정도로 자주 나온다. ‘여성’(‘여자’ 등 유사 단어 포함)이 1만159차례 등장하는 동안 ‘김치녀’는 8697차례 등장한다. ‘김치녀’는 한국의 여성혐오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일베의 여성혐오 담론지도는 ‘김치녀’가 탄생하는 곳을 정확히 지목한다. 데이트 경험이다. 지도에서 ‘남성’을 둘러싼 키워드들을 보자(표 가운데 초록색 블록).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호구’다. 여성은 평소에는 남녀 ‘평등’을 외치다가도 정작 남자를 고를 때는 ‘능력’을 따지는 이기적인 존재다. ‘더치페이’하는 남자는 데이트 상대로 쳐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나랑은 자주지도 않는다(‘섹스’). 데이트의 좌절은 여성혐오의 원체험이다.
 

데이트의 좌절은 일베가 그리는 가족 판타지와 결정적으로 충돌한다. 담론지도 아래쪽에서 핵심 키워드는 ‘결혼’이다(푸른색 블록). 일베에서 이 키워드는 이중의 의미다. 상대가 ‘김치녀’일 때, 결혼은 재앙이 된다. 일베는 ‘김치녀’를 피해 좋은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지만(〈시사IN〉 제367호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기사 참조), 가족 판타지는 언제나 ‘김치녀’의 습격에 결정적으로 취약하다. 일베에서 ‘결혼’을 검색하면, ‘김치녀와 결혼하면 안 되는 이유’나 ‘결혼 상대가 김치녀인지 알아보는 법’을 다룬 글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일베의 여성혐오 담론지도는 하나의 결론으로 달려간다. 짝짓기 시장, 그러니까 결혼까지 포함해서 ‘연애 시장에서의 환멸’이 여성혐오의 뿌리다. 여성혐오 담론에서 ‘김치녀’란 무엇보다도 ‘연애 시장에서 반칙을 하는 여자’를 뜻한다.

반칙이란 뭘까.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자의 능력을 따지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데이트 비용은 남자에게 물리는 여자’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여자’ ‘자기 외모는 성형으로 과대 포장하면서 남자의 능력은 칼같이 따지는 여자’다. 포괄적으로 정의 내리면 이렇다. ‘연애 시장에서 (사람 됨됨이나 사랑이 아니라) 남자가 보유한 자원을 따져서 분수 이상으로 한몫 잡으려는 여자.’ 한국의 젊은 남성을 사로잡은 여성혐오 담론이 내놓는 ‘김치녀’의 원형이다.

이것은 지독한 역설로 이어진다. 담론지도의 ‘남성’과 ‘여성’ 사이 붉은 블록에 낯선 키워드가 있다. ‘사랑’이다. 이 여성혐오자들이 보기에 사랑이야말로 연애 시장에서 유통되어 마땅한 유일한 화폐다. ‘김치녀’는 연애 시장의 화폐를 사랑에서 남자의 경제력으로 바꿔놓는 시장 교란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개그팀 ‘옹달샘’은 팟캐스트에서 여성혐오 개그를 해 논란이 되자 사과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Mnet 〈쇼 미 더 머니〉 화면 갈무리〈/font〉〈/div〉온라인에서 여자를 때리는 ‘상남자 만화(왼쪽)’가 퍼졌고, 래퍼 송민호씨(오른쪽)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여성혐오 랩을 쏟아내 문제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극적인 가치 전도가 일어난다. 여성혐오는 이 시장 교란자를 단죄하는 정의로운 분노이자, 사랑에 충실한 순수한 남성만이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숭고한 경지가 된다. 여기까지 오면 여성혐오는 숨겨야 할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다. 차라리 자긍심의 원천이다. 여성혐오는 연애 시장에서 최하층에 위치하는 ‘루저’의 정서를 뛰어넘어 ‘멀쩡한 젊은 남성’도 공유하는 집단 정서로 진화한다. 이제 페이스북 김치녀 페이지에 실명을 걸고 ‘좋아요’를 누르는 남자들이 탄생한다.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거의 병리적인 자아도취를 드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연애 시장에서 좌절을 느끼고 그 분노를 여성 일반에게 겨누는 남성 집단이 왜 이리도 대규모로 쌓여가고 있는가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가 30년도 더 전부터 묻어둔 폭탄을 꺼내야 한다.

STEP 2:연애 시장에 들어온 남성잉여세대

자연 상태에서 신생아의 성비는 남아가 조금 더 많은 수준으로 나온다. 대체로 여아 100명당 남아 비율이 103~107명 사이에서 형성되면 ‘자연 성비’라고 부른다. 남성의 수명이 더 짧고 조기 사망 확률도 조금 더 높기 때문에, 자연 성비 범위에서는 신생아가 성장해갈수록 성비는 1대1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성비 불균형 국가다.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시점인 1975년에도 이미 출생 성비는 112.4로 붕괴 수준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인구 억제 정책으로 산아제한을 강력히 추진했는데, 이것이 남아 선호 문화와 만나자 ‘여아만 골라 떼는’ 성감별 낙태의 대유행으로 귀결되었다.

몇 번 들쭉날쭉하던 출생 성비는 1983년 들어 107.3으로 다시 자연 성비 범위를 벗어난다. 이후 성비 왜곡이 그야말로 폭주했다(〈표 2〉). 2006년까지 무려 24년 연속으로 남아 비율이 자연 성비를 초과한다. 가장 심했던 1990년에는 성비가 116.5까지 치솟았고, 성비가 110을 넘긴 해도 13번이나 된다. 남자 10명 중 1명은 짝이 없는 거대한 남성잉여세대가 탄생했다.
 

 
 

 


1983년생은 올해로 32세이다. 남성 평균 초혼연령이 32.4세이니, 이 남성잉여세대의 맏형도 아직 연애 시장에 머물러 있다. 이후로도 4반세기 동안 남성잉여세대가 연애 시장에 진입할 것이고 잉여 남성은 시간이 갈수록 누적된다.

통계청 인구총조사는 2010년판이 최신판이다(올해 총조사가 예정되어 있다). 2010년 조사에서 각 연령대에 5년을 더해보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최근 5년 동안의 사망 등이 반영되지 않는다) 대략의 연령대별 잉여 남성 숫자를 알 수 있다. 그 결과가 〈표 2-1〉 그래프다.
 

 

 


남성잉여세대의 맏형 그룹이 포함된 30~ 34세(2010년 조사에서는 25~29세)에서는 남자가 6만7000명이 남는다. 이 연령대 남성 인구의 3% 정도다. 그다음 세대부터가 본격적인 잉여 축적 세대다. 25~29세에서 남자는 19만5000명이 남는다. 남성 인구의 12%다. 20~24세 그룹에서는 21만4000명, 11.7%가 남는다. 연애 시장의 핵심 연령대인 20~34세에서 잉여 남성 숫자가 47만명이다. 그나마도 이 수치는 과소평가되어 있다. 인구총조사에서는 25~29세 구간에서 남성 인구가 갑자기 줄어드는 현상이 1990년 이후로 일관되게 나타나는데, 인구학 연구자들은 대체로 이 세대 남성 인구의 이동성이 높아 총조사에 제대로 잡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잉여 남성 인구가 실제로는 47만명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기자 마라 비슨달은 세계 곳곳의 성비 붕괴를 취재한 논픽션 〈남성과잉사회〉를 썼다. 이 책에서 비슨달은 상상하기 힘든 곳까지 영향을 주는 성비 붕괴 효과를 소개한다. 얼핏 듣기에 황당한 얘기지만, 성비가 무너지면 저축률이 높아진다. 1자녀 정책을 강제해 성비가 무너진 중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성비와 저축률은 어떻게 이어질까. 신붓감이 부족해지면, 아들을 둔 부모는 필사적으로 저축을 늘린다. 부모가 물려줄 자산이 클수록 아들이 연애 시장에서 살아남을 확률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성비가 무너지면, 남성의 연애 시장 입장권이 비싸지는 것을 사람들은 경험으로든 직관으로든 알아챈다. 입장권 가격이 오르면 남성이 좌절할 가능성도 따라서 올라간다. 비슨달은 성비가 1% 높아지면 범죄율이 5~6% 올라간다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홍콩 중문대학 공동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중국의 젊은 남성이 늘어난 것만으로 전체 범죄 증가의 3분의 1을 설명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더해 ‘문화적 성비 붕괴’ 현상도 관찰된다. 여자보다 남자가 결혼에 더 적극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2012)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와 ‘하는 편이 좋다’를 합친 비율이 남자는 67.5%였던 반면 여자는 57%에 그쳤다. 한국의 연애 시장에서는 생물학적 성비 붕괴 위에 ‘문화적 성비 붕괴’ 10%포인트가 추가로 붙는다.

결혼 회피의 성별 격차를 만들어낸 범인은 가부장제의 압력일 가능성이 높다. ‘시댁 또는 처가 중심의 결혼 생활이 부담스러워서 결혼을 회피한다’라는 설명에 비혼 여성 중 72.2%가 찬성했다. 비혼 남성 중 찬성 비율은 49.4%였다.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이중 공급과잉 상태다.

남성잉여세대의 선배 그룹인 1970년대 이전 출생 세대도 남초 성비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선배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았던 ‘덕’을 보았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결혼을 더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남성잉여세대는 선배들이 겪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있다. 오늘날 연애 시장에서 좌절한 남성들은 웹과 모바일이 제공한 초연결사회에 살며 대단히 간편하게 서로를 발견하고, 여성혐오를 배양하고 증폭해낼 공간을 온라인에서 확보했다.


STEP 3:결혼경제학, 연애 시장을 해부하다

시카고학파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게리 베커(1930~2014)는 화폐경제를 넘어 범죄 등 인간 행동 전반에 경제학을 적용하는 시도로 유명했다. 결혼을 경제학으로 해석한 최초의 시도도 그가 1973년에 내놓았다. 이후 경제학자들은 연애 시장에서 남녀의 전략을 예측하는 일련의 모형을 발전시켰다.

‘결혼시장 탐색모형’은 다음과 같은 모델을 제안한다. 구혼하는 성은 남성이고 승낙과 거절을 선택하는 성은 여성이다. 이때 여성은 남성이 가진 자원(대표적으로 소득수준)을 평가해 기준선 이상이면 받아들이고 이하라면 거절한다. 이 모델은 낭만이라고는 없는 데다 지독히 단순하지만 현실을 그럭저럭 보여준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이 모델은 흥미로운 예측을 내놓는다. 설사 소득의 평균값에 변화가 없다고 해도, 소득 불평등이 커질수록 결혼은 줄어든다. 불평등이 커지면 여성이 설정한 ‘기준선’을 넘지 못하는, ‘자원 없는’ 남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력이 올라가도 결혼은 줄어든다. 여성이 설정하는 ‘기준선’이 따라 올라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금융경제연구(2010년 12월)에 실린 논문 ‘저출산·인구고령화의 원인에 관한 연구:결혼 결정의 경제적 요인을 중심으로’(이상호·이상헌)는 남성의 임금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여성의 결혼율이 하락한다는 기존 연구가 한국에서도 타당하다는 결론을 낸다. “임시직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결혼율은 15~39세 인구 1000명당 0.23~0.40건 감소하는데, 이는 임시직 비율이 높아지면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결혼경제학은 한국의 여성혐오 진영에 희소식처럼 들린다. 여성이 남성의 경제력을 평가해 결혼 여부를 선택한다는 결혼경제학의 모델은 ‘순수한 한국 남성 대 계산적인 김치녀’ 구도를 뒷받침하는 듯하다. 데이터도 있다.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에서 배우자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경제력’을 꼽은 응답자가 남성은 9.8%, 여성은 30.3%였다.

희소식은 여기까지다. 여성이 남성보다 배우자의 경제력에 민감한 경향은 존재한다. 다만 한국 특유의 현상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 본성에 더 가깝다. 남성은 여성의 외모에 더 민감하고, 여성은 남성의 자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진화심리학은 예측한다. 두 성의 속성상 번식 전략이 다르게 진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경향성만은 일관되게 관찰된다.

 

 

‘정도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면 여전히 여성혐오 담론은 비빌 언덕이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한국 여성이 연애 시장에서 유난히 경제적 실리 추구 경향이 강할까? 이런 주장의 근거는 불충분한 반면,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오히려 탄탄하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성별 임금 격차가 크기로 악명 높다. 〈표 3〉은 남성과 여성의 연령별 임금 곡선을 한데 모아 그린 것이다. 아래의 붉은색이 여성의 생애임금 곡선, 위의 푸른색이 남성의 생애임금 곡선이다. 남성이 40대 후반에 임금곡선 정점에 도달하는 반면, 여성은 30대 후반에 정점을 찍고 이후로 계속 떨어진다. 출산을 전후한 경력 단절의 흔적이다. 정점의 높이도 여성이 남성보다 터무니없이 낮다. 그 결과,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져서 50대 전반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1.9배를 더 번다.

연애 시장에 뛰어든 한국 여성의 관점에서 보자. 노동시장에 진입하더라도 기대소득은 남성의 절반 남짓밖에 안 된다. 노동시장 퇴출도 더 빠르다. 반대로 연애 시장에서는 생물학적·문화적 이중 성비 붕괴 덕에 여성이 더 많은 자원을 쥐고 있다. 서로가 쥔 패를 따져보면, 한국 여성이 더 많은 자원을 연애 시장에서 요구하는 전략도 등장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자원 추구형 전략’이 일부 여성의 전략이라 해도 상관없다. 남성혐오 진영에서는 일단 사례가 수집되면 축적되고, 공유되고, 증폭되며, 결국 일반화된 혐오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혐오는 자기강화의 경로에 올라탄다.

이제 결정적인 질문이 남았다. 대기업 입사 경쟁은 경쟁률로 보면 연애 시장에서의 구애 경쟁보다 훨씬 치열하지만, 취업준비생 대부분은 대기업을 혐오하기보다는 선망한다. 연애 시장에서 여성이 더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면, 남성은 왜 ‘더 많은 호의’가 아니라 ‘더 많은 혐오’를 택하나. 여성혐오에 젖은 남자를 데이트 상대로서 매력을 느끼는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연애 시장의 논리로 보면 거의 자해 전략인 여성혐오가 어떻게 해서 연애 시장에서 탄생할 수 있을까.

STEP 4:혐오, 절망적인 가격 흥정 전략

진화심리학의 기틀을 다진 연구자로 평가받는 데이비드 버스 교수(텍사스 대학)는 책 〈이웃집 살인마〉에서 “왜 어떤 남자들은 연인을 학대하는가”라는 독특한 질문을 던진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보면, 남성에게 여성 배우자는 대단히 귀중한 자원이다. 그런데도 왜 남성은 배우자를 때리고 모욕하고 특히나 외모를 폄하할까. 더 황당하게도,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자신을 학대하는 배우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그녀를 도우려던 지인들을 속 터지게 만든다.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까.
 

논란이 된 남성지 〈맥심 코리아〉 9월호의 사진(왼쪽). 〈맥심 코리아〉 측은 외신으로 문제가 확산되자 9월4일 뒤늦게 사과문을 냈다(위).


버스의 설명은 이렇다. 외모 폄하에서 폭력까지, 남성의 학대는 여성의 자긍심을 손상시킨다. 자긍심이란 연애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재는 도구로, 그러니까 일종의 가격 측정 센서다. 이 자긍심 센서가 망가지면 여성은 자신의 시장가치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남성은 여성에게,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을 테니 자신과 함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주지시키려 하는지 모른다. 강력한 배우자 감시 전략인 학대와 고립은 여성을 손상된 관계에 잡아매는 극악한 기능을 수행한다.”(〈이웃집 살인마〉 165쪽)

남성이 스스로 선택해서 이런 전략을 고른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이런 전략적 옵션이 진화 과정에서 유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심리에 내장되어 있고, 특정 상황이 되었을 때 무의식중에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주장이다.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대란,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 배우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가격 흥정 전략이다. 마치 중고차를 고르며 이리저리 트집을 잡고 사고 기록을 따져 묻듯, 학대는 배우자 여성의 가치를 줄여 잡아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도구다. 이 전략은 분명 자기파괴적이고 위험하지만,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은 어차피 떠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배우자보다 뒤처진 남성에게는 이판사판으로 해볼 만한 도박이 된다.

이 논리를 여성혐오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 연애 시장에서 남성의 시장가치가 주저앉는 메커니즘을 여럿 확인했다. 바꿔 말하면, 여성 집단의 시장가치가 남성 집단보다 올랐다. ‘뒤처진 남성’이 대규모로 축적되는데, 이때 여성혐오는 마치 저강도 학대와 같은 효과를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게 가한다. 남성들의 머릿속에는 연애 시장에서 협상력이 딸릴 때에는 여성의 자긍심을 손상시키라는 전략이 내장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이것은 절망적인 전략이다. 1대1 관계에서는 학대를 통한 흥정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는 반면, 온라인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저강도 학대는 애초에 협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서 가격 흥정이 될 수가 없다. 1대1 관계에서 써먹으라고 진화가 내장해놓은 전략이 엉뚱한 장면에서 스위치가 켜진다. 더욱이 여성혐오는 연애 시장에서 그 남성의 시장가치를 더 떨어뜨린다. ‘가격 격차’는 더 커질 것이고, 가격 흥정도 따라서 다시 절박해진다. 막다른 골목이다. 남성잉여세대의 맏형들이 이 막다른 골목에 이제 막 들어섰다. 그 뒤로도 25년 동안 동생들이 줄을 서 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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