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변했다!” 요즘 서울시 공무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보궐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 1기의 좌우명은 ‘큰일을 벌이지 말자’였다. 전임 이명박 시장(뉴타운 사업)과 오세훈 시장(동대문디자인플라자, 한강 세빛둥둥섬)이 벌여놓은 ‘큰일’을 뒷수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고 골머리를 썩였다. 박원순 1기의 서울시 행정은 오히려 축소 지향에 가까웠다. 행정혁신을 통한 예산 절감이 바로 그것이다. ‘보도블록 10계명’이 대표적인데, 구(區) 등 기초지자체 차원에서 ‘올해 예산 바닥내기’용으로 시행되곤 하던 연말의 무분별한 보도블록 교체를 막아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랬던 박원순 시장이 지난해 6월 재선 이후 대규모 프로젝트들을 입안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스타일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형 사업으로는 ‘서울역고가 공원화’ ‘마포 석유비축기지 문화공원화’ ‘남산 예장자락 재생’ ‘은평 서울혁신파크’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두 사업비가 수백억~수천억원에 이르고 조성 규모도 10만㎡를 웃돈다. 또한 이 사업들의 완공 시점은 대부분 2017~2018년에 집중되어 있다. 대형 프로젝트들의 성과를 자신의 임기 내에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박 시장의 정치적 야망이 느껴지기도 한다.
 

ⓒ시사IN 신선영 1월2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계획 중인 대형 사업들을 통해 서울을 어떻게 바꾸려는 것일까. 이명박 전 시장이 청계천 복원 및 버스 중앙차로제 등 눈에 보이는 성과에 따라 대통령 후보 대열의 선두로 치고 올라갔던 경험이 박 시장에게도 반복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면 박 시장이 계획한 대형 사업들을 하나씩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심 한가운데 수목원이 생긴다면

완공 이후 파급력이 가장 클 것으로 꼽히는 서울시 사업은 ‘서울역고가 공원화(서울역 7017 프로젝트)’다. 현재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의 민간 협력단체인 고가산책단 조경민 대표가 “이 사업에 대해 시민들이 민원을 좀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행 속도가 빠르다. 민원으로 브레이크가 걸려 사업을 좀 차분히 점검할 시간을 가지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다.

사업 내용은 간단하다. 서울역 앞의 고가를 공중(空中)정원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남대문시장에서 서울역·서부역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의 차량 통행을 중단시키고 수목이 우거진 보행길을 조성한다. 세계적 도시설계 회사인 MVRDV의 창립자인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마스가 ‘보행길을 수목원으로’라는 주제로 서울시의 국제공모전에 제출한 〈서울 수목원〉이 ‘고가 공원’의 기본 설계도다. 서울시가 비니마스의 원안에서 특히 주목한 점은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걸어서 고가 공원에 도달할 수 있는 접근성이었다. 즉, 서울시가 조성하려는 서울역 앞 고가 공원은 박원순 시장이 표방해온 ‘걷는 도시 서울’ 프로젝트의 핵심이자 기점인 것이다.

지난 7월28일 저녁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의 민간 협력단체인 고가산책단이 마련한 ‘고가 매치’가 열렸다. 고가산책단 조경민 대표와 서울시 온수진 주무관이 이 사업에 대해 터놓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날 토론에서 온 주무관은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의 성공을 확신하며 “청계천 복원과 비교할 때 훨씬 더 성공적인 사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청계천 복원사업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서울역고가 사업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잠재적 피해자는 서울역 고가의 차량 통행이 금지될 때 물류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남대문시장 도매상인들이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증가하는 경우 매출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는 주변 소매상들은 사업에 적극 찬성한다. 건물주들은 공원화 사업의 영향으로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덕분에 우호적이다. 시민사회단체도 강하게 반발하지 않아서 여론 부담 역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역 7017 국제현상공모 참여작품집서울역고가 공원화를 위한 국제공모전에서 네덜란드 건축가 비니마스의 <서울 수목원>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걷는 도시 서울’의 기점인 서울역 고가공원은 보행길을 따라 북쪽으로는 서울시청과 광화문으로 연결된다. 서울역에서 볼 때는 세로 보행축이다. 이 세로 보행축을 따라 걷다가 남대문쯤에서 동쪽으로 꺾으면(가로 보행축), 남대문→명동→남산 예장자락, 더 나아가 청계천과 세운상가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서울 도심에 격자 모양의 보행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보행로를 따라 곳곳에 기억과 문화, 녹지가 공존하는 작은 허브(hub)들을 만든다는 것이 서울시 도시계획의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분리대를 넘어 진짜 공원으로

서울시는 최근 서울시청 근처 국세청 별관을 철거하고 별도의 시설물을 만들지 않은 채 광장으로 조성하고 있다. 국세청 별관 자리는 원래 고종 후궁이자 영친왕 생모인 귀비 엄씨의 사당 덕안궁이 있던 곳이다. 서울시는 대한제국의 원풍경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로 이곳을 ‘기억의 장소’ 혹은 ‘역사문화의 광장’으로 남길 계획이다. 다만 광장의 지하는 개발해서 서울시청 지하의 시민청과 연계해 활용하기로 했다.

국세청 별관 터에서 멀지 않은 광화문광장도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지금의 광화문광장은 차량 도로에 둘러싸여 사실상 봉쇄되어 있다. 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가 광화문광장을 ‘세상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라고 비아냥거린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시는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보행 전용로로 만들어, 세종로 쪽의 거리와 광화문광장을 도보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이 시위 진압의 어려움과 교통 정체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도심 속 섬’ 남산을 구출하라

서울 도심의 가로 보행축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허브는 남산 예장자락이다. 지금은 교통방송, 서울소방재난본부, 서울종합방재센터, 서울시청 남산별관 등의 시설들이 있지만 대부분 이전하고 이후 공원으로 조성된다.

남산 예장자락에는 ‘네거티브 문화유산’이 많다. 이토 히로부미가 거주하던 통감 관저, 군사독재 시절 중앙정보부 등이 이곳에 있었다. 중앙정보부 남산 본관은 서울유스호스텔로, 지하취조실(제6별관)은 서울종합방재센터로, 대공수사국(제5별관)은 서울시청 별관으로 활용되어왔다.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이 건물들을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일대를 ‘남산 인권 평화의 숲’으로 조성하자고 주장한다.
 

ⓒ시사IN 이명익마포 석유비축기지에 들어선 문화로놀이짱의 ‘비빌기지’. 문화예술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산 예장자락 공원화 계획을 주도하는 김성보 서울시 재생정책기획관의 책상에는 미국의 도시계획가이자 디자이너 제프 스펙의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가 놓여 있다. ‘도시에서 교통공학자를 몰아내자’는 주장을 하는 제프 스펙처럼 김 기획관도 차량 중심도시를 사람 중심도시로 만드는 것이 서울시 도시계획의 기본 축이라고 설명했다. “남산 예장자락의 공원화가 마무리될 즈음엔 남산 정상에 자동차 출입을 완전 금지하고 ‘대기 청정구역’으로 선포할 예정이다.”

서울 중심부에 있지만 남산을 걷는 시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남산은 순환도로에 에워싸인 ‘도심 속 섬’이다. 이에 대한 서울시의 복안은 도심의 보행축을 남산으로 연결해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걸을 수 있는 산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남산예술센터와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소재한 남산 예장자락 서쪽 지역은 문화 클러스터로 육성할 예정이다. 남산케이블카를 해체하고 곤돌라와 전기 자동차로 남산 정상에 오를 수 있게 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젠 석유 대신 문화를 쌓아요

서울시 성산동의 마포 석유비축기지도 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약 5000만t의 석유를 보관하던 유류 저장탱크 5개를 해체하거나 재활용해서 공연장·전시공간·도서관 등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바뀌는 셈이다. 석유비축기지 아래 주차장까지 공원화 계획에 포함되는데, 조성 대상지가 총 14만㎡에 이른다.

마포 석유비축기지 공원화 사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민단체들이 서울시와 함께 사실상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이곳 주차장에는 청소년 문화예술 교육단체인 ‘문화로놀이짱’이 들어와 있다. 주로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이 단체는 ‘젠트리피케이션(도시의 정체지역에 가난한 예술인들이 입주해서 문화 거리가 조성되면 그 땅값과 임대료가 올라 예술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사실상 쫓겨나는 현상)’으로 인해 2010년 여름 마포 석유비축기지 주차장 공간을 점유했다. 이후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게 된 서울시는 문화로놀이짱을 내쫓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의 활동 성과를 평가하면서 이를 합법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었다.

문화로놀이짱의 활동 공간은 주차장에 놓인 컨테이너 가건물이다. ‘비빌기지’라고 부른다. 이 비빌기지가 당초의 4개에서 현재는 19개로 늘었다. 문화로놀이짱 외에도 여러 단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단체들은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와 협업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7월29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도 하자센터와 함께 ‘창의캠프’를 열어 고등학생 수십명이 각종 공예 체험을 하고 있었다.
 

서울 은평구에 조성될 서울혁신파크 조감도(위). 담장을 허물고 복합공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시민단체들은 마포 석유비축기지 공원화 사업에 민간 협력단체로 참여하고 있다. 공원 조성 후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할지에 대해서도 서울시와 함께 논의한다. 2017년 정도 되면 서울시민들이 마포 석유비축기지의 새로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을 듯하다.

담장을 허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서울 은평구에 조성되는 서울혁신파크도 ‘박원순식 랜드마크’로 주목할 만하다. 국립보건원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생긴 이 공간은 10만㎡ 정도로 굉장히 넓다. 국립보건원이 사용하던 여러 건물에 청년허브,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인생이모작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서울시의 주요 ‘중간지원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중간지원기관’이란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사회적 기업 등 ‘공동체 비즈니스’를 육성하는 경우, 이를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민간의 스타트업 기업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준행정조직이다. 이런 기관들의 지원을 받는 사회적 기업이나 스타트업 문화예술 단체들도 혁신파크에 입주해 있다.

서울혁신파크에서 서울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자유로운 창의-생태계의 구축이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은 “되도록 서울시는 뒤로 물러나려고 한다. 입주자 자치회가 구성되어 스스로 결정해 나가는 방식을 지향한다. 혁신파크 시설물을 사용할 때도 센터에 허락을 받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자치 규약을 만들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혁신파크에 입주한 단체들은 박원순 시장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떠올렸던 문제의식(공유경제 등)을 공유한 곳이다. 어찌 보면 ‘박원순 키즈’가 모인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울혁신파크는 잘되는 경우 ‘박원순식 시정’의 전범(典範)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민사회 단체와 활동가들에 대한 ‘박원순식 퍼주기’라며 공격의 빌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서울혁신파크는 아직 지역 민심의 지지를 확실하게 얻지 못했다. 지역 주민과 정치인들은 이곳을 대형 호텔을 중심으로 한 컨벤션센터로 개발하고 싶어 한다. 국립보건원 시절에는 세균 배양이나 동물실험이 이뤄진다는 이유로 지역 주민의 출입이 뜸했던 곳이다. 서울시는 올여름 담장을 허물고 주민들에게 ‘이 공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공개할 계획이다. 2018년까지 단계적 공간 리노베이션 작업을 진행해 복합공원으로 조성한다.


서울역고가 공원, 남산 예장자락·마포 석유비축기지·서울혁신파크 공원 조성화 사업 등은 대부분 2017년을 전후로 완성(혹은 부분 완성)될 계획이다. 이런 랜드마크들로 ‘걷는 도시 서울’이 실제로 구현되고 도시 재생의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급상승할 것이다. 물론 사업이 잘되었을 경우다. 주민 반대와 정부의 비협조 등 수많은 난관을 박 시장이 어떻게 뚫고 나갈지 주목된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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